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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숲 Jan 08. 2019

한때는 나도 정규직이었다

정규직, 그만두겠습니다!

한때는 나도 정규직이었다.


스물다섯. 모질고도 지독한 취업난을 겪어낸 후 겨우 얻은 직장이었다.

대기업부터 중견기업까지 수십 군데에 이력서를 넣었지만 서류 전형에서 그야말로 '광탈'이었다. 문창과라 취업이 힘들 거란 얘기는 익히 들었지만 그래도 이 정도일 줄이야. 내가 이토록 쓸모없는 인간이었나 하는 자괴감에 시달렸다.


그토록 지난했던 취업 전쟁 끝에, 다행히 졸업 직전 한 교육회사 공채에 합격했다. 교육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그에 필요한 교재와 교육용 그림책을 만드는 곳이었다. 구인공고를 보기 전까지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회사였다. 평소 꿈꾸던 직군도 아니었다. 그래도 중소기업치곤 나름 규모가 큰 회사고, 연봉도 동종업계에선 높은 편에 속했다. 무엇보다 '문예창작학과'를 우대하는 곳이었다.


사실 대학 시절 때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잘 모르는 사람이었다. 글 쓰는 걸 좋아해 문창과에 들어갔지만 정작 어떤 글을 잘 쓰는지, 어떤 글을 쓰고 싶은지는 몰랐다. 학교에 다니는 동안 주로 소설을 썼지만, 소설가가 되고 싶은 건 아니었다. 무엇이 되어야 할지 몰라, 졸업 전 한 학기를 남기고 2년이나 휴학(이라 쓰고 도피라 읽는다)을 하기도 했었다.

그러니 이렇게도 사람의 길이 정해질 수도 있다고. 이런 게 인생을 이끌어가는 운명 같은 거라고. 나는 이 낯선 회사에 입사하기로 마음먹었다.


회사에 들어가자마자 안정감과 답답함이 동시에 찾아왔다.

그 두 가지 감정은 회사 생활을 하는 내내 엎치락뒤치락 내 마음속에서 싸움을 했다. 아침 알람 소리에 억지로 침대에서 일어날 때는 '답답함'이 우세했고, 매달 같은 금액의 돈이 적금에 쌓일 때는 '안정감'이 우세했다. 그러나 갈수록 안정감보다는 답답함이 더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되었다.  


매일 칼처럼 지켜야 하는 8시 50분이라는 출근 시간은 수갑과도 같았다. 머리가 멍한 오전 시간부터 사무실 컴퓨터 앞을 지켜야 있어야 한다는 것도 큰 곤욕이었다. 나는 타고난 올빼미형 인간이라 해가 떠 있는 시간에는 일에 잘 집중이 되지 않는다. 퇴근시간이 가까워 오는 오후 4시쯤이 돼야 비로소 집중이 되기 시작한다. 일이 가장 잘 되고 머리가 맑은 시간은 밤 10시부터 새벽 2시 사이. 회사에선 어영부영 시간을 보내다 퇴근 후 집에 가서 혼자만의 야근을 할 때도 많았다. 남들보다 일에 붙잡혀 있는 시간이 많았던 셈이다.


사무실이라는 공간도 내겐 잘 맞지 않았다.

내 자리는 직원들과 사장님이 자주 지나다니는 길목에 있었다. 벽을 마주 보고 뒤로 훤히 뚫려있는 자리라 누구든 마음먹으면 내 컴퓨터 모니터를 흘끔거릴 수 있었다. 누군가 내 모니터를 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항상 뒤통수가 간지러웠다. 갑자기 사장님이 지나갈 때면 딴짓을 하고 있는 게 아닌데도 흠칫 놀랐다.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카페 창가 자리에서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들으며 일할 때 가장 집중이 잘 된다.

답답한 사무실에서 벗어나, 내가 일하고 싶은 시간에 일하고 싶었다. 그러면 좀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일이 적성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내가 맡은 주 업무는 교재를 기획하고 만들고 편집하는 일이었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내가 가장 재미있게 했던 일은 사내 소식지에 들어가는 기사를 쓰거나 글을 다듬는 일. 그리고 TF 활동을 한 후 성과를 발표할 때 발표자가 읽을 대본을 쓰는 일이었다. 그건 내가 맡은 업무 중 부수적인 부분에 지나지 않았다.

만약 이런 일들을 주 업무로 한다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일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나는 자주 생각했다


그렇게 정규직 회사원으로 보낸 시간은, 내가 얼마나 '정규직 회사원'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인지 알게 해 주었다.  너무나 힘든 시간을 보내고 얻은 자리였기에, 나는 꽤 오래도록 망설였다.  '좀 더 적응하면 괜찮지 않을까?' 하며 스스로를 다독여보기도 했다.

그러나 내겐 '안정감'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는 것을. '9 to 6'보다 더 잘 맞는 근무시간이 있다는 것을. 그리고 내가 하고 있는 일보다 더 잘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 한다는 것을. 1년 반이라는 시간을 수업료로 치르고서야 배우게 됐다.


그렇게 나는 내 삶의 첫 사직서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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