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매일 먹는 사과에 관한 글이지만 <일 년 동안 매일 사과를 먹으면 생기는 변화> 같은 간증기는 아님을 미리 밝혀둔다.
나는 사과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그 이유는 식감 때문이다. 흔히들 사과를 아삭하다고 표현하지만 경험상 정말 아삭하기만 한 사과는 드물었다. 아삭과 퍼석의 경계에 아슬아슬 걸쳐있는 사과가 가장 많았고 물러버렸거나 드물게는 말라버린 식빵을 씹는 느낌을 맛보기도 한다. 맛도 귤이나 자두처럼 존재감이 뚜렷하지 않은 데다 수박이나 복숭아처럼 확실한 달콤함과도 거리가 멀다. 이래저래 내겐 뭔가 애매하고 별로인 과일이 사과다.
어릴 때 우리 집에서 가장 흔한 과일도 사과였다. 엄마는 빠듯한 살림에도 과일 한 가지쯤은 떨어지지 않게 두는 편이었는데 엄마의 선택은 대개 사과였다. 바나나나 파인애플 같은 거야 드라마 속 부잣집에서 혹은 어쩌다 누군가의 병문안에 갔을 때나 구경하는 다른 세계의 것이었고 큰 사치가 아니었던 딸기나 포도 같은 것도 제철에만 잠깐 맛볼 수 있는 레어템이었다. 게다가 애플파이나 사과주스처럼 사과를 응용하고 가공하는 요리는 엄마의 사전에 없었다. 조리에 따른 영양소 파괴에 대한 강박이 심한 엄마였다.
3월, 부모님의 결혼기념일에 아빠가 만 원짜리 지폐를 두어 장 내밀 때에도 사과가 등장했다. “사과 사 먹어.” 엄마는 역시 사과를 좋아했나 보다. 아니, 어쩌면 아빠가 좋아했던 걸까? 아무튼 내가 배고파할 때마다 엄마가 내주는 간식도 사과와 우유였다. 카스텔라와 우유, 하다못해 고구마와 우유도 아니고 사과와 우유라니. 엄마 딴엔 몸에 좋은 군것질거리의 조합이었을 것이다. 나는 그 뒤로 사과를 더 싫어하게 됐다.
이랬던 내가 요즘은 하루 반개씩 매일 사과를 먹는다. 사십 대에 접어들면서 건강이 염려되기 시작한 나는 하루 중 제일 처음 먹는 음식을 좋은 걸로 정해놓고 일정하게 먹기로 했다. 궁리 끝에, 선택된 것이 하필 사과였다. 사시사철 계절을 타지 않고 흔하며 가격 변동 없이 구하기 쉽다는 지극히 현실적인 이유에서였다. 게다가 다른 과일에 비해 포만감까지 있으니 다이어트에도 좋을 것 같았다.
그렇게 매일 하루 반 개 씩 사과를 먹은 지도 일 년이 지났다.
아침마다 꾸준히 사과를 먹으면서 알게 된 사실이 몇 있다. 우선, 엄마는 사과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얼마 전 우연한 대화 중 알게 됐는데 그날도 사과를 먹는 내게 엄마가 말했다. “넌 사과를 좋아하나 보네, 나는 사과가 싫은데.” 뜻밖의 고백이었다. 그럼 사과의 주인은 아빠였나? 그러나 위장병이 있던 아빠도 아닌 것 같았다.
엄마는 지금보다 빠듯하던 시절, 가장 흔하고 싼 과일이 사과였을 뿐 누군가 특별히 좋아해서 구비해둔 것은 아니라고 했다. 어쩐지, 우리 집에서 사과 다음으로 흔한 과일이 동절기의 귤이었으니. 이럴 수가, 엄마가 사과를 싫어했다는 사실만큼이나 늘 집에 사과를 두었던 이유가 지금의 나와 똑같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세대를 이어온 생활 밀착형 과일이 바로 사과였다.
사과의 매력을 조금 더 덧붙이자면, 제법인데 싶은 맛을 넘어 천상의 맛이라고 표현하고 싶어 지는 사과를 만나는 날도 아주 가끔은 있다. 이때의 사과는 베어 물기도 전에 고급스럽고 은은한 향이 주위를 감돈다. 무엇보다 과육의 질감이 중요한데 사과 특유의 아삭함에 단단한 백도의 유니크한 식감을 더해놓은 새로운 과일처럼 느껴진다. 이런 사과는 과도가 들어갈 때, 혹은 첫 입을 깨무는 순간 알 수 있다. 그런데 이런 사과는 정말 드물다. 하지만 반대로 정말 맛대가리 없는 사과도 그만큼이나 드물다. 성공과 실패가 확연한 다른 과일들에 비해 사과는 대개 그 맛이 그 맛, 말하자면 안전한 과일이었다.
간혹 예기치 못한 일이 생기거나 생활이 내 통제를 벗어나 복잡해지면 며칠씩 사과를 건너뛰기도 하는데, 그럴 때면 그 미미한 새콤달콤함이 그리워지기도 한다.
요즘엔 맛을 기대하기보다 별생각 없이 사과를 집어 드는 날이 많다. 그리곤 ‘으음, 사과로군.’ 하며 그냥 씹는다. 때로는 표정을 살짝 찡그리기도 하고 그보다 더 드물게는 ‘오 그날이 오늘이군’, 하며 입가에 흐르는 과즙을 닦으며 만족스러운 웃음을 짓기도 하는 것이다.
오늘도 나는 사과를 먹었다. 내일도 먹을 것이다. 어떤 날이 될지 모를 하루를 시작하는 아침, 나는 사과를 깨물며 생각했다. 오늘도 이 사과처럼 단 맛인지 신 맛인지 아삭함인지 퍼석함인지 모를, 보통은 그 경계에 있거나 그 모든 것이 섞여있는 적당한 하루가 될 거라고, 그리고 그 밋밋하고 안전한 맛을 점점 더 좋아하게 될 거라고.
사과를 싫어한다지만 누가 강제하는 것도 아닌데 의지력 없는 내가 정말 싫어하는 과일을 이렇게 오래 먹을 수 있었을까? 나는 사과를 좋아하나? 아직 내가 사과를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도 헷갈리는 마흔두 살의 나. 나는 요즘 오십 대의 나를 상상하는 시간이 늘었는데 '더 분명한 성취 없이 이대로 늙어가도 괜찮은 걸까?' 두려움이 앞섰던 과거에 비해 요즘은 그럭저럭 괜찮을 거라고 생각하는 날이 많다. 이게 모두 사과 덕분인 것 같기도 하다. 사과, 그래 사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