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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투병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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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림 Aug 28. 2021

[투병일기] 시작, 그리고 글

우울증 환자의 투병일기




글을 다시 쓰기로 마음먹은 건 대단한 글이 아니라 나를 위한 글을 써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무 기록도 없는 빈 종이보다는 창피하더라도 무언가 쓰인 종이가 낫다는 걸 알았다. 우울증이 재발하기 전 오랫동안 쓴 일기장을 펴서 읽었을 때 글의 형태를 떠나서 여러 감정들이 살아나는 걸 느꼈다. 글을 썼을 때 그 당시의 내 모습, 환경, 마음상태, 감정의 기록들. 지금 생각하니 그저 흘러 보내기 아까운 감정들이었다. 분명 지금의 내 감정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아무리 아픈 감정들일 지라도 흘러 보내기 아까운 나중에 되돌아볼 만한 가치가 있는 그런 감정이라고 믿는다.


글쓰기는 흔히 치유와 위로의 효과가 있다고들 한다. 그 말이 어느정도는 맞는 것 같다. 나는 지칠 때 삶이 잘 풀리지 않을 때 진퇴양난의 상황에서 글을 찾기 때문이다. 뭐라도 쓰면 정말 그 뭐가 감정을 쏟는 것이든, 나를 자책하는 글이든, 후회하고 다짐하는 글이든 어떤 형태이던 간에 그럼에도 쓰는 게 낫다는 걸 자각했기 때문이다. 지금 유일하게 버틸 수 있는 힘은 세가지다. 사람, 글 읽기와 글 쓰기. 매일마다 그 하루에 대해 쓰는 일기 같은 건 나에겐 마치 챌린지나 미션처럼 느껴져서 사소한 부담감이 되므로 일기는 쓰지 않기로 했다. 그저 시간이 남을 때, 글이 써질 때, 쓰고 싶을 때, 무료할 때, 문득 생각이 날 때. 그 시간 말고는 쓰지 않기로 했다. 그래서 이 글이 과연 최종적인 형태로 완성될 수 있을 지 의문이 들기도 한다. 그래도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글을 쓰는 것 말고는 생각나지 않는다. 쉴 틈없이 찾아오는 초조함과 불안감, 원인불명의 우울, 그리고 조울까지. 글을 쓰는 것 말고는 이 아픈 감정들을 어떻게 처리할 수 있을 까. 초조함은 한 자라도 더 글을 쓰게 만들고, 불안감은 꺼진 노트북을 다시 키게 만든다. 원인불명의 우울은 그동안 썼던 글을 읽으면서 울게 만들고, 가끔은 웃게 만든다. 아마 내가 글을 쓰는 이유는 이 병을 치유하기 위해서 인 것 같다.


살고 싶어서 가끔은 한 가지에 지나치게 집착할 때가 있는데, 일에 집착하거나, 취업에 목숨을 걸거나, 아니면 깊은 우울에 빠져 이불 속 세상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그 세상이 전부라 믿는 것. 별것 아닌 세상에 점점 집착할수록 병들어 가고 있다는 증거다. 그리고 최근에 나는 집착하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 병세가 심해지고 있는 것이다. 그럴수록 그 병은 다른 방식으로 퍼져 나간다. 주변 사람들의 호의를 악의로 받아드리고, 사람들의 말을 비꼬아 듣거나 저 사람은 아무것도 모른다며 무시한다. 하나 둘 끊어져가는 인간관계에 또 다시 자책하고, 남은 사람만이 진짜 내사람이 믿는 자기 합리화에 빠진다. 이 모든 집착은 아픈 내 병에서 비롯된다. 그렇다고 병을 탓하고 싶은 건 아니다. 지금이라도 내 병과 제대로 마주하게 되어 다행이라 생각한다. 나를 이렇게 만든 누군가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냥 그때의 상황이 지금의 상황이 나를 그렇게 만들었을 뿐이다. 2006년의 상황, 2009년의 상황, 2017년의 상황, 그리고 지금의 상황. 상황은 나를 서서히 변화시키고 병들게 하곤 잠시 정신을 차리게 하더니 더 깊은 병을 가져왔다.



무엇으로 해결할 수 있을 까.

나는 무엇으로 어떤 계기로 또 어떤 상황으로 나아질 수 있을 까.

어쩌면 평생 이 상태 지금 모습 그대로 인 것은 아닐 까.


그렇다면 나는 정말이지 죽을 만큼 살고 싶지 않다.


정희진 선생님은 자신이 백신을 맞지 않는 이유에 대해 ‘오래 살고 싶지 않아서’ 라고 대답한 적이 있는데 그 말을 이해하는 나로서는 백신은 그저 한가지 이유에 불과하다는 걸 안다. 우울한 상태가 만성이 되면 바램도 희망도 의지도 힘도 사라진다. 작동하지 않는 인간 껍데기에 불과하다. 그게 참 무섭다. 무기력에 빠지면 그 어느 것도 소용없이 느껴진다. 사람들이 말하고 웃고 대화하는 에너지도 이제는 잊게 된다. 나도 저렇게 될 수 있을 까. 가끔은 그런 생각을 하지만 사실 그것도 그다지 생각하지 않는다. 숨쉬고 가만히 앉아있는 것조차 힘이 들기 때문이다. 그냥 공기를 들이 마시고 내뱉는 것 자체가 말이다. 그러다 보면 지금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럴수록 붙잡게 되는 건 책이다. 좋아하는 책을 책상에 쌓아 두고 한권 한 권 천천히 읽는다. 가끔 읽다 딴 생각에 빠져도 자책하지 않는다. 다시 돌아가면 된다. 그러니 느리게 읽던 빠르게 읽던 내 마음이다.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일이 과연 몇 개나 있을 까. 글자 사이사이 마다 긴 숨을 쉬고 긴 생각을 시작한다. 그러다 긴 생각을 마치고 다시 글자를 들여다본다. 다시 소설 속 세상에 빠진다. 글자를 마시고 내 뱉으며 생각에 잠긴다. 그게 글의 세상이든 현실 속 세상이든 책을 읽으며 다른 세상을 그린다. 오로지 그것에만 집중할 수 있다. 그래서 읽고 또 읽는다. 이것 또한 집착의 하나일지도 모르지만, 멈추고 싶지 않은 그런 집착이다.






불안장애와 만성 조울증을 갖고 투병하고 있습니다.

가끔의 감정과 치료과정을 적어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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