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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목지 Sep 05. 2023

채소가 좋아서

Intro

채소는 비주류인가? 곁들이 음식에 빠질 수 없지만 메인으로 다루면 어딘가 허전하다. 고기를 향한 사랑은 워낙 많고 강렬하지만 채소에 대한 사랑은 의심받기 마련이다. 채소가 굉장히 맛있다는 걸 표현하기 위해 매번 고기의 맛과 견주기도 한다. 버섯에서 고기맛이 난다는 게 새송이 버섯에 대한 대표적인 칭찬(?)이다. 하지만 진지하게 말하자면 채소에서 고기맛이 날리 없지 않은가? 어떤 맛있는 버섯을 먹어도 고기와는 달랐다. 뜨겁게 톡 터져 나오는 버섯의 채수는 깊고 놀라웠지만 고기와는 분명 다른 풍미였다. 고기의 맛이 풍미의 이상향도 아니거니와 버섯은 버섯만의 풍미를 가지고 있다.


당근은 '걸러내는 채소' 취급을 많이 받곤 하는데 불에 볶았을 때 우러나오는 감칠맛을 맛보면 당근을 빼놓을 수 없다. 양파는 익히면 달달하고 따뜻한 맛을 내지만 생으로 먹었을 땐 또 다르다. 시원하고 알싸한데 달큼하다. 호박은 또 어떤가. 짭짤한 찌개에 뭉근하게 익혀도 최고고 말린 호박고지를 끓여 먹으면 고들고들하니 완전히 다른 식감을 선사한다. 마늘과 생강은 한국인이라면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양념의 치트키이다. 곧바로 다진 마늘과 생강이 내는 향은 시판제품과는 천지 차이다. 채소의 매력을 나열하려면 한도 끝도 없다.


갖가지 본연의 맛을 느끼고, 잘 어울리는 조합을 찾는 일도 나의 즐거움 중 하나이다.


채소에 대한 사랑은 유전이었다. 부모님이 뭐든 잘 드셨다. 어릴 때부터 할머니 입맛이었고, 5살 배기 애였을 때 엄마에게 '고칫잎(고춧잎무침)'을 달라고 떼썼다. 개운한 맛을 좋아했다. 지금까지도 입맛은 크게 변하지 않았고 달라진 게 있다면 육류와 유제품을 소화시키는 능력이 떨어져서 몸이 자연스럽게 채소를 많이 찾게 되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분명 그리운 음식이 있었다. 육고기가 들어간 음식 중 너무나 사랑했던 '닭볶음탕'은 얼마나 좋아했냐 하면, 국물에서 헤엄을 치고 싶다고 느꼈을 정도였다. (필자가 엄청난 먹보라 놀랐나?) 고기를 멀리하고 나서도 닭볶음탕은 너무나 사랑하는 음식이었고, 닭고기 없이 모든 재료를 그대로 하여 요리해 보기로 했다. 내가 사랑했던 감자와 깻잎, 대파와 양파 그리고 당면은 모두 그대로였다. 그것이