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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구사 Dec 14. 2020

나무가 아니라 숲을 봐야한다 3

2. 형광팬 캠프

이거였다. 내 경쟁자가 각성제를 먹어서가 아니라 내가 부족했

던 부분이 합격을 가른 것이다. 그 후로 책 10권의 모든 표와 그

림을 외우면서 내 방심과 부족함의 증거들을 내내 마주 봤다. 정

말로 부끄럽고 고통스러운 과정이었다. 혹시나 내가 한두 문제

나올까 말까 한 표와 그림을 외우느라 정작 중요한 본문의 내용

을 잊어버리게 될까 봐 조바심이 났다. 그럴 때면 머리 한구석에

서 슬그머니 하얀 알약들이 떠올랐다. 그럴 때마다 내가 왜 이 시

험에 매달리는지 떠올렸다.


나무가 아니라 숲을, 숲을 보려고 했다. 내가 마당에 앉아서 레

트리버를 쓰다듬으며 노을을 바라보는 모습을 떠올렸다. 그래도

머릿속에서 알약들이 사라지지 않을 때는 나 대신 얼굴 없는 경

쟁자들에게 먹였다. 경쟁자들이 슈퍼맨이 되는 알약을 먹고 공부

한다고 생각하니 승부욕이 타올랐다. 절대로 지고 싶지 않았다.

격투기 대회 UFC 244에서 호르헤 마스비달은 경쟁자 네이트 디

아즈와의 경기를 앞두고 인터뷰에서 말했다.


‘어떤 상대는 나를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일어나게 한다. 네이

트는 그런 놈이다.’


각성제도 그랬다. 그것은 의자에서 일어나려는 나를 바싹 당겨

앉게 했다. 나는 약 기운을 빌어 16시간씩 공부할 수는 없지만 10

시간을 밀도 있게 채워나갔다. 핸드크림을 바르면서도 눈은 암기

노트를 봤고, 화장실에 걸어가면서도, 소변을 보면서도 눈은 암

기 노트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낮잠 시간도 가장 효율적으로 자

기 위해 책을 찾아봤다. 자주 아픈 목과 허리를 단련하기 위해 손

바닥이 까지도록 바벨을 들었고 운동을 마치고 샤워하러 가는 짧

은 순간에도 암기 노트를 봤다.


얼마 전 일요일 점심. 각성제에 관련된 다큐멘터리를 봤다. 경

쟁에서 이기기 위해 각성제를 사용하는 학생들, 예술가, 금융인,

운동선수를 보여주면서 그것의 부작용과 의존성을 경고했다. 마

지막에는 재미있는 실험을 보여줬는데 각성제와 위약을 복용한

사람 간의 효율성에는 의미 있는 차이가 없었다. 각성제는 없던

능력을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원래 본인이 가지고 있는 것을

활용하게 해주는 것이라고 했다. 특히 알약만 먹으면 뭐든 잘 될

것 같은 느낌이 든다는 중독자의 인터뷰가 흥미로웠다.


나는 형광팬 캠프에 다녀오고 나서 본시험에 불합격하며 바닥

을 쳤지만, 다음 해 2관왕이 되었다. 농촌지도사(7급 상당)와 농

업연구사(6급 상당) 시험에 연달아 합격했다. 요즘은 매일 왕복

108km를 출퇴근하며 책을 읽고 글을 쓴다. 점심시간에도 매일

글을 쓴 덕분에 각종 대회에서 4년 동안 12개의 상을 받았다. 이

책은 그렇게 받은 상금과 용돈, 사라질 수도 있었던 순간들을 모

아서 만들었다.


나는 내가 어떻게 역경을 이겨내는지 안다. 나는 구형 나침반 같

은 사람이다. 작은 흔들림에도 한참을 헤매지만, 결국에는 옳은

곳을 가리키는 사람. 힘들어도 옳은 것, 돌아가도 바른 것을 고르

는 사람이기에 끝내 행복해질 수 있었다. 행복한 일만 일어났기

때문이 아니라 불행하고 힘든 일도 잘 이겨냈기 때문에 지금의 내

가 있다. 그래서 나도 뭐든 잘 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물론 부정적인 생각이 차올라 다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고, 민

원인에게 욕을 먹거나, 정성 들여 키운 식물이 두더지의 습격으

로 죽어버리면 주저앉고 싶다. 지금 내 앞을 가로막은 나무가 도

저히 어떻게 할 수 없을 것처럼 거대해 보일 때. 나는 한 발짝, 두

발짝씩 계속 물러난다. 여태껏 왔던 걸음을 아까워하지 말고, 나

를 추월하는 사람들도 시샘하지 말고 계속 물러난다. 도저히 어

떻게 할 수 없을 것 같던 나무가 손바닥보다 작아질 때까지. 그러

고 나면 넓은 숲속 나무 사이에 난 수많은 오솔길이 보일 것이다.


좀 돌아가면 어떻고 누가 추월하면 어떻다는 말인가. 우리를 가

로막은 나무 덕분에 우린 인생이라는 숲을 좀 더 잘 살피게 될 것

이다. 남들을 제치고 반칙을 써가며 가장 먼저 숲의 맨 끝에 도착

했다고 생각해보자. 가장 먼저 도착해도 당신을 반겨줄 사람은

없다. 뒤늦게 하나둘 도착한 사람들이 숲에서 겪은 일들에 관해

이야기 나눌 때 당신은 한마디도 할 수 없을 것이다. 남들보다 빨

리 달리느라, 약이 몇 알 남았는지 세느라 숲을 살펴볼 겨를도 없

었을 테니까.


어쩌면 내가 했던 말은 카메라가 아니라 수험생활을 앞두고 가본

적 없는 숲속으로 떠나는 스스로에게 했던 말인지도 모른다.


나무가 아니라 숲을 봐야 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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