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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숲 Feb 10. 2019

가게 문을 자주 닫으면 손님이 떨어지는 법

'프리랜서'는 재주를 파는 움직이는 '가게'다

우리 아빠는 가게를 운영하는 자영업자다.

아빠에게는 사소하지만 사소하지만은 않은 장사 철칙이 한 가지 있는데, 아주 중요한 일이 있지 않은 한 웬만해서는 가게 문을 잘 닫지 않는다는 것이다. 평일이나 주말은 물론이고, 웬만한 공휴일에도 쉬지 않고 꼬박꼬박 나가 빈 가게를 지킨다.

가게가 하루 이틀 문을 닫기 시작하면 손님이 떨어지는 법이라고. 문 열린 다른 가게로 발걸음을 옮기게 만들면, 결국 손님을 빼앗기는 법이라고. 반대로 '언제 가도 그 집은 열려 있더라'라는 인상을 갖게 되면 언제든 주저 없이 찾아오고 주변 사람들에게도 소개해 주는 법이라고 했다.


처음 가게를 시작했을 때는 설날이나 추석 같은 명절에도 제사를 지내고 나서 오후가 되면 슬며시 가게로 나가 문을 열었다. 지금은 친언니가 아빠 일을 돕고 있어서 오전/오후로 교대하며 일을 하고 있지만, 그때는 아빠 혼자 하루 종일 가게를 지켰기 때문에 쉬는 날이 거의 없었다. 그렇다 보니 우리 가족은 그 흔한 여름휴가 한 번 떠나지 못했다.

조금 미련한 방법이지만, 아빠의 그런 운영 방식은 실제로 손님들에게 신뢰를 주는 듯했다. 언제나 손님을 기다리고 있는 가게. 헛걸음하는 일이 없는 가게. 늘 살아있는 가게로. 그리고 의외로 손님이 없을 것 같은 날 평소보다 더 높은 수익을 올릴 때도 있었다.(물론 매번 그런 것은 아니지만)


한때는 그런 아빠가 답답하게만 느껴졌다. 눈치 볼 사람도 없는데. 가끔은 가게 문 닫고 놀러도 가고 그러면 뭐가 어떻다고. 그러나 프리랜서로 살고 있는 지금은 아빠처럼 매일 문을 열어두고 일하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비록 유리문 달린 가게는 없어도 나 역시 글 쓰는 재주를 판매하는 움직이는 자영업자가 아니던가.


생각해보면 가게 주인인 사람이 눈치 볼 사람은 불특정 다수인 손님이다.

글을 팔아 돈 버는 나의 손님들은 주로 영상이나 출판물 등 콘텐츠를 만드는 영상 제작자, 피디, 에디터 들이다.

그들이 내 글을 찾을 때 나는 웬만해선 거절하지 않고 청탁을 받아들인다. 어렵고 까다로워 보이는 일이라도 일단은 받아 둔다. 그러고는 혼자 끙끙 앓고 스트레스받더라도 끝내 작업을 해서 결과물을 내놓는다. 그래야 비교적 간단하고 쉬운 일이 있을 때도 나를 찾아줄 것이다.(단, 누가 봐도 까다롭게 느껴지는 작업에 대해서는 서로가 합의하는 선에서 추가적인 원고료를 요구한다.) 그리고 언제든, 어떤 작업이든 믿고 맡길 수 있다는 신뢰가 쌓이고 나면 그들의 고정적인 업무 파트너로 자리 잡게 되는 것이다.

반대로 몇 번 정도 일을 고사하면, 그들은 나를 대체할 다른 작가를 구하게 된다. 그런 상황이 반복되면 결론은 뻔하다. 글이 필요할 때마다 먼저 생각나는 건 내가 아닌, 무슨 일이든 뚝딱 맡아서 해 주는 다른 작가가 될 것이다. 결국 나는 다른 작가가 일을 맡아주지 못할 때, 아주 급할 때나 찾게 되는 '땜빵' 작가가 되고 마는 것이다. 한마디로 말해, 다른 작가에게 내 단골손님을 잃게 되는 셈이다.


흔히 프리랜서가 되면 일하고 싶을 때 일하고, 하고 싶은 일만 할 수 있다고들 한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얘기이다. 직장인이라면 잠시 휴가라도 낼 수 있지만, 프리랜서는 맡고 있는 일들을 아예 그만두지 않는 한 따로 휴가를 낼 수 있는 재간이 없다. 여러 가지 일을 맡고 있는 경우 일정을 조절하기 힘들 때도 많고, 여러 사람이 협업하는 경우에는 일을 반드시 어떤 특정 시간에 해야 할 때도 있다.

그래서 여행을 갈 때 나는 노트북과 일감들을 짊어지고 간다. 비행기에서 이륙 직전까지 방송 자막을 친 적도 있고, 여행지에서 일행들을 먼저 식당으로 보내 놓고 혼자 숙소에 남아 원고를 쓴 적도 있다. 그렇게 쉬지 않고 부단히 일해야 여행이 끝난 후에도 내 삶과 일이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움직이는' 자영업자인 덕분에 여행을 가긴 간다)


물론 아빠가 처음 가게 문을 열었을 때처럼 평생 쉴 틈 없이 일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프리랜서로서 비교적 안정적으로 일을 하고 수입을 유지하기 위해선 스스로 바쁘고 부지런해야만 한다.

 '일하고 싶을 때 일하고, 하고 싶은 일만 할 수 있다'는 환상만으로 프리랜서가 되는 것은 꽤 위험한 일이라는 것. 프리랜서가 되기 전 꼭 알아두어야 하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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