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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소 반디 Jun 15. 2022

아이를 '잘 내버려 두는 것', 힘들지만 해보고 싶어요

소소교육 서른아홉번째 이야기


오늘 점심을 먹고 아이 학교에서 준비한 '온 마을과 함께하는 클래식 공연'을 보러 갔다 왔다. 지난주 학교에서 신청서를 아이에게 전달하며 부모님이 참석, 불참을 표시해서 다시 가져오라고 했었는데 어느 날 아이가 참석 여부 종이를 찢은 신청서만 갖고 왔더랬다.



"엄마, 이거 선생님이 부모님한테 사인받아오랬는데 깜빡해서 내가 대신 동그라미 쳐서 냈어요. 그리고 선생님이 앞으로 가정 통신문 같은 거 잊어버리지 말고 사인 잘 받아오래요"


그렇게 얼떨결에 참석을 했는데 오랜만에 라이브로 듣는 연주들이 참 좋았다. 대신 동그라미 쳐 준 아이 덕분에 귀가 호강했다. 아이는 비록 이 신청서를 엄마에게 보여주지 않아 선생님께 혼났다고 했지만. 


혼이 났다고 하는 아이에게  "이제 학교 갔다 오면 네가 알림장이나 가정통신문 잘 챙겨봐야겠다" 말했었다.


"엄마가 확인해보면 되잖아요. 나도 까먹을 수도 있으니까."

"엄마도 일일이 확인해보기는 힘들어. 그리고 네가 선생님께 직접 들었으니까 네가 안 잊어버릴 확률이 높지 않을까?"

"그래도 엄마가 확인하고 사인해줬으면 좋겠어요. 선생님한테 혼나면 어떡해요"

"그건 어쩔 수 없지.. 네가 해야 할 일을 네가 계속하는 연습을 해야 더 잘 챙기니까 앞으로도 엄마가 확인하지는 않을 거야"



얼마 전 책 <오히려 최첨단 가족>을 읽으면서 아이에게 잔소리나 강요를 덜 하면서 아이가 스스로 할 수 있는 건 내버려 둘 수 있는 용기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엄마가 시켜서" 또는 "엄마가 하라고 하니까"가 억지로 하는 게 아니라 이걸 하면 자기에게 어떤 점이 좋은지, 혹은 자기가 이걸 왜 해야 할까 스스로 생각하면서 아이가 무언가를 선택하는 연습이 필요하다는 걸 느낀다. 아이가 할 수 있는 것도 잘 못해서 혼날까 봐, 혹은 보는 내가 답답해서 대신해주는 일도 많았는데 아주 조금씩 아이가 직접 그 과정을 부딪혀보는 것도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아이가 일어난 뒤 침대 이불 정리를 내가 했었는데 지난주부터 아이가 직접 해보도록 하고 있다. "이건 네가 할 수 있는 건데 엄마가 대신해줬었네"하고 말하면서. 아이가 "엄마 이 정도 하면 괜찮아요?" 묻길래 "네 침대니까 네가 만족할 만큼 하면 될 것 같은데?"하고 말했더니 어떤 날은 대충 하기도 하고 어떤 날은 각을 잡고는 뿌듯해하기도 한다. 집에서도 아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스스로 하며 자기도 이 집에서 뭔가를 했다는, 할 수 있다는 뿌듯함을 느꼈으면 좋겠지만 아직은 너무 욕심인 것 같고. 조금씩 아이들과 집안 일도 같이 하는 시간을 더 늘리고 싶다는 바람을 갖는다. 



