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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조 Mar 22. 2023

잔병치레

박준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을 읽고

[잔병치레]



종종 서점에 들르곤 한다. 일부러 찾아갈 때도 시간을 보내려 찾아갈 때도 있지만 이따금씩 서점으로 발길을 향하는 것이 오랜 취미이자 흥이다.


더불어 책을 선물 받는 일을 좋아한다. 책을 선물한다는 것은, 건네주고 싶은 생각과 마음을 전하는 것이고 생각과 마음을 고르기 위해 생각과 마음을 쏟는 일이고 그렇기에 참 고마운 일이다. 그래서인지 나는 느리게 되새김하며 읽는 습관이 들었다.


한번은 중고 서점에 들러 책을 샀다. 책의 첫 장에는 몇 개의 숫자가 적혀있었다. 인상 깊은 구절들일까 싶어 페이지를 넘겨보니 책 속에는 아무런 밑줄조차 없었다. 그럼에도 그 숫자들은 기억하고 있었는데 아마도 전 주인의 생각과 마음이었을 것이라 짐작했기 때문일 테다.


책을 읽어나가다 보니 숫자에 해당하는 페이지는 사람과 사람에 관계에 대하여, 그러나 살아가며 삼키는 밥에 대하여 밥을 핑계로한 술에 대하여, 그러한 시간들과 일상과 생활과 햇살이 피고 짐에 대한 구절들이 있었다. 이런 구절들은 책의 마침까지 아무 곳에나 질기게 묻어있었으나 숫자는 팔십에서 멈추었다.


아마도 그는 울지 않게 되었거나, 달라지는 일이 있었거나, 둘 다 아닌 것이 너무 고된 일이었나보다 하고는 잠시 머문 뒤 숫자를 이어 적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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