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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소 반디 Jun 09. 2022

아이는 지금 계속 자라는 중입니다

소소교육 서른여덟번째 이야기



농촌에 온 뒤 첫째 아이의 선생님과 학기 초 상담을 했다. 어린이집에서도, 학교에 입학한 뒤에도 일년에 두번 늘 갖는 상담은 설레면서도 또 살짝 긴장되기도 한다. 선생님의 눈에 비친 아이는 어떤 모습일까, 아이는 어떻게 학교 생활을 하고 있을까. 즐겁게 학교 생활을 하고 있다고 호기심도 많고 그림 그리는 것도 좋아하는 것 같다며 이런 저런 말씀을 하시다가 한 가지 걱정되는 부분을 이야기하셨다. 


"쉬는 시간에 책을 보거나 그림을 그리면서 집중하다보면 수업 준비하는 데 시간이 좀 오래 걸려요. 몇 번 불러도 대답을 안할 때도 있고 자꾸 OO에게 집중하다보면 다른 친구들에게 신경을 못 쓰기도 하고요" 

사실 1학년 때 선생님께 비슷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어서 담임 선생님이 하시는 말씀이 충분히 이해되었다. 집에서도 한 가지에 집중하면 내가 불러도 못들을 때도 있고 여기 저기 궁금한 것들이 많아서 한 가지 일을 진득하게 끝내는데 시간이 오래 걸릴 때도 있다. 정리 정돈 습관도 아직은 부족하니 연습이 필요하다는 말씀을 듣고 집에서도 잘 지도하겠다고 말씀드리고 나오는 길, 마음 한쪽이 무겁기도 했다.  

그날 책상에 이거 저것 펼쳐놓고 제대로 치우지 않는 아이의 모습이 유독 더 눈에 들어오고, 동생에게 나에게 자꾸 짜증을 내는 아이의 말투가 유독 더 귀에 박혔다. 다음 날, 아이 반 친구의 어머니도 상담 중에 아이에 대해 걱정하시는 선생님 이야기를 들려줘서 마음이 더 무거웠다. 아이와 둘이서 차를 타고 병원 갈 일이 생겨 학교 생활에 대해 이런 저런 대화를 나눴다. 학교 생활이 재미있고, 한 반에 여자 아이들만 있지만 그래도 괜찮다는 아이. 

"그런데, 선생님이 우리 도니가 가끔 수업 준비를 늦게 해서 수업에 지장이 있을 때도 있다고 하던데 그런 것 같아?"

"조금 그럴 때도 있어요"

"뭔가를 집중해서 한다는 건 좋은 거야. 그런데 그게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면 안되니까 좀더 노력해볼까?"


아이는 그날 병원에서 겁이 나 가만히 앉아있지 못해 다른 병원까지 가며 귀지를 겨우 뺐고, 미용실에서도 머리카락이 간지럽다고 계속 움직여서 겨우 머리를 깎았다. 옷 안에는 머리카락이 가득. 전 날 선생님과 상담을 하면서 이런저런 걱정을 갖고 있던 나는 아이의 이런 모습을 보면서 더 속상하고 화도 났다. 

 '왜 이렇게 쉬운게 없니...'

누군가 아이에 대해 안 좋은 평가를 하거나, 아이의 행동에 대해 걱정하는 주변의 시선이 느껴지면 엄마는 더 불안해진다. 이대로 괜찮을까, 빨리 아이가 좋은 습관을 갖도록 더 적극적으로 좀 더 단호하게 바로잡아야 하는 건 아닐까. 나도 그런 마음이었다. 걱정이 많아지고 아이의 문제 행동만 눈에 보이며, 그동안 사랑스럽다 여긴 아이의 장점은 온데간데 없이 잘 보이지 않는 상황. 


그럴수록 이 상황을 객관적으로 바라보아야 했다. 아이가 자기 물건을 잘 정리하고 정돈하는 습관은 중요하다. 하지만 시간이 많이 필요한 일이고 연습이 필요한 일이다. 집에서 아이가 벗은 옷을 빨래통에 넣고, 책상에 읽었던 책이나 숙제했던 과제는 다시 제자리에 두는 연습을 하고 있는데 몇 달을 해도 제자리일 때가 많다. 계속 이야기를 해줘야 하고 몸에 습관으로 익을 수 있게 도와주고 기다려주기. 현재 한 반에 4명인데 3명의 여자 친구들이 스스로 잘하는 상황에서 아이의 행동이 더 도드라져보일 수도 있다. 속상하고 안타까운 일이지만 아이만의 속도를 인정하고 계속 알려주고 기다려줘야겠지. "다른 친구들은 잘 하는데 너는 왜.."라는 말은 절대 하지 않고. 미숙한 행동이 조금씩 나아질 수 있게 옆에서 꾸준히 알려주고 가르쳐주는 것도. 


무엇보다 아이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인정하고 사랑해주자 다짐한다. 농촌이라는 낯선 곳에서도 잘 적응하는 아이, 자기 또래의 남자 친구가 없는 상황에서도 먼저 형들에게 같이 놀자고 다가가는 아이. 반 친구들이 그냥 다 좋고 선생님도 좋다고 말하는 아이. 그 속에서 아이는 때로는 마음을 다치기도 하고, 힘든 날도 있겠지만 그것들이 아이의 마음을 자라게 해준다고 믿으며 아이는 계속 자라는 중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으려 한다. '몇 번을 이야기 했는데... 몇 번을 더 이야기해야되니' 속상하고 화가 나는 내 마음을 다스리는 것도 나의 몫. 아이 키우기는 늘 어렵지만 아이가 만들어주는 고비 고비 덕분에 나도 이렇게 성찰의 시간을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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