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에이번리 Jun 19. 2019

<바다가 들린다>

사람의 마음을 듣는 방법.

<바다가 들린다> 1993년 지브리 스튜디오 

이 영화를 보면서 감탄했던 것은 첫번째는 섬세한 작화와, 연출 그리고 두번째는 캐릭터들간의 관계와 감정선이었다. 우선, 작화와 연출은 90년대의 2D애니메이션 감성 그자체였다. 특히 배경이 수채화로 칠한 것처럼 예뻤다. 내가 배경과 연출을 좋아했던 것은 90년대에 살았던 옛날 추억들이 새록새록 기억되면서 그런건지도 모르겠다. 옛날 텔레비전과 자동차라던지 공중전화가 나오면 응답하라 시리즈를 보는 것처럼 반가웠다. 그리고 90년대이지만 캐릭터들의 패션들이 지금도 힙하다고 느껴질정도로 세련됬기 때문에 중간중간 주인공들의 코디를 보는 재미도 있었다. 



영화는 시골인 코오치에 도쿄에서 무토 라키코가 전학오면서 시작된다. 영화의 초반부에는 타쿠와 친구 마츠노간의 우정이 중학교 3학년때부터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고등학교 2학년 때 라키코가 전학오고 나서 어떤 일들이 일어났는지, 마지막으로 대학에 가고 난 뒤 동창회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이렇게 이야기가 전개 된다. 영화의 대부분 캐릭터들이 사춘기에 접어든 소년, 소녀라서 굉장히 섬세하고 예민한 감정을 가지고 있다. 리카코를 좋아하는 타쿠의 절친 마츠노와, 엉뚱한 일에 타쿠를 끌여들이는 리카코, 그리고 리카코가 벌인 일에 얼떨결에 동참하게 되는 타쿠의 이야기는 뱅뱅 돌면서 좀처럼 제자리를 찾아가지 못한다. 그러나 영화 내내 캐릭터들이 무슨 생각과 마음을 품고 있는지는 오직 그들의 행동과 타쿠의 추측밖에 시청자들이 알 길이 없다. 여기서 나는 대부분의 캐릭터들의 행동, 심지어 타쿠의 행동에도 별도의 설명이 없기 때문에 의문을 품으면서, 영화를 계속해서 지켜보다가 타쿠가 대학생이 되어서 마츠노가 던지는 그 한마디에, 모든 연결고리가 풀리는 느낌을 받았다. 


어렸을 때, 누군가를 좋아하면 더 관심을 보여달라고 맘에도 없는 말을 하거나 엄살을 보이는 경향이 있다. 그때 당시도 자신이 왜 그런 말을 하는지, 그런 행동을 하는지 알지 못하지만 시간이 흐른 다음에 자신이 상대를 좋아해서 그렇게 행동을 했구나, 상대가 알아주지 않아서 더 얄궃은 말을 했었구나 깨닫는 경우가 많다. 라키코와 타쿠도 그랬다. 리카코의 쌀쌀맞다가 성을 내다가 갑자기 엄살을 부리는 행동들은 타쿠의 입장에서 본 나는 어안이 벙벙했지만, 나중에 타쿠가 어른이 되어서 리카코의 행동을 돌아봤을 때야 비로소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리고 타쿠는 왜 저렇게 리카코에게 행동하는 건지, 영화를 보는 내내 나는 의문이 들었다. 타쿠는 리카코가 하는 행동들에 어떨 때는 맞춰주다가 어떨 때는 실망했다며 화를 내는지 타쿠의 마음도 도통 알 도리가 없었다. 타쿠는 영화에서 끝까지 시원하게 말해주는 법이 없다. 도리어 옆에서 그를 지켜본 마츠노가 말을 툭 던졌을 때, 그의 행동들이 머릿 속에서 하나하나 퍼즐처럼 맞춰지는 것이다.



타쿠와 리카코는 사춘기를 지나고 어른이 되고 나서야 둘의 감정을 마주할 수 있게 되었고 그제서야 그때를 아름답게 추억할 수 있게 되었다. '시간이 약이다.'라는 명언이 참 어울리는 영화였다. <바다가 들린다>라는 영화제목은 아마 마츠노와 타쿠가 바다에 앉아서 얘기를 하다가 둘 다 아무말 없이 석양이 지는 바다를 바라보는 데에서 따온 것 같다. 사람의 마음도 때로는 그 사람의 행동 만으로 설명되지 않을 때가 많다. 맘과는 다른 말들을 뱉을 때가 있고, 혹은 마음에 있는 말을 차마 꺼내지 못할 때가 있다. 사람이 바다의 소리를 들을 때도 마찬가지다. 바다의 소리를 들을 때 오히려 가까이에서 들으면 바다의 소리에 귀가 멍멍하고, 바다의 소리는 잡힐듯말듯 어느때는 밀려들었다가 또 어느때는 저리 멀리까지 도망치기도 한다. 그럴 때, 멀리서 가만히 귀를 기울여 보면, 바다의 파도 치는 깊은 소리가 들리는 것처럼 사람의 마음도 그렇게 들리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의 이전글 단순한 사랑 영화가 아닌  <안녕, 헤이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