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받기 어려운 사람들 -2
신용카드를 발급받을 때보다 프리랜서라는 조건이 더욱 불리하게 작용하는 순간은 바로 대출을 받을 때다.
2017년 여름, 이사를 앞두고 전세금 대출을 받기 위해 은행에 갔다.
고시원에서 첫 자취를 시작해 10년 넘게 원룸에서만 살아왔기에, 이번만큼은 방이 두 개쯤 있고 거실도 있는 넓은 집으로 옮기고 싶었다. 나이가 서른이 넘었으니 이제 부모님이 보태주신 보증금을 돌려드리고 경제적으로 완전히 독립하고 싶은 마음도 컸다.
자세히 알아보니 정부에서 지원하는 전세자금 대출은 이자율이 낮은 편이라 큰 부담이 되지 않을 것 같았다.
하지만 문제는 내가 프리랜서라는 것.
이전에 신용카드 발급을 거부 당한 기억 때문에 은행에 가는 내내 발걸음이 무거웠다. 또 다시 대차게 거부당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게다가 은행에 가기 전 주변 집들의 시세를 미리 알아보았는데, 나는 꽤 많은 돈을 대출 받아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래도 막내작가일 때보다는 수입이 많이 는 데다, 외주제작사와 계약서를 쓰고 출퇴근하며 일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소속이 있는 상태로 인정해 줄지도 모른다는 한 가닥의 희망은 있었다.
은행원은 정확한 대출 가능 금액을 확인하려면 여러가지 서류를 준비해 와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대략적인 내 현재 상황과 조건들을 살펴봤을 땐 원하는 금액까지 대출이 가능할 것 같다고 귀띔해 주었다.
예상치 못한 긍정적인 진단에 나는 기쁜 마음으로 은행을 나섰다. 온전히 내 힘으로 전세 보증금을 마련할 수 있다니. 어엿한 사회인이자 경제주체로서 당당히 인정받은 것만 같았다.
나는 필요한 서류들을 준비해, 며칠후 다시 은행을 찾았다.
은행원은 서류를 꼼꼼히 살피며 내 직업과 소득 내역 등을 컴퓨터에 입력했다. 결과를 기다리면서 그 동안 봐둔 마음에 드는 집들을 머릿속에 떠올려 보았다. 대출만 잘 해결된다면 오늘 당장 계약도 할 수 있으리라. 방이 두 개인 집으로 간다면 방 하나는 침실로, 또 하나는 옷방으로 써야겠다는 야무진 계획도 세웠다.
그러나 몇분 후 은행원이 전해준 결과는 참담했다. 실제로 내가 대출받을 수 있는 돈은, 내가 필요로 하는 돈의 1/3에 불과했다.
"왜 이 정도밖에 대출이 안 되나요?"
은행원은 난감해하며 말했다.
"죄송하지만 서류를 확인해 보니 직업이 프리랜서로 구분이 돼서요.
소득을 반 정도만 인정받을 수 있는 상황이네요."
언제든 수입이 끊길 수 있기 때문에, 실제로 버는 돈의 절반 정도만 소득으로 인정이 된다는 것이었다. 소득이 적으면 그만큼 돈을 갚을 능력도 낮다고 보기 때문에 대출 받을 수 있는 금액도 적을수밖에 없다고 했다.
나는 황망한 마음으로 은행원에게 물었다.
"그럼 다른 방법이 없을까요?"
그는 정부에서 지원해 주는 전세금 대출이 아닌, 다른 대출 상품을 이용하는 방법이 있다고 말해주었다. 만약 그 상품으로 대출을 받는다면 매달 얼마큼의 이자를 부담해야 하는지도 계산해 주었다.
"아무래도 이건 이자 부담이 너무 크죠?”
그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내 표정을 살폈다. 지난번에 나에게 너무 긍정적으로 진단을 해준 것이 마음에 걸리는 모양이었다.
나는 좀 더 생각해 보겠다고 말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신용카드 발급을 거부 당해 노트북을 비싸게 사야했던 때완 조금 다른, 좀 더 묵직한 막막함이 마음을 짓눌렀다.. 정규직이 되지 않는 한 넘기 힘들, 크고 단단한 금융의 벽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신용등급과 소득이 같아도 프리랜서냐 정규직이냐에 따라 은행에서 이렇게까지 다른 대접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 새삼 놀랍기도 했다.
아무리 정규직 회사원이라도 금세 회사를 그만둘 수도 있고, 아무리 프리랜서라도 몇 년 간 한 자리에서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는 것인데 말이다. (내 경우를 보더라도, 정규직에서 일할 때보다 프리랜서로 일할 때 한 곳에서 근무한 기간이 대체적으로 더 길다) 그런데도 은행은 그저 비정규직이기 때문에 나를 ‘불안정한 사람'으로 낙인 찍은 것이다. 그간 내가 소득을 얼마나 잘 관리했는지,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얼마나 꾸준히 해왔는지는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말이다. 나는 그 점이 너무 속상하고 억울했다.
결국 나는 대출 받기를 포기했다. 매달 월세와 다름 없을 정도로 높은 이자를 은행에 내는 건 너무 아까웠다. 그래서 나는 '완전한 경제적 독립'이라는 로망을 잠시 제쳐두고, 현실과 조금 타협한 새로운 독립 방안을 모색했다.
일단 부모님께 보증금을 모두 돌려드리겠다던 야심찬 선언을 철회하고, 그 대신 그 보증금에 대한 이자를 책정해(정부에서 지원하는 전세자금대출의 이자율로 계산했다) 매달 부모님께 입금해 드리기로 약속했다. 그리고 원금도 꾸준히 갚아나가기로 했다. 바로 이것이 내가 선택한 가장 현실적인 수준의 독립이었다.
이런 일들을 겪으며 나는 내 재정상태를 더욱 탄탄하게 만들어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혹시 갑자기 내게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당황하지 않고 잘 대처할 수 있도록. 집을 사거나 사업을 하는 등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있을 때 막힘 없이 내 선택과 판단을 따라갈 수 있도록. 그리고 부모님께 더 손을 벌리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세상으로부터(정확히 말해 금융기관으로부터) 신용받을 수 없다면, 내가 날 신용해 줄 준비를 해 두어야 했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선 어쨌든 '꽤 많은 돈'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 후 나는 더욱 열심히 글을 쓰고, 열심히 돈을 벌고 열심히 돈을 모았다. 청탁이 들어오면 웬만해선 마다 않고 다 맡아서 했고, 개인적인 여가시간을 줄여서라도 일을 늘렸다.
아이러니하게도 비(非)전속의 리스크를, 비(非)전속의 힘으로 극복하고 있는 셈이다.
직업뿐만 아니라, 때론 삶 전체를 ‘비정규직’ 취급 받는 사람들. 프리랜서로 산다는 건 그런 차별과 홀대의 영역으로 제 발로 뚜벅뚜벅 걸어들어가는 일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사실은 결코 잊지 않으려 한다. 직업과 근무의 형태에선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구분이 있을 수 있지만, 인생은 어차피 누구나 예상할 수 없는 불규칙의 연속이라는 것. 그렇기에 인생에 있어선 영원한 정규의 삶도 비정규의 삶도 없다는 것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