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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소 반디 Jun 15. 2022

엄마만 뿌듯했던 거야? (아이 숙제에 대한 관점)

소소교육 마흔번째 이야기

요즘 첫째의 저녁 일상이 조금 바뀌었다. 원래 아이는 저녁을 먹고 하고 싶은 걸 하다가 저녁 7시 30분이 되면 수학책이나 수학 학습지를 펼쳐 두 장 풀고, 파닉스 책 1장을 하고 얇은 영어책을 읽어보고 두 번 들으며 따라 읽기를 했었다. 거의 1년째 이어오던 루틴이었다. 그동안 우여곡절도 많았다. 1학년 때 집에 오면 시간이 많으니 놀러 나가기 전에 하나씩 먼저 하게 도와주기도 하다가, 자꾸 잔소리가 되어가는 것 같아 "네가 하고 싶은 시간에 하는 걸로 하자, 대신 저녁 7시 30분이 되면 엄마가 딱 한 번 알려줄게" 했더랬다.



그런 과정을 거쳐 아이는 저녁을 먹고 시계를 보다가 시간이 되면 책을 꺼내 숙제를 했다. 가끔 읽고 있던 책이 너무 재미있을 때는 좀 늦게 시작해 늦게라도 그날 해야 하는 걸 하기도 하고. 이제 어느 정도 습관이 된 것 같아 잔소리는 거의 줄었고, 아이가 영어책을 조금씩 읽는 걸 보면 신기하고 뿌듯하기도 했다. 역시 매일 꾸준히 하는 힘이란~ 후후~ 



그런데 농촌 유학을 와서 하교 시간이 늦어지고, 밖에서 한참 놀다가 집에 들어오는 시간도 늦어지니 저녁 시간이 더 바빠졌다. 자야 하는 시간은 지켜야 하니 내 마음도 바빠지고 아이는 매일 꾸준히 숙제를 하는 걸 힘들어하기도 했다. 그래도 하던 거니까 계속 시켜야 할까, 아이가 선택하도록 해야 할까 어려운 고민에 빠졌다. 그런 와중에 <오히려 최첨단 가족>을 읽으며 생각이 많아졌다. 그동안 소소 교육을 연재하며 나는 아이가 주체적으로 선택하기를, 꼭 공부가 아니더라도 배우는 즐거움을 스스로 찾기를 바라왔는데. 나는 자꾸 오늘 해야만 하는(엄마가 정한) 일을 자기 전에 끝내야 한다고 강요했던 건 아닐까. 그래도 아이에게 적당한 스트레스는 필요하다고 하니까, 하기 싫은 공부라도 꾸준히 하게 하는 힘도 필요하다고 하는데, 아이 교육에 있어 결정은 늘 어렵다. 



"공부를 하기 싫은 마음은 당연해. 그런데 몸도 자라듯이 뇌도 자라야 하는데 공부하면서 뇌를 자라게 하는 거야"

아이가 공부를 왜 해야 하냐고 물었을 때 나는 이렇게 대답해줄 참이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아이는 학교에서도 공부를 한다. 책을 보면서도, 다양한 경험을 하고 생각하면서도, 부딪혀보면서도 뇌는 자랄 수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 아이의 생각이 궁금했다. 



"엄마가 생각을 해봤는데, 숙제는 엄마를 위해서가 아니라 도니를 위해서 하는 건데 집에서 하는 숙제는 네가 어떻게 할지 선택하는 게 좋을 것 같아서"



"엄마, 학교에서도 공부하고 방과 후에도 선생님이 글 쓰라고 하실 때도 있어요. 그래서 집에서까지 하는 건 사실 힘들고 하기 싫기도 해요"



"그래도 도니가 수학을 잘한다고 했잖아. 그동안 꾸준히 했기 때문에 그런 거 아닐까? 꾸준히 하니까 영어도 좀 읽을 수 있잖아. 뿌듯하지 않아?" (자꾸 성취감, 뿌듯함을 상기시켜 조금이라도 했으면 하는 엄마의 마음..)



"하나도 안 뿌듯한데요?"



헉.. 엄마만 뿌듯했던 것인가. 아이는 매일 해야 하는 숙제 속에서 뿌듯함을 별로 느끼지 않았나 보다. 아마도 매일 해야 하는 거라고 하니까 했던 걸까. 오히려 자기가 좋아하는 상어 그림을 멋지게 그릴 때, 아니면 곤충에 대한 설명을 형들에게 해줄 때 더 뿌듯함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그랬어...? 그럼 숙제는 네가 선택해서 필요하거나 하고 싶을 때 하는 걸로 할래?"



그래서 아이가 집에 와서 매일 하던 숙제는 없어졌고, 아이의 저녁은 한결 여유로워졌다. 물론 나는 사실 아쉬운 마음도 들었다. 꾸준히 한 덕분에 좀 읽던 영어를 다 까먹으면 어쩌나, 1년 가까이하면서 나름 습관이 된 것 같았는데 멈추는 게 맞을까. 아이는 집에 오더니 "숙제 안 하니까 정리는 잘해야지?" 하고 기쁜 마음으로 옷을 걸어놓고 가방을 자리에 두었다. 여유로워진 저녁 시간에 가끔 아이는 빨래 개기를 배우고 서랍에 정리해서 넣기도 하고 아침에는 이제 매일 침대 정리를 하고 있다. "엄마, 저 정리에 소질 좀 있는 것 같지 않아요?" 하며.  



사실 이렇게 저녁 시간이 바뀌고 한 동안은 학교 갔다 와서 종일 놀기만 하는 아이를 보며 화가 울컥 올라올 때도 있었다. 다른 아이들은 숙제하고 나와서 놀기도 하는데. 아이에게 화를 직접적으로 내지 않아도 아이를 대하는 내 말투에, 내 목소리에 속상함이 묻어있던 적이 있었을 것이다. 언젠가는 그때 그냥 습관을 쭉 유지할 걸 후회할지도 모르지만, 나는 그저 아이를 사랑하는 방법을 요리조리 궁리하는 중이었을 거라 여기고 싶다. 아이가 공부하며 느낄 뿌듯함보다 같이 집안일을 하고 자기 몫의 일을 하며 뿌듯함을 느끼는 게 더 좋지 않겠냐 믿으며. 



수많은 사랑의 정의 중 나는 '상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를 가장 좋아한다. 나 역시 그런 사랑을 하는 사람이고 싶다. 그런 마음만으로 성급하게도 이미 그런 사람이라도 된 것 같은 은밀한 자기 만족감에 빠지기도 하지만, 그때마다 이런 생각이 와장창 깨지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아이들이 한창 예뻐 보일 때 문득 정신을 차리고 보면, 아이들이 내가 원하는 대로 혹은 내가 시키는 대로 행동할 때인 것이다... 사랑한다는 건 도대체 뭘까? <오히려 최첨단 가족, p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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