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의 사막을 다녀오면서 내 인생에 참 많은 크고 작은 이벤트들이 있었다. 언론에 여러 번 나오기도 하고,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으며, 나 스스로가 성장할 수 있는 중요한 발판이 되기도 했다. 나만의 스토리가 확실히 생겼고 내가 이루고 싶은 목표들에 대해 조금 더 구체화시킬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사막에서 경험하고 배운 게 참 많다.
사막에서 느낀 순간순간이 아직도 생생히 기억이 나고, 사막에서의 순간들을 떠올리면 또 사막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메운다. 오늘의 글에선, 왜 굳이 비싸고도 비싼 약 600만 원의 경비*를 들여 사막마라톤에 다녀와야 하는지에 대해 써보고자 한다.
* 사막마라톤 경비는 일반적으로 대회 참가비 약 430만 원, 비행기 티켓 100-140만 원, 대회 필수장비 및 식량구입비용 약 50-150만 원의 비용 등이 필요로 하다.
#1. 사막을 통해 주변 사람들에 대한 감사함을 배웠다.
나는 2번의 사막마라톤 모두 어린이 재활병원을 위한 기부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누계 약 1,100만 원의 모금액을 기부할 수 있었고. 약 180여 명의 기부자분들이 기부 프로젝트에 함께 해주셨다. 아무것도 없는 무명의 20대 청년의 도전과 프로젝트에 이렇게 많은 인원이 함께 해주셨다는 것에 정말 무궁한 감사함을 느꼈고, 나중에 꼭 나도 이 베풂에 대한 보답으로 세상에 베풀고 살아야겠다는 굳은 다짐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기부 프로젝트뿐만 아니더라도, 대회에 무사 완주할 수 있도록 응원해주신 분들도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가족과 지인분들뿐만 아니라, 나와 일면식조차 없는 분들께서도 내가 무사 완주할 수 있도록 응원해주시고, 격려해주셨다. 대회 참가 전에는 무사히 완주하라며 밥도 사주시고, 대회에 필요한 장비를 선물해주시기도 한다. 대회 중에는 틈틈이 내 경기 실시간 기록을 확인하며 계속 응원해주시고, 종종 사이트를 통해 편지도 써주신다. 그리고 대회 후에는 고생했다고 영양 보충하라며 식사를 사주신다. 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직접 느껴보면 알 것이다.
마라톤을 하는 와중에도 매일 매 순간마다 감사함을 느낀다. 우리를 위해 열심히 응원해주고 격려해주는 자원봉사자 스태프들에게, 포기하지 않고 매일 필요한 거리를 끝까지 완주해내는 동료 선수들에게, 그리고 제일 마지막에 들어오는 선수를 위해서 기다려주는 다른 선수들에게도. 17년도 사하라 사막 마라톤에 참가했을 때 만 나이 22살, 내가 최연소자 참가자였다. 그 덕분에 사하라 대회 때는 내가 골인할 때마다 유독 더 대단하다고, 자랑스럽다고 동료 선수들에게 축하와 격려를 받았는데, 이 역시 참 잊지 못할 추억이다.
#2.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것들에 대한 소중함을 알았다.
매슬로는 인간의 욕구를 5단계로 구분했다. 그리고 그 욕구 피라미드에서도 최하단에 위치한 생리적 욕구. 첫 사막 마라톤이었던 나미브사막에서는, "역시 매슬로는 옳았어!"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사막은 정말이지 생리적 욕구가 철저히 뒤틀리고 흔들리는 험난한 세계였다.
사막을 걷고 달리다 보면 물의 소중함을 정말 많이 느낀다. 보통 10km 간격으로 체크포인트(CP; Check Point/보급소)가 있기 때문에 웬만하면 물이 부족해서 생사의 기로(?)에 놓이는 경우는 흔치 않지만, 가끔 체크포인트간의 거리가 멀거나 뜨거운 땡볕으로 인해 끊임없는 갈증에 시달릴 때에는 정말 물 한 방울 한 방울이 소중하다. 물통의 물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확인하고나서부터는 철저히 다음 체크포인트까지의 거리와 내 상태를 체크하고 계산하며 물을 지키게 된다.
