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간 꿈꿔왔던, 몇 년간 준비했던 세계여행- 30일 만에 끝나다.
꽤나, 설레는 마음을 안고 떠났다.
기나긴 여행을 떠나는 사람이라면, 어릴 때 꿈꿔왔던 꿈을 눈 앞에 두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똑같은 마음이겠지. 출국하기 한 달 전부터는 정말 정신없었다. 매일 점심 저녁으로 사람들을 만나고, 미팅을 하고, 10년 묵은 자취 짐을 처분하며 눈코 뜰 새 없이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리고 출국 당일, 새로운 길을 내딛는 내 첫걸음을 응원해준다며 하나 둘 모여 준 친구들. 미국 종단을 한다며 잔뜩 챙겨 온 20kg짜리 배낭. 출국을 앞두고 있는 여행자들의 설렘으로 가득한 공항의 기분 좋은 어수선함. 그렇게 한국에서의 모든 것들을 떠나보낸 뒤 많은 사람들의 응원 속에서 첫걸음을 내디뎠다. 어릴 때부터 꿈꿔왔던 내 모습이었고, 앞으로 일어날 무수히 많은 일들을 상상하며 벌써부터 설레고, 행복했다.
하지만 시국이 시국인지라, 설렘과 동시에 불안감도 안고 출국했다. 출국일을 앞두고 몇 일새 갑자기 우리나라 코로나 확진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던 시점이었고, 여러 나라에서 우리나라 국민 또는 한국발 비행기의 입국자들을 막고 있는 상황이었다. 미국 종단 전 3주간 여행을 할 생각으로 첫 도착지는 호주였고, 아직 호주 정부에서 이렇다 하는 공지가 내려온 상황이 아니었지만 입국 거부될까 봐 꽤나 마음 쫄이며 출발했다.
그러나 걱정했던 게 무색하게 무사히 입국심사를 통과할 수 있었고, 그 이후 뉴질랜드 입국 시에도, 미국 입국 시에도 코로나 사태에 비해 꽤 간단하고 빠른 입국심사를 통과하며 "미국 종단을 잘할 수 있을 것이라는 신의 계시인가?"라는 희망을 품기도 했다. 물론 그 사이사이 매번 다른 나라로 입국을 해야 할 때마다 입국 거부될까 봐 불안한 마음에 매일같이 '코로나 19' 관련 국내외 뉴스들을 찾아보는 게 일상이었다. 밖에 나가 있었던 지난 30일간 단 하루도 인터넷 창에 코로나를 검색해보지 않은 날이 없을 정도였다.
그럼에도 결국 무사히 미국에는 들어올 수 있었지만, 미국행 비행기를 탑승할 때에는 마치 제 발로 호랑이굴에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한국에서 출발할 때에는 한국 확진자가 쭉쭉 오르더니, 미국 들어갈 때가 되니 미국 확진자가 쭉쭉 오르고 있었다.
생애 첫 미국.
어릴 때부터 꼭 한 번 와보고 싶었던 미국이었는데, 막상 첫발을 내디딘 미국에서는 큰 감흥이 없었다. "종단을 할 수 있을까"라는 걱정이 설렘이라는 감정을 잡아먹었다. 샌디에이고 다운타운에 내렸을 때에는 무섭기까지 했다. 시내 대부분의 식당은 코로나로 인해 문을 닫았고, 길거리에는 소수의 사람들과 노숙자들만이 보였다. 마치 좀비 영화에서 나오는 한산한 새벽의 길거리 같은 느낌이랄까. 버스에서 내린 순간부터 "뭐야, 이거 뭔가 잘못된 것 같은데"라는 생각을 하며 잔뜩 쫄아있었다. 미국에 도착하기 전부터 미국 상황이 안 좋아지기 시작했기에 그전부터 계속 고민을 했지만, 미국에 가보지도 않고 포기하기보다는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은 최선을 다 해보고 싶었다. 하지만 미국 땅에 발을 들인 이제는 정말로, 미국 종단을 할지 말지에 대한 결정을 해야 되는 순간이 왔다.
