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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조 Mar 23. 2023

낙화落花

[낙화落花]



#1.


오래전 나의 오른쪽 아래 구석에 낯선 것이 들어앉았다. 오래 앓았던 충치가 간간히 시리다가 한동안 뜸하여 익숙해진 것이겠거니 했더니만 새콤달콤을 씹다가 뚝 하고 부러져버렸던 것이다. 족히 몇 미리는 되어 보이는 것이 뱉어져 혓바닥으로 그 조각이 앉아있던 자리를 훑어보았다. 혀끝으로 어루 살핀 빈자리는 꽤나 광활했다.


새콤달콤은 따스함과 차가움에 여려 여름에는 다 녹아있거나 겨울에는 너무 딱딱해 녹여 먹어야 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뜨거울 땐 너무 쉽게 녹고 차가울 땐 너무 딱딱해지는 것. 그것 때문에 어금니 한구석이 깊이 패였다. 어쩌겠나. 무섭지만 치과에 가야지. 아니나 다를까 신경치료를 받아야 한단다. 피치 못해 패인 곳을 더 깊이 파내고 박박 긁어내어 이물감을 심어 넣고야 말았다. 그렇게 낯선 쇳덩이 하나를 한 구석에 들이게 되었다.


처음엔 이게 무언가 싶을 정도로 이질감도 들고 아팠다. 다른 치아들보다 약간은 높은 채로 음식을 씹을 때마다 고통스러운 것이 도대체 왜 이 구석에 틀어박혀 있는지. 근심에 무언가 잘못된 것은 아닌지요 여쭤보니, 처음이라 그래요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거예요. 라는 대답을 들었다. 그럼에도 도대체 언제쯤 다른 것들과 같은 높이로 자리 잡게 될까 걱정하였다.


후에 금속 덩어리는 기어코 자리 잡았고 나는 식사를 거르지 않게 되었다. 허나 종종 잇몸이 붓고 피가 나기도 하였는데, 마치 나의 것이 아닌 것이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는 생각을 하였다. 그럴 때마다 내 혓바닥은 그 근방에서 서성이며 어떤 단어를 빚어낼지 고민하다 문득 하얀 것들 사이 구석퉁이에 자리 잡고 쭈그려 앉아 있는 그것이, 두 무릎을 팔꿈치로 감싸고 앉은 그것이 원망스러워 두어 번 슥 맴돌고는 어떠한 조음調音도 하지 못하였다.



#2.


이때 즈음해서 나는 연어회를 즐겨 먹었다. 붉은 살 생선도 아닌 것이 은은하게 불그스름하여 무언가 고급스러워 보이기도 하면서도, 자주 먹을 가격은 아니건만 회 중에선 그나마 합리적인 가격인지라 한 번씩 마트에서 사 와 직접 썰어 먹으면 그만한 야식 혹은 안주도 없다.


한 가지 단점이 있다면 회라는 것은 신선도가 생명이라는 것. 회는 쉽게 상해버리기에 사 온 날 혹은 다음 날쯤에는 죄다 먹어 치워야 했다. 문제가 발생하는 지점이 바로 이 지점. 밤 열 시쯤 느지막한 시간대에 할인 스티커가 붙겠거니 하고 마트에 들르면 손바닥만한 것은 모조리 팔려있고 오백 그램가량 되는 뭉텅이만 남아있는 경우가 있다. 애석하게도 어찌하겠나. 그냥 사는 수밖에. 그렇게 오백 그램의 연어를 들고 집으로 온 날이 있었다.


절반은 술 한 잔에 한 점씩 먹어 치웠으나 절반은 그저 덩그러니 남겨진 터라 다음날 다시 먹을까 고민하다가 연어장을 담그기로 했다. 간장을 달이고 졸이고 어찌어찌 흉내를 낸 후 연어를 폭 담그니 모양새가 제법 그럴싸하다. 허나 하루쯤 지나니 색이 조금씩 물드는 것 같고, 나흘째 지나 꺼내 먹어보니 감칠맛이 혀끝에 돌던데, 아흐레가 지나자 시큼한 냄새도 나는 것이 영 먹지 못할 것 같았다. 아깝지만 탈 날 바엔 버리는 것이 현명하기에 애써 담아둔 것을 몽땅 버리게 되었다. 날것으로 두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지만 깊이 담아두는 것도 오래 할 일은 아닌가 봅니다.



#3.


아파야 할 때 아프지 않으려하고 치료해야 할 때 치료를 유예하는 것은 잔인한 일이다. 깊이 담아두는 일은 언제나 잔흔이 남는다. 아팠던 충치와 좋았던 맛은 썩어 문드러지고, 기어코 나쁜 것이 되어버린다. 어쩌면 처음부터 나빴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가을과 겨울이 쌓이는 계절이라면 봄과 여름은 흩날리는 계절이다. 봄이 온다. 애당초 움트지 말았어야 할 액화厄禍, 거짓당한 얼룩, 화火. 쌓여있던 나쁜 것은 나쁜 것으로 모두 같은 높이로 곱다시 흩날려 보내야 할 낙화落花의 계절이 온다.



Acrylic on canv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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