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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숲 Jan 11. 2019

그렇게 퇴사왕이 된다

언제든 끝날 수 있다는 마음가짐

첫 사직서는 그토록 비장했으나, 프리랜서가 된 후에는 언제든 일을 그만둘 수 있는 상황에 익숙해져야 했다.


처음 일을 시작했을 때 나는 어쩐 일인지 한 자리에 오래 머물지 못했다. 내 의지에 의해 일을 그만둔 적도 있었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었는데, 특히 방송 일의 경우 프로그램이 폐지가 되거나 담당 피디가 바뀌면서 일자리를 잃게 될 때가 많았다.


회사를 나와 처음 라디오 작가로 일할 때였다.

내가 맡은 프로그램은 매달 공개방송을 열었는데, 공연장에 도착해보니 그날따라 피디님의 안색이 너무 어두웠다. 평소 같으면 오늘 원고는 오프닝이 어떤지, 질문지는 어떤지 의견을 줄 텐데, 그날은 내 쪽으로 다가오지도 않고 심각한 표정으로 공연 준비만 지켜보고 있었다. 같이 일하던 선배 작가도 눈치만 살필 뿐 이유는 모르는 듯했다. 아무래도 분위기가 이상했다.

행사가 다 끝난 후 뒤풀이에 가서야, 나는 우리 프로그램의 폐지가 결정됐다는 소식을 전해 들을 수 있었다. 심지어 오늘 진행한 공개방송이 마지막 방송이 될 것이라 했다. 청취자에게 마지막 인사조차 하지 못한 채 종방을 맞게 된 것이다.

피디님은 술을 몇 잔이나 연거푸 마시며 5년이나 된 프로그램을 어떻게 하루아침에 없애느냐며 비통해했다. 일방적으로 폐지를 통보한 관리자를 비난하기도 했다. 그가 그렇게 선수를 치는(?) 바람에 나는 그 자리에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직접 기획하고 이끌어 온 프로그램이 갑자기 끝나게 되니 얼마나 속상하고 서운할까, 생각하며 그저 그의 하소연에 고개만 끄덕일 뿐이었다.

술자리가 파하고, 집 방향이 같은 협찬사 직원과 동네까지 함께 걸었다. 갈림길에서 헤어지기 전, 그녀는 내게 '다음에 좋은 기회가 있으면 또 같이 일했으면 좋겠어요' 하고 인사했다. 나는 '갑자기 협찬이 끊기게 돼서 죄송하네요'하고 답했다. 그러자 그녀가 말했다.


협찬이야 안 하면 그만이지만… 갑자기 일자리를 잃었으니 어째요?


그녀의 말이 맞았다. 프로그램이 없어져도 협찬사 직원은 돌아갈 회사가 있고, 종방을 그토록 애통해 마지않았던 피디도 방송국의 정규직이니 또 다른 프로그램을 맡게 될 것이다. 그러니 이번 종방으로 인해 생계의 위기까지 맞닥뜨린 건 오직 프리랜서인 작가들뿐이었다. 그나마 선배 작가는 경력도 많고, 아는 사람도 많으니 얼마든지 일을 구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나는 당장 내일부터 뭘 해야 할지 몰랐다. 정작 하소연을 해야 하는 사람은 담당 피디가 아니라 나였는지도 몰랐다. 나는 곧장 집으로 들어가지 않고 잠시 동네를 배회하며 걸었다.

'각자도생'이라는 말이 생각났다. 다들 살 길을 찾아 떠났는데 나만 홀로 남겨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회사에 있을 때는 그토록 오래 고민하고 망설이며 스스로 결정했던 '퇴사'가, 프리랜서의 세계에서는 얼굴도 모르는 누군가에 의해 결정되고 어느 평온한 저녁에 갑자기 통보될 수도 있음을. 당장 내일의 계획을 모두 잃을 수도 있음을.

초보 프리랜서는 그 냉혹한 현실을 그날 밤 처음으로 절실하게 깨달았다.


그 이후에도 비슷한 상황을 종종 겪었다.

다른 프로그램을 맡게 되어 다시 1년쯤 라디오 일을 했을 때였다.

어느 날 라디오국의 부장 피디님이 갑작스럽게 일을 관뒀다. 얼마 후 다른 피디가 그 자리에 앉게 되었다. 새로운 이 부장 피디는 부임하자마자 대대적인 인사이동을 지시했다.

그 당시 나와 같이 일하던 피디는 두 개의 프로그램을 맡고 있었는데, 이 인사이동으로 인해 나와 함께 하던 프로그램에서 손을 떼게 됐다. 그럼 새로운 피디와 일하게 되는 건가? 하고 생각하고 있을 때 비극적인 소식이 들려왔다. 우리 프로그램을 새로 담당하게 된 피디는 오랫동안 손발을 맞춰서 일해 온 작가가 이미 있어서 그 작가를 데려올 거라는 것이었다.

결론은, 우리 팀 작가들이 그 자리에서 물러나야 한다는 것. 부장 피디가 바뀌게 된 일과 관련도 없고 업무적으로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지만, 갑자기 튄 그 황당한 불똥을 피할 방법은 없었다. 같이 일할 작가를 고를 권리는 전적으로 그 프로그램을 맡게 될 피디에게 있었기 때문이다.

미안해 어쩔 줄 몰라하는 피디에게 최대한 의연한 표정을 지어 보였지만, 솔직히 말하면 종방으로 일을 그만뒀을 때보다 더 막막하고 황당하고 비참했다.  

나는 그렇게 또 한 번 허무하게 라디오국을 나서야 했다.


이런 일들은 내게 작지 않은 상처가 됐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프리랜서로서 필요한 마음의 필수 장비들을 갖출 수 있는 계기도 됐다.

갑작스럽게 일을 그만두게 되더라도 의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단단한 정신력을 갖출 수 있었고, 언제든 다시 새롭게 시작할 수도 있다는 긍정적인 마음가짐도 준비해 둘 수 있었다. 시간과 상황이 허락하는 선에서 투잡, 쓰리잡을 뛰며 경제적인 어려움에도 대비할 수도 있었다.  


물론 늘 '잘린' 것만은 아니다. 나 스스로 일을 그만둔 적도 많다.

일이 맞지 않거나, 같이 일하는 사람이 맞지 않아서. 혹은 더 좋은 일자리를 찾게 되어서. 경력을 쌓을 만큼 쌓았다 싶어서. 이제 다른 프로그램이나 일을 해 보고 싶어서.

매 순간 책임감을 가지고 최대한 신중하게 결정했지만 정규직 회사원으로 일할 때보다는 더 자주 퇴사를 선택하게 됐다. 적당한 타이밍에 일을 그만두거나 옮기는 것이 프리랜서로서 최상의 커리어를 쌓는 방법이다 보니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했다.


이런 일련의 상황들 속에서 나는 퇴사에 굴하지 않고, 퇴사를 두려워하지도 않는 '퇴사왕'으로 거듭날 수 있었다.


사실 ‘퇴사왕’은 라디오국에서 두번째 쫓겨난 날, 나 자신에게 붙였던 자조적이고 웃픈 별명이었다. 그러나 프리랜서로 7년의 시간을 보낸 지금은 어쩔 수 없는 숙명이자 내 삶의 머스트 해브 아이템으로 받아들이게 됐다.

많은 회사를 만나고, 또 그만큼 많이 떠날 수밖에 없는 사람. 앞으로도 나는 그렇게 살아야 할 것이다.



(참고로 프리랜서의 경우 법적으로는 '입사', '퇴사' 대신 '위촉', '해촉'이라는 단어를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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