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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게으른 여행자 Aug 02. 2021

폭염과 정전의 즐거움

몸속의 장기가 녹아내리는 건 아닌가 싶을 만큼 무더운 밤이었다. 에어컨에 타이머를 맞춰놓고 어렵게 잠든 지 얼마나 지났을까 모로 누운 몸의 굴곡을 따라 물줄기가 흐르는 느낌에 놀라서 깨니 아직 한밤중이다. 가슴에서 배꼽으로 떨어진 물방울은 땀이었다. 에어컨은 타이머에 맞춰 꺼진 상태고 창문을 여니 낮과 다를 바 없이 뜨거운 공기가 훅 밀려든다. 조금이나마 남은 냉기를 가두기 위해 창문을 닫고 도로 누웠다. 에어컨을 켤까 하다가 가만히 버텨보기로 한다. 곧 날이 새고 해가 뜨기 시작하면 본격적인 오늘의 더위가 시작될 테니 전기를 아껴두어야 한다. 아파트 전력 과부하로 우리 동 전체가 정전돼 아찔하고 뜨거운 밤을 보낸 것이 불과 며칠 전 일이다.     

 

토요일 저녁 식사를 마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갑자기 집 안의 모든 전원이 일제히 차단됐다. 집안에 있기 어려워진 주민들은 하나둘씩 야외 벤치와 정자로 모여들었다. 혹시 불이 들어오지 않을까 기대하며 시선은 위로 고정한 채였다. 바깥에 입고 나오기엔 조금 애매한 옷차림이 그날만은 양해되었고 편의점보다 가까운 구멍가게가 모처럼 붐볐다. 여름엔 네 개에  만 원하는 맥주를 사려는 손님으로 늘 북적이는 편의점에 비해 지나치게 한산해 조금 걱정되던 슈퍼다.      


주말을 맞아 내게 놀러 왔다가 같이 봉변을 당한 조카 윤호와 함께 아이스크림을 골랐다. 제형이 단단해 보이는 보석바를 하나씩 입에 물고 정자에 앉았다. 후텁지근한 공기 속에서 한 번씩 바람이 불 때마다 최대한 잘 느끼기 위해 눈을 감고 음미했다. 몇 번 눈을 감았다 떴다 하다 보니 전기가 멈췄을 뿐인데 왠지 시간이 멈춘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리고 떠오르는 오래된 장면 하나.


지금까지도 역대 최악의 더위로 기록된 94년 여름이었다. 중학생들의 비릿한 체취가 진동하던 교실에서 우리는 통풍도 안 되고 살에 쩍쩍 달라붙는 교복 치마를 허벅지까지 걷어 올리고 버텼다. 지금처럼 에어컨이 흔하지도 않던 시절이었다. 낮의 더위보다 무서운 건 밤의 더위였다. 열대야란 단지 더운 밤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견딘 후에 또 견뎌야 한다는 뜻이었다. 더위는 하루라는 리듬을 무시한 채 똑같은 강도로 이어졌다. 태어나서 처음 직접 겪은 재난이었다. 그때 처음으로 사는 게 무섭다고 생각했다. '삶이란 견디는 일인가 보다.' 신체적 고통이라는 강렬한 몸의 감각으로 각인된 기억은 오랫동안 지워지지 않았다.      


옛 생각에 빠져있는데 갑자기 아파트가 환해졌고 사람들은 하나둘 집으로 돌아갔다. 조카와 나는 하드를 마저 먹고 들어가려고 조금 더 있었는데 그새 또 불이 꺼졌다. 이 뜻밖의 소풍이 길어질 것 같았는지 윤호는 과자를 사러 갔고 나는 다시 불이 들어오기를 기다리며 삶을 비관하던 십 대의 그 여름 이후 차곡차곡 경험한 계절들에 대해 생각했다.      


계절의 다가옴과 떠나감을 반복해서 경험하며 깨달은 건 모든 것은 저마다의 때가 있다는 것, 그리고 어떤 때에도 나름의 내밀한 즐거움이 있다는 사실이었다. 나는 가을이나 봄만큼 겨울과 여름을 좋아하는데 겨울과 여름이 견디는 시간을 선물하기 때문일지 모르겠다. 봄의 온화함과 가을의 우수는 그 자체로 황홀하다. 그런 계절엔 그저 공기만으로도 달아 세상과 사랑에 빠진다면 견디는 계절엔 시선을 안으로 거두고 나를 보살필 기회를 얻는다.      


견디는 계절을 통과해야 봄과 가을을 맞듯이 살면서 꼭 통과해야 하는 비수기도 있는 것 같다. 이유 없이 삶이 내게 호의적인 때가 있듯 이유도 모른 채 답답한 시간을 견뎌야 할 때도 있었다. 더럽게 안 풀리는 경기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운동선수처럼 말이다. 그리고 그때가 나를 진짜로 좋아하게 될 기회였다. 잘하고 잘 되는 내가 아니라 못 하고 안 풀리는 나여도 아끼고 다독이며 불리한 때를 몇 번씩이나 흘려보내는 동안 나는 비로소 나를 믿고 의지하게 됐다.

예순 살이나 일흔 살쯤 되었을 땐 혹독한 계절들을 더 깊이 사랑할 수 있게 될까? 그땐 사랑하는 걸 넘어 내가 그냥 여름도 되었다가 겨울도 되었다가 그랬으면 좋겠다. 여름엔 뜨거운 바람이 되어 떠다니고 겨울엔 차가운 눈발이 되어 날아다니는 기분으로 말이다.      


정자에서 한 줄기씩 불어주는 바람에 의지해 윤호와 얼마 남지 않은 감자칩을 두고 다투는 동안 두 번째 나갔던 불이 들어왔다. 처음 정전된 때부터 사오십 분쯤 지나서였다. “이모! 불이 켜졌어!” 윤호가 위를 올려다보며 손뼉을 쳤고 우리는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서둘러 에어컨부터 켜고 소파에 몸을 던지니 다사다난 긴 여행에서 돌아온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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