밥은 어떠하리. 보통 사막 마라톤에 참가하는 선수 중 흔히 말하는 베테랑, 고수들은 배낭 무게가 7kg 이하로 매우 가볍다. 하지만 나 같은 초짜 선수들, 그리고 자금 문제로 경량화를 못 한 선수들의 경우 가방 무게가 보통 10kg, 많게는 15kg까지 나간다. (나 같은 경우엔 사하라 사막 마라톤 당시엔 14kg, 아타카마 사막 마라톤 당시엔 9kg의 배낭 무게를 짊었다.) 배낭 무게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게 식량이다 보니, 식량을 줄여야만 어깨를 사수할 수 있다. 사하라사막마라톤 당시 배낭 무게로 너무 고생을 했던 기억이 있어 아타카마사막마라톤에선 식량을 흔히 가져가는 전투식량이 아닌 스프로 대체했다. 하루 3끼 중 2끼를 스프로. 미친 짓이었다. 그 덕분에 아타카마 사막마라톤에서는 정말 쫄쫄 굶고 배고픔에 허덕이며 일주일을 지냈다. 다행히 다른 선수들이 버린 식량들과 한국팀 선수들이 나눠준 식량으로 배를 채우기도 했지만, 그렇게 미안하고 고마울 수가 없었다. 음식의 소중함을 절실히 느꼈고 다음 대회에서는 꼭 음식을 든든히 챙기리라 다짐했다. (어깨를 포기할 예정이다. 어깨보다 내 밥이 더 소중해)
사막에서는 물 한 통, 식량 한 팩을 소중히 여기게 된다. 사막이 아닌 곳에서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식량과 물인데 말이다. 난 퍽퍽한 빵을 싫어하고, 매운 음식을 싫어하고, 너무 단 음식을 싫어하는데, 사막에 오면 다 너무 맛있다. 정말 세상에 이렇게 맛있는 음식이 있었나? 싶은 생각이 든다. 편식을 고치고 싶은 사람도 사막을 가보길 추천한다.
물과 식량 말고도 소중함을 느낄 수 있는 것들이 정말 많다. 가령 전기의 소중함, 그늘의 소중함, 혹은 화장실의 소중함까지. 사막에서는 우리가 간과하며 살았던 모든 것들에 대해 소중함을 느낄 수 있게 된다.
#3. 사막에서 또 다른 가족을 얻었다.
보통 해외 대회를 나가면 같은 나라 사람들끼리 모이고 친해지게 된다. 처음 보는 사람일지라도 같은 나라 사람이라는 것만으로도 친근감이 최소 10배 이상은 상승한다. 사막마라톤 역시 예외가 아니어서 대회 초반엔 각 나라별 선수들끼리 모여 앉고 친해지게 되는데, 그렇다 보니 자연스레 같은 나라팀 선수들끼리 정말 가까워지게 된다. 일주일 동안 씻지 못하고 꼬질꼬질한 모습으로 지내다 보면 일주일이 아니라 7년은 알고 지낸 것 같은 느낌으로 바뀐다.
인간은 극한의 상황에 다다랐을 때 본모습이 드러난다고 했던가. 사막의 뜨거운 태양 밑에서, 양쪽 발바닥 가득 피가 고인 물집이 잡힌 채로- 하염없이 이어지는 지평선을 걷다 보면 정말이지 온갖 생각이 다 들곤 한다. 모두가 예민한 상황이고 모두가 지치고 힘든 상황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런 상황 속에서도 사막 가족들은 서로를 격려해주고 챙겨준다. 본인이 챙겨 온 비밀 식량인 육포를 나눠주기도 하고, 마법의 물약인 맥심 커피를 나눠주기도 한다. 내 가방 속 짐을 본인이 덜어서 메준다고 하기도 하고, 지쳐서 한참 뒤떨어져있는 나를 챙겨주려고 피니시라인까지 같이 걸어주기도 한다.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내 몸 하나 건사하기도 힘든데, 남을 챙긴다는 것은.
그런데도 사막에서는 감사한 손길을 많이 주고받게 된다. 주고받은 손길 속에서 정을 느끼고, 감사함을 느끼고, 우리끼리의 깊은 유대관계가 생긴다.
사하라사막을 다녀온 지 어연 2년이 더 지났는데 지금도 여전히 분기에 한 번씩은 모임을 갖고 그때의 추억을 회상하곤 한다. 결국 매번 똑같은 얘기들인데, 왜 얘기할 때마다 그렇게 재미있는 건지. 일주일간 동고동락하면서 우리만의 추억이 생겼고, 이 추억은 꼬부랑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어서도 깔깔 웃으며 얘기할 수 있는 행복한 추억들이다.
한국 선수들뿐만 아니라 해외 선수들과도 깊은 인연을 유지할 수 있다. 영어를 할 수 있다면 그 관계를 맺는데 매우 유용하지만, 영어를 유창하게 하지 못해도 사막에서는 눈빛으로, 표정으로 무슨 말을 하는지 다 느껴진다. 그리고 서로 눈빛으로 격려하고, 응원한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유대감이 생기고 그들과도 알게 모르게 깊은 감정이 생긴다. 내년에 세계여행을 시작하면 꼭 나라마다 있는 사막 친구들을 한 번씩 만나보고 싶다. 사막 마라톤 주최사인 RTP(Racing The Planet)의 Sam은 매번 이렇게 말한다.
"Desert Friends are EVERYWHERE!"
#4.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밤하늘을 볼 수 있다.
