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받기 어려운 사람 -1
프리랜서의 생활을 가장 잘 설명하는 단어를 꼽는다면 '불규칙성'과 '불확실성'이 아닐까 싶다.
수입도, 하루 일과도 일정하지 않으며, 지금 당장은 일정하더라도 오래도록 쭈욱 일정하리란 확신은 없는 사람.
이런 프리랜서가 손님으로서 가장 환영받지 못하는 곳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은행, 카드사 같은 금융기관이다.
몇 년 전, 나는 새 노트북을 사려고 한 전자제품 매장에 갔다.
마침 그곳에선 특별 할인 행사를 하고 있었는데, 매장과 협약을 맺은 특정 신용카드로 결제하면 노트북을 파격적으로 저렴한 가격에 구입할 수 있다는 거였다. 당장 그 신용카드를 가지고 있지 않더라도 카드사에 발급 신청만 하면 곧바로 할인 적용을 받을 수 있다고 했다.
확인해 보니 내가 갖고 싶어 하던 모델은 인터넷 최저가보다 무려 10% 이상 싸게 살 수 있었다. 매장 직원은 그 정도 할인 혜택이면 연회비를 내더라도 훨씬 이득이라며 나를 설득했다. 필요하지도 않은 카드를 새로 발급받아야 한다는 게 마음에 걸렸지만 놓치기 아까운 할인 혜택이었다.
결국 카드를 발급받기로 결심하고, 다음날 카드사에 전화를 걸었다.
안내원은 친절하고도 능숙하게 발급 신청 절차를 진행했다. 이름, 주민등록번호, 집 주소 등 개인정보에 대한 안내원의 질문이 이어졌다. 카드 발급은 순조롭게 이루어지는 듯 했다. 그렇게 한참을 통화한 끝에, 안내원이 내게 물었다.
"직장은 어디십니까?"
나는 있는 그대로 답했다.
"방송작가라, 프리랜서예요."
그러자 안내원이 말했다.
"아, 그러세요? 그럼 죄송하지만, 신용카드 발급이 어렵습니다."
"네?"
예상치 못한 상황에 나는 잠시 당황했다. 새 노트북을 살 생각으로 들떠 있던 마음에 찬물이 확 끼얹어졌다.
"왜... 왜요?"
이유는 단 한 가지. 프리랜서이기 때문이었다.
나는 재차 물었다.
"저 신용 등급에도 문제없고 세금 같은 것도 밀린 적 없는데요?"
안내원은 친절함을 유지하며, 죄송하지만 그래도 어렵다고 답했다.
회사에 다닐 때는 카드사 직원들이 사무실에 찾아와 카드 발급을 권유하곤 했었다. 매번 거절하기가 죄송스럽고 난처할 정도였다. 그런데 프리랜서가 된 지금은 카드를 만들고 싶다고 직접 전화를 걸어도 거절당하는 처지가 된 것이다.
프리랜서라는 이유만으로 발급받을 수 없는 카드가 있다니. 말로만 듣던 프리랜서의 현실이 이런 건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자존심도 상했다.
혹시 다른 방법은 없느냐고 물었더니 안내원이 물었다.
"혹시 본인 명의로 땅이나 부동산을 소유하고 계신가요?"
"음, 아뇨…."
"그럼 혹시 결혼하셨나요? 남편 분이 직장에 다니면 가능한데."
"… 아뇨."
"죄송하지만, 그러면 카드 발급이 어렵습니다."
그렇게 나는 다시 한번 거절당하고 말았다.
프리랜서인 데다 땅도, 부동산도, 정규직 남편도 없는 삶. 없어도 딱히 문제 될 게 없는 것들이었는데 딱 한 순간, 신용카드를 발급받는 순간만큼은 문제가 되고 만 것이다. 어쩔 수 없는 일이란 걸 알면서도 기분이 상했다.
정규직이 아니어도 앞가림 잘하며 살 수 있다고 자신만만하던 마음이, 고작 신용카드 한 장 앞에 쪼그라들었다. 그제서야 나는 일반적인 테두리에서 조금 빗겨난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결국 나는 신용카드 발급을 포기하고, 인터넷으로 노트북을 주문했다.
성실히 일하고 꾸준히 수입이 늘어도, 공과금과 세금을 밀리지 않고 꼬박꼬박 납부해도 쉽게 신용을 얻을 수 없는 사람. 금융기관에선 불리한 입장이 될 수밖에 없는 프리랜서의 처지를 처음으로 실감한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