앞으로 6개월간 미국 종단을 하려면 정기적으로 트레일을 벗어나 마을로 내려가 식량을 재보급하고 숙소에서도 묵어야 하는데, 코로나가 점점 더 심해질수록 그건 쉽지 않아 질 것이 분명했다. PCT를 걷는 하이커들이 모인 커뮤니티에서는 여러 하이커들은 종단을 포기해야 한다고 외치고 있었고, 종단을 강행하는 다른 하이커들을 욕하며 서로 물어뜯고 싸우고 있었다. 몇 주 전까지만 해도 서로를 격려하고 응원하며 따뜻한 말들만 오고 가던 곳이었는데, 이렇게까지 진흙탕이 되어버린 모습에 적잖이 충격을 받기도 했다. 나는 이 싸움에 참여하지 않았지만, 뭐, 개인적인 생각으론 결국 우리는 성인이고 우리의 선택에 대한 책임은 오롯이 개개인의 몫이라 생각한다. 누가 누구에게 여행을 지속해라, 마라 왈가왈부할 순 없다. 하지만 그 선택에 의해서 다른 사람에게 피해가 갈 수 있다면? 그리고 그 선택으로 인해 내 주변인들을 걱정시키게 된다면? 그러면 다시 한번 고민해봐야 할 것이다. 나 역시 이 부분에서 가장 큰 고민을 했다. 사재기 등으로 음식을 재보급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에 대한 걱정도 분명 있었다. 하지만 이 부분은 결국 힘들더라도 내가 스스로 해결해나가면 될 수 있는 부분이다. 하지만 만에 하나, 아무리 산속에 있었다고 한들- 내가 다른 누군가에게 코로나가 전염되거나, 혹은 내가 무증상 감염자여서 작은 마을의 어르신들에게 전파하게 된다면? 물론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다. 그리고 코로나 소굴인 미국에서 홀로 종단을 강행하겠다고 하면 분명 가족들도, 지인들의 걱정도 훨씬 더 할 것이다. 워낙 이상한 짓(?)을 많이 하고 다녀서 항상 가족들을 걱정시키기는 하지만, 이건 또 다른 문제였다.
중학교 때부터 내가 하고 싶은 일들, 이루고 싶은 일들은 항상 대략 몇 살 때쯤 하겠노라- 하고 계획을 짜고 실천해왔는데, 이번이 처음으로 내가 계획한 일이 외적인 상황으로 인해 뜻대로 되지 않는 순간이었다. 그래서 더 당황스러웠고, 더 힘들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여행을 위해 퇴사를 했고, 몇 달간 준비를 했고, 사람들을 만났고, 모든 짐들을 다 처분하고 왔는데. 5년 후에나 다시 보자며 스스로 한국에 작별인사를 하고 왔는데. 몇 년간 꿈꿔왔던 미국 종단을 할 수 있는 곳에 정말 코 앞까지 왔는데. 그런데 이걸 다 포기하고 한 달만에 한국에 돌아가려고 하니 마음이 너무 힘들었다. 분명 머리로는 지금 상황에선 한국에 돌아가는 게 맞다는 것이 이해가 됐는데, 마음이 너무 아렸다. 1년 중 우는 날이 손에 꼽을 정도로 잘 울지 않는데, 처음 가봤던 미국 땅에서는 얼마나 자주 울었는지 모르겠다. 슬프다는 생각을 하진 않았는데, 그냥 눈물이 나더라. 뭔가 지금의 내 상황, 속상함과 서러움, 답답함. 여러 감정이 복잡 미묘하게 뒤엉켜 울음으로 토해내는 기분이었다.
"내가 꿈꿔왔던 세계여행은- 미국 종단은, 이런 게 아니야."
정말 수없이 많은 고민을 해보고 플랜 B를 생각해봤지만, 최종적으로 내가 도달한 결론이었다. 내가 나에게 주는 선물로 떠나온 세계여행이었고, 어릴 때부터 그토록 꿈꿔왔던 세계여행인데, 이렇게 코로나 때문에 매일매일 걱정과 불안감을 가지며 여행하고 싶진 않았다. 행복하자고 걷는 길인데, 행복하지 않을 것 같았다. 그 생각을 하니 한국에 돌아가는 게 맞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길은 언제나 그 자리를 지키고 있으니까, 이것은 내 여행의 끝이 아니고, 그저 잠깐 멈추는 것뿐이니까. 난 반드시 다시 이 길을 걸으러 올 것이라는 것을 나 스스로 알고 있기 때문에 조급해할 필요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정을 한 뒤 힘들게 힘들게 들어온 한국에서는 나름대로 집순이 라이프를 즐기며 재미있게 보내고 있다. 뭘 할까 이런저런 고민을 하다가 문득 예전부터 꿈꿔왔던 경찰시험을 봐볼까- 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지만, 문신이 있으면 체력시험에서 무조건 떨어진다는 글을 보고 깔끔하게 포기했다. 그래서 그냥, 독서를 하고 외국어 공부를 하고 홈트를 하면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사실 내가 생각해도 나는 집순이랑은 정말 반대되는 사람이라- 처음에는 자가격리 2주간 어떻게 버티려나..라는 걱정이 컸는데, 생각보다 집순이 라이프가 잘 맞는 듯하다. 한 번도 이렇게 오랫동안 집에 붙어있어 본 적이 없는데, 자가격리 덕분에 하고 싶었던 일들, 하고 싶었던 생각들 다 몰아서 할 수 있어서 이 시간도 나름의 추억이고 즐거움이자 경험인 듯하다.
언제 다시 이어나갈 수 있을지 아직은 잘 모르겠지만, 상황이 진정되는 대로 다시 나갈 계획이다. 나가는 날짜에 따라 여행 계획도 많이 바꿔야 될 것 같아서 다시 준비해야 되는 것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그 역시도 언제나처럼 즐겁게 하나씩 이뤄나가 봐야지. 언젠가 다시 떠날 때 이 글을 보면 그때는 웃으며 이 글을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 2020.02.26.~2020.03.25. 짧디 짧았던 첫 번째 세계여행,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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