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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구사 Dec 14. 2020

평생의 운을 다 써버리면 2

2. 형광팬 캠프

함께 밥 먹고 차 마시고 웃고 떠들고 있으면 사람들이 구

름 떼처럼 몰렸다. 잠깐 화장실이라도 가려고 하면 몇몇 사람들이

쫓아와 같이 사진을 찍자고 했다. 내가 뭔가 대단한 사람이 된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무한도전> 멤버들을 실제로 만나는 꿈도 이

뤘으니 기분은 날아갈 것만 같았다.


구름 위에 떠 있는 듯한 기분은 한 달도 안 돼 바닥으로 추락했

다. TV에 내가 나온다 한들 나는 무릎이 나온 츄리닝에 슬리퍼를

신은 늦깎이 수험생이었다. 관심을 한 몸에 받다가 며칠 만에 밥

벌이를 걱정하는 수험생이 된다는 건 마치 늦게 찾아온 고산병을

앓는 것 같았다. 높이 올라갔을 때는 멀쩡하다가 바닥에 내려오

고 나서야 찾아온 열병. 그렇게 병에 걸린 마음으로 공부를 해나

갔다.


마음이 비틀거려서 의자에 오래 앉아있기 힘들었다. 그래도 앉

아서 한 글자라도 더 보려고 이를 악물었다. 화장실에 가는 시간

이 아까워서 나중에는 물 없이 커피 가루만 삼켰다. 날이 갈수록

속은 시커멓게 망가졌고 명치는 타는 것처럼 아팠다. 그게 커피

때문인지 조바심 때문인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 체중이 날이 갈

수록 줄었다.


시험 당일 아침에는 갈비뼈가 허옇게 드러나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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