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형광팬 캠프
‘동생이 나 대신 다 했으면 내가 붙었을 텐데...’
내가 응시한 지역의 합격선은 10년간 90점을 넘은 적이 없었다.
시험을 보고 나서 가채점해 본 결과 내 점수는 91점이었고, 당연
히 합격할 거라고 확신했다. ‘그래, 불안했던 건 괜한 걱정 때문일
거야.’ 하고 위안했다. 문제 중에서 생전 처음 보는 내용도 있었지
만 그래도 좋은 점수를 받았으니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합격자 발표 당일. 본가에서 부모님과 영화도 한 편 보고, 외식
도 하고, 양주까지 준비해 놓았다. 발표는 오후 7시쯤이라고 했는
데 기다리지 못하고 축하주를 한 잔씩 나눠 마셨다. 모니터 앞에
모여 앉아 합격자 공고가 뜨자마자 확인을 했다. 내 번호가 없었
다. 이상하다? 이럴 리가 없는데. 한글 파일을 삭제하고 다시 내
려받아서 확인해 봤지만 마찬가지였다. 옆에 앉은 부모님도 뭔가
일이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아시곤 표정이 굳었다. 시끌시끌하던
집안은 한순간에 차갑게 식었다. 마우스를 잡은 손끝이 아파서
주무르다 깜짝 놀랐다. 허옇게 변한 손은 내가 태어나서 만진 손
중에 가장 차가웠다. 죽은 사람의 손 같았다. 도저히 부모님과 같
이 있을 자신이 없어서 집을 나왔다. 깜깜한 아파트 단지를 멍하
니 걸었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시험에 떨어지니까 별생각이 다 들었다.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정말 내 평생의 운을 ‘형광팬’ 캠프에 합격하느라 다 쓴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었다. 그게 아니고서야 하필 내가 시험을 본 해에 합
격선이 92점이 넘는다니. 이게 말이나 된단 말인가.
<무한도전> 멤버들을 만난 형광팬 캠프는 내 인생에서 가장 소
중한 경험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젠 원망스러웠다. 수험 생활을 앞
두고 캠프에 간다고 허비한 시간이 새삼 한심해서 견딜 수가 없
었다. 합격자 발표도 나기 전에 부모님께 큰소리를 떵떵 친 주제
에 보기 좋게 떨어지다니. 내가 얼마나 미운지 내 몸 어디 한 군데
쯤 부러트리고 싶을 정도였다. 한동안 캠프에 가지 않고 공부를
더 했다면, 합격했을 거란 생각에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자려고 누
우면 천장이 나를 내리눌러 몸이 비틀리는 상상을 했다.
내가 잠을 자든 말든 시간은 계속 흐르고, 해야 할 일은 해야 하
는 채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몸을 좀 추스르고 자신을 미워하
는 것도 잦아질 때 즈음. 공부를 다시 시작해야 했다. 그러나 기존
에 하던 방법으로는 안 될 것 같았다. 앞으로 어떻게 공부해야 할
지 생각해봤다. 그때 떠오른 것이 또 형광팬 캠프였다. 내가 시험
에 떨어진 원인.
캠프 당일 집을 나서면서 이 경험이 내 인생을 바꾸리라 예감했
었다. <무한도전> 멤버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무언가
내가 알지 못했던 엄청난 성공의 비결, 인생의 비밀 같은 것들을
알게 되리라고 기대했다.
막상 캠프에 가 보니 워낙 바빠서 제대로 이야길 나눌 시간도
거의 없었다. 촬영 현장은 정신없이 돌아갔고, 다들 자기 몫을 하
느라 열심이었다. 긴 촬영 끝에 장기자랑에서 유재석 팀이 1등을
했다. 상으로 야외에서 저녁을 먹을 수 있게 되었는데, 촬영이 늦
어지면서 새벽 2시가 넘어 버렸다. 심지어 조명 문제로 밥을 먹기
위해서는 더 기다려야 했다. 우리들은 배고프고 지쳐서 로비 소
파에 널브러져 있었다.
그런데 재석형은 고장 난 조명 대신 장비를 가져오는 기사분께
조심해서 오시라고 전화를 하고, 지친 작가들을 먼저 소파에서
쉬게 했다. 팀원들의 어깨를 한 명씩 주물러주다가 새벽 순찰을
하는 경비원 할아버지에게 먼저 다가가서 인사를 드렸다. 거기다
손주에게 보여주시라며 동영상도 찍어드렸다. 가만히 소파에 기
대서 그 모습을 보는데 꿈을 꾸는 것처럼 현실감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