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 받은 것들에 대한 기록
나는 불안하면 손톱을 뜯는 버릇이 있다.
그런데 내 손톱은 1년 365일 멀쩡할 때가 없이 뜯겨 있다. 뜯긴 손톱이 말해주듯이 난 매일이 불안하다.
처음엔 내 불안함이 해결할 수 있는 감정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불안함의 원인을 찾으려 했다.
일이 바쁠 땐 일이 바빠 불안한 것이라고 생각했고, 잠이 부족할 땐 잠이 부족해서 불안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취업 준비를 할 땐 ‘지금은 원래 불안한 시기야.’라고 생각하며 불안함의 원인을 찾아 넘겼고,
취업을 하고 나선 ‘내가 사회에 적응하는 시기라 불안한 거야.’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어쩔 땐 이유 없이 불안한 날도 생겼다. 그땐 그냥 그런 날도 있는 거라 생각했다.
불안함을 인정하지 못했던 나는 불안함을 해결하려 바쁘게 살았다. 바쁘게 살면 불안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아무리 바쁘게 살아도 순간순간 떠오르는 불안은 사라지지 않았다.
많은 사람들 속에 있으면 불안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무리하게 사람들 틈에 끼어들어봤지만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남자 친구를 사귀면 불안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고, 내 불안함을 해결할 수 없었다.
불안함을 없애려고 애를 썼지만 번번이 해결하지 못했고
그럴 때마다 나의 불안함은 배로 커져갔다.
고치려고 노력하니 힘이 들었다. 또 노력해도 고쳐지지 않으니 답답했다.
고치는 방법을 모르겠던 나는 이번엔 불안하지 않은 척 마음을 속이며 연기를 했다.
사실 불안하지만, 불안하지 않은 척 행동하고 말을 하고 다녔다.
하지만, 잠깐 마음을 속일 수 있을지 몰라도 뿌리 깊은 불안함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불안은 점점 커져갔다. 가만히 있는 순간에도 가만히 있지 못하게 되었다.
혼자 있는 방에서도 불안한 마음 탓에 문 앞에서 몇 시간씩이나 서있었고, 식은땀을 계속 흘렸다.
한 가지에 집중하지 못했고, 읽던 책도 5분에 한 번씩 덮으며 주위를 살폈다.
그렇게 나의 불안은 커져갔다.
어느 날, 그런 내 모습을 보고 아프다고 판단한 선생님은 나를 정신과 병원에 데려갔다.
간단한 테스트와 상담을 하고 나온 결과는
'우울증으로부터 동반된 불안증’이었다.
그제야 불안의 원인을 알게 된 것 같아 나는 안심했다.
‘아, 역시 원인이 있었어. 그럼 해결할 수 있는 거겠지?’
하지만, 약을 먹고 수십 차례 상담을 다니고, 병원 바꿔 또 상담을 하고 새로운 약을 먹어도
불안함은 사라지지가 않았다.
그렇게 1년이 지났다.
“선생님 아무리 약을 먹고 이렇게 선생님과 대화를 해도 불안해요.”
선생님은 내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네가 약을 꼬박꼬박 먹지 않아서 그래.’
나는 그런 선생님의 대답이 맘에 들지 않았고 다시 물었다.
“아니요. 선생님 그런 게 아니라, 막연한 불안함이 사라지지가 않아요.”
1년 간 곰곰 히 생각해 보니, 내가 느끼는 불안함은 이유가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내가 불안한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우울증이 있어서 불안한 것도, 사회에 적응하느라 불안한 것도, 돈이 없어 불안한 것도 아니었다.
느껴지는 것은 그저 막연한 불안함이었다.
매일 먹는 약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 일주일에 한 번 받는 상담으로 사라질 수 있는 감정이 아니었다.
이유를 모르는 불안함을 고칠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불안하다는 감정은 끝이 없었다. 그 사실을 깨달은 순간 알았다.
어제도 불안했고, 오늘도 불안하고, 내일도 불안할 거라는 것을.
나의 불안함엔 특별한 원인이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그냥 내 인생 자체가 불안한 것이었고, 해결할 수 있는 감정이 아니라는 걸.
그 순간부터 난 나의 불안함을 받아 드리기 시작했다. 고치려 애쓰지 않았다.
불안해하며 길을 걸었고, 불안해하며 사람들과 어울렸고, 불안해하며 여행을 다녔다.
무엇을 해도 불안한 거라고 생각하니 오히려 겁이 나지 않았다. 새로운 일에 손을 대는 것도,
그 순간이 불안한 것도 괜찮았다.
언제부터 우울증이 온 건지. 언제부터 불안함을 느끼게 된 건지. 무엇이 나를 그렇게 만들었는지.
더 이상 생각하지 않았다.
생각해보면, 불안함의 원인을 찾으려 했던 시간들은 나를 더 힘들게 했다.
원인이 무엇인지 생각하며 지나온 과거를 후회하기도 했고, 나에게 상처 준 사람들을 원망하기도 했고, 상관없는 남을 탓하며 너 때문에 내가 이렇게 되었다는 화풀이를 하기도 했다.
그리고 결국에 돌아오는 것은 후회와 자책이었다.
모두 지금의 나를 받아들이지 못해 몸부림쳤던 시간이었다. 아직도 그때를 떠올리면 당시 내 곁에 있었던 사람들에게 미안하다.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라고 종종 말했지만,
남이 아닌 나 조차도 받아들이지 못하는 주제에 그런 말을 뱉고 다녔다니, 스스로가 한심했다.
이제야 남을 인정하는 것보다 오히려 나를 인정하는 것이 더 어렵다는 것을 알았다.
우울하고, 불안하고, 찌질하고, 질투 많고, 우유부단한 내 모습. 인정하고 싶지 않은 내 모습까지 포용하는 것.
어쨌거나, 지금의 난 불안하고 우울한 사람이다.
타나다 유키 감독의 ‘백만 엔 걸 스즈코’란 영화에서 이런 장면이 나온다.
나는 내가 훨씬 강한 사람이라고 생각했거든 하지만, 그게 아니었어.
가족도, 연인도… 오래 함께 있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말을 안 하는 것이라고 늘 생각했어.
얌전하게, 적당히 웃다 보면 문제없이 지낼 수 있을 거라고 말이야.
어느 사이엔가 아무 말도 못 하는 관계가 되는 건 불행한 일이야.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이 있기 마련인데,
그 헤어짐이 두려워 무리를 했던 것 같아.
하지만, 만나기 위한 헤어짐이라는 것을 이제 깨달았어.
좋아하는 사람과 헤어졌다고 해도 조금도 울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어.
많은 사람들로부터 도망쳐 왔지만 이번에야 말로새로운 곳에서 내 힘으로 떳떳하게 살아갈 생각이야.
스즈코는 자신은 강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지만,
사실 누구보다 상처 받고, 현실을 마주하는 것이 두려워 도망쳐왔던 사람이라는 것을 겨우 깨닫고 인정한다.
그리고 스즈코는 그런 자신을 인정하며, 이젠, 도망치지 않고 새로운 시작을 하겠다고 결심한다.
그렇게 스즈코는 점점 자신을 찾아가며 성장해 간다.
나도 그렇게 스즈코와 함께 성장해 간다.
이림 / 상처 받은 것들에 대한 기록 <우울을 인정하게 된 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