하지만 아이를 내버려 둔다는 것, 아이 스스로 하는 것을 지켜본다는 게 참 쉽지 않다. 내가 말을 안 하면 계속 안 하겠지 하는 불안감을 이겨야 하고, 내가 안 챙겨주면 또 잊어버릴 텐데 하는 걱정을 좀 내려놓아야 하고, 아직 9살이면 옆에서 엄마가 계속 챙겨줘야 하는 나이 아니냐는 남편의 말에도 의연해져야 한다. 어디까지, 언제까지 내버려 둘 수 있을까, 내버려 두는 가운데에서도 여러 경험과 시간 속에서 아이가 스스로 생각하고 질문하고 찾을 수 있게 나는 옆에서 어떻게 해줄 수 있을까 아직은 혼란스럽기도 하고 또 힘들 때도 있다. 그럼에도 가끔은 설레기도 한다. 그런 변화 속에서 또 조금씩 성장할 우리의 관계가.  



가족의 특수성, 즉 서로 사랑하고, 아주 오래 함께 살아야 하고, 그리고 서로 많은 것을 배워야 하는 관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중에 서로 책임지고 원망할만한 말이나 강요를 하지 않고 '이렇게 해야 한다. 어떤 것이 옳다' 식의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다시 강조하지만, 이는 가족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오히려 최첨단 가족, p217>



나 역시 궁극적인 목표는 나와 아이들이 서로 불편하거나 기대하고 실망하는 관계가 되지 않는 것, 오래 서로 사랑하며 서로 배우는 관계가 되는 것인데 어디서부터 어떻게 차근차근할 수 있을까. 일단 매일 하는 아이의 숙제부터 내버려 둬 볼까. 늘 저녁 먹고 좋아하는 책 보다가, 좋아하는 그림을 그리다가 시간에 쫓겨 숙제를 하는 아이. 말로는 너를 위한 공부고 숙제이지 엄마를 위해 하는 게 아니야라고 하면서도 저녁을 먹고 나면 시간을 알려주곤 했다. 이건 네 일이니까, 너에게 필요하다고 생각되면 네가 시간을 조율해서 하는 거고, 필요 없다고 생각 들거나 하는 게 괴롭다면 네가 선택하는 거야. 말은 이렇게 하면서 아마도 또 마음속에는 내적 갈등이 가득할 것 같다. 그래도 계속 그렇게 시도해보고 싶다. 



가족은 원래 내 말을 안 들어주는 게 당연하고, 가족 때문에 불행한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이해가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래야만 내버려 두기가 가능하다. 내버려 두는 것은 방치나 포기가 아니다.. 우리 가족끼리 잔소리나 강요를 하지 않기로 한 근본적인 이유는 나중에 탓 듣기 싫어서가 아니라, 각자 인생의 주인공이 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모든 본성을 다 동일하게 채워야 기쁜 것은 아니다. 인간에게는 성장의 욕구, 주인이고자 하는 욕구도 있다. <오히려 최첨단 가족, p222> 



가족은, 아이들은 원래 내 말을 안 들어주는 게 당연하다는 것을 먼저 받아들이기. (머리로는 받아들여도 그럴 때마다 화가 나거나 속상한 감정은 어쩔 수 없다.. 그럴 땐 이너 피스를 외치거나 나만의 감정 가라앉히기 연습을 하고...) 

진심으로 나의 메시지를 아이에게 전달하기. "엄마는 네가 스스로 해내길 바라. 잘하지 못해도 그 과정이 너에게는 의미 있는 시간일 거야. 그렇게 실패하고 실수하고 해내기도 하면서 네가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되는 즐거움도 큰 거거든" 

아이를 '잘 내버려 두는 것'. 앞으로의 여정도 험난(?)할 것으로 예상되나, 아이가 엄마를 위해, 다른 가족을 위해 더 잘하고 싶다는 마음은 갖지 않았으면 좋겠다. 내가 내 인생의 주인공이 되어 나답게 사는 연습을 즐기고 있는 것처럼, 아이도 조금씩 그 즐거움을 알아갔으면 좋겠다. 좀 더 가벼운 마음으로, 나도 '가족 안에서 가족들이 나답게 살아남는' 실험을 아이들과 천천히 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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