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교육 서른일곱번째 이야기
지난 설에 시어머니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중이었다. 아는 사람 중에 자기가 하는 일에서 잘 나가고 성공은 했지만 아이들은 제대로 키우지 못했다고, (제대로라는 의미가 무엇인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그래도 가정이 먼저가 아니겠냐고. 가정이 먼저라는 건 어떤 의미일까, 나와 가족은 어떤 관계인가 여러 생각들을 붙잡고 지냈다.
마침 친한 지인들의 단톡방에서 <다정한 무관심> 책을 함께 읽으며 개인주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던 터라 내 머릿속에는 '가족' '나' '개인' 이 세 가지 단어가 한동안 혼란스럽게 엉켜있었다. 영화나 드라마를 보다 보면 남들이 보기에 잘 나가는(괜찮은) 남편을 두거나 괜찮은 아내를 둘 경우 배우자들의 자존감은 한층 높아진다. 반대로 남편이 혹은 아내가 내세울 것 없이 초라하게 보이거나 사업에서 실패하는 등 제대로 되는 일이 없을 때 배우자의 자존감은 한없이 떨어진다. 남들 앞에서 나 스스로도 작아지는 것이다. 이건 부모와 자식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일 때가 많다. 목욕탕에서 자식 자랑하며 어깨에 힘 들어가는 어머니들도 많이 봤었고, 나이가 들었는데 결혼 안 하고 혼자 사는 자식 때문에, 변변한 직업도 없는 자식 때문에 체면이 안 선다는 부모님 친구 이야기도 많이 들었다. 아이들을 키우다 보니 아이의 부족한 부분이 엄마인 나의 자존감과도 별개가 아니라는 걸 느낀다. 내 가족 구성원들의 문제에 왜 내 자존감까지 좌지우지되는 걸까. 왜 사람들은 가족과 나를 동일시하는 경향이 강할까. 사회 시스템적인 문제도 분명 있다.
북유럽 사회에서는 교육이든 간병이든 다양한 복지 시스템을 통해서 그 책임을 사회가 맡아 주니 부모와 자식 사이라도 개인과 개인으로 관계가 정립될 수 있는 것 같아요. 서로에 대한 책임이 그만큼 덜어지니까요. <'북유럽 행복의 비결은 함께 잘 사는 개인주의' 기사 중에서>
한국에서는 복지의 주체가 가족이다 보니 가족 구성원에게 문제가 발생하면 가족 전체가 위험해진다. 가족의 나머지 구성원이 그 부담을 떠안아야 한다. 이런 현실이 '우리 가족, 즉 가족은 마지막 보루'라는 믿음과 개인을 가족 집단과 동일시하는 현상을 강화했다. <환장할 우리 가족 p8>
정상 가족, 주류 가족이 아니면 사회적으로 소외되는 분위기도 크게 작용할 것이다. 조금이라도 '정상'의 범주에서 벗어나면 '흠'으로 작용하는 시선은 여전히 존재하니까. (결혼하고 몇 년이 지나면 꼭 듣게 되는 말 "아이는 언제 가질 거야?", 자식들도 잘되고 별 문제없는 완벽한 가정에 대한 환상). 자녀가 어른이 되어서도 독립적인 개인이 아니라 여전히 '가족' '우리'라는 울타리 안에서 대하는 어른들 모습을 볼 때면 한 개인과 가족 구성원의 동일화는 너무나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여진다. 그런데 그게 불편할 때가 많다. 그런 생각을 계속하는 이상, 나는 내 기준(내 자존감을 침범하지 않을 정도)에 이상적인 남편, 이상적인 아이들을 항상 기대할 것 같아 두렵다. 가족들로 인해 내 자존감이 떨어지거나 내 삶이 부정당하는 걸 원하지 않고 반대로 나로 인해 아이들이, 남편이 자존감을 잃거나 자책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가족이 먼저냐, 내가 먼저냐를 떠나서 존중과 배려를 전제로 하는 가족의 모습을 꿈꾼다. 아이들의 성공이 곧 나의 성공, 아이들의 실패가 곧 나의 실패 이런 평면적인 판단도 경계해야겠다. 가족으로 만났지만 엄연한 개인이다. '나'이고 '너'다. 사실 나도 40년을 '가족'을 먼저 두고 '나'와 '너'를 나중에 생각하는 환경에서 살았으니 쉽지는 않겠지만,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서로 행복하기 위한 개인주의를 마음에 담고, 가족으로 존재하는 한 피할 수 없는 '훈련'이라 여겨야겠다.
문득, 지난날 아침 풍경이 떠올랐다. 자꾸 출근 시간에 아슬아슬하게 준비하는 남편에게 "지각하는 거 아니야? 자전거 타고 갈려면 얼른 나가야지!" 심지어 가끔은 출근한 남편에게 카톡으로 "지각 안 했어?" 묻기까지. 오 마이 갓. 남편과 나를 분리하는 일부터 먼저네.
(가족) 집단과 다른 자신의 특징을 이해받지 못하고 부정당하면 그 구성원은 자존감과 만족감을 갖기 어렵다. '우리' 가족을 화목하고 행복하게 지키려는 선한 의도가 오히려 갈등을 회피하거나 억압함으로써 환장할 가족을 만들 수 있다는 건 참 아이러니한 일이다. <환장할 우리 가족 p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