누군가가 내게 두 번의 사막마라톤을 다녀오면서 가장 먼저 그리워지는 게 뭐냐고 물으면, 난 항상 주저 없이 "사막의 밤하늘"을 대답한다. 사하라때도, 아타카마 때도- 사막을 떠나온 다음 날이면 매번 사막의 밤하늘을 더 이상 못 본다는 게 그렇게 아쉬울 수가 없었다. 정말 예쁘다. 참 예쁘다. 하늘이 이렇게 아름답구나, 자연은 정말 아름답구나 라는 걸 수 없이 느끼게 해주는 곳이 사막이다. 이렇게 아름다운 사막에서 일주일간 지겨울 정도로 걷고 뛰고, 밥을 먹고 캠핑을 하니 정이 안 붙으래야 안 붙을 수가 없다. 대회를 뛰는 일주일간 온갖 통증에 시달리면 아파서 "난 도대체 왜 사막에 와서 사서 고생인가"라는 생각을 하기도 하는데, 사막을 떠나고 1시간만 지나면 사막이 그리워지기 시작한다. 참 아이러니한 곳이다.
사막마라톤에는 롱데이(LONG DAY)라는 날이 있다. 이 날에는 무박으로 장거리를 가야 하는 코스인데, 일반적으로 거리는 70~90km 정도이며, 제한시간은 25시간 정도이다. 롱데이 때는 아무래도 장거리를 한 번에 가야 하기 때문에 체력적으로 많이 지치고, 끊임없이 '힘들다', '쉬고 싶다'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맴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발걸음을 멈추고 사막에 누워서 하늘을 바라봤다. 사막 한복판에 누워서 사막의 하늘을 바라보고 있자면 정말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다.
적막한 고요함이 퍼지는 사막의 밤하늘. 별이 쏟아질 것 같은 밤하늘. 별이 많아도 너무 많아서 환하게 빛나고 있는 밤하늘.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나, 하고 멍하니 하늘만 바라보게 된다. 사막의 밤하늘은 사진으로 담기지도 않고, 말로 표현하려야 표현할 수도 없다. 정말 두 눈으로 직접 봐야 그 감동을 느낄 수 있다.
#5. 무슨 일을 해도 '가능하다'는 확신이 든다.
난 어릴 때부터 "인생에 불가능은 없다"라고 생각하고 살아오긴 했지만, 사막마라톤을 다녀온 이후로는 그 생각이 더욱 뚜렷해졌다.
"사막마라톤도 완주했는데 이걸 못 하겠어?"라는 오만한 생각은 아니다. 사하라사막마라톤을 나갈 당시였던 2017년 4월은 무릎에 박혀있던 핀을 제거한 지 이제 막 3개월이 되던 때였고, 내 생애 처음으로 나가보는 트레일러닝대회였고, 내 생애 처음으로 제대로 된 사막을 가보는 것이었다. 그래서 설렘도 컸지만, 두려움도 설렘만큼이나 컸다.
다친 무릎이 또 다치면 어떡하지, 완주 못 하면 어떡하지, 혹여 사막에서 국제미아가 되면 어떡하지.라는 여러 가지 생각들로.
하지만 도전했고, 포기하지 않았으며, 무사히 완주했다.
사막마라톤을 통해 더 넓은 세상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고, 세계 곳곳에 있는 나와 비슷한 도전정신을 갖고 있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세상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오니 세상을 보는 눈도 더 넓어졌고, 더 다양한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사막마라톤을 뛰다 보면 수십 번, 아니 수백 번은 나 스스로와 싸워야 한다. "1km만 더 참아보자", "1km만 더 가서 쉬자", "1km만 더 가면 될 거야". 그렇게 계속 싸움을 이어가다 보면 어느새 중간 보급소에 도착해있고, 또 이어가다 보면 어느새 캠프에 도착해있다. 그렇게 계속 나와의 싸움을 하다 보니 나 스스로도 조금 더 단단해지고, 성장할 수도 있다. 그리고 포기하지 않는다면 결국 피니시라인에 도달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빠르지 않아도 괜찮아, 느리게 가더라도 끝까지 가면 그게 의미 있는 거지!
나는 비혼주의자라 결혼은 안 할 거지만, 나중에 애가 생기면 (매우 넌센스다.) 꼭 애기를 사막마라톤에 출전시킬 것이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은 자녀교육은 사막마라톤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10대의 나이에 사막마라톤을 참가할 수 있다면 그건 분명 축복이다. 나는 중, 고등학생인 사촌동생들을 사막마라톤 참가시키고 싶어서 계속 설득 중인데 당최 넘어올 생각을 안 한다. 내 말 좀 믿어달라고!
내가 단순히 사막에 현혹되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내 주변의 사막마라톤 참가자들을 보면 90% 이상은 또 사막을 가고 싶어 한다. 정말 있다. 사막만의 매력이.
단순히 사막을 여행하는 것과는 또 다른 느낌의 여행이다. 일주일간 세계 각국의 선수들과 동고동락하며 달리고, 웃고, 울면서 지내는 그 하루하루가 얼마나 행복한지 꼭, 세상 모든 사람들이 느껴보면 좋겠다.
올해는 이래저래 다른 일정들로 사막을 못 가지만, 내년부터는 꼭 다시 사막을 가리라. 얼른 가고 싶다. 마지막은 작년에 아타카마사막마라톤을 다녀와서 만든 스케치 영상으로 마무리 :) 모두 꼭 가세요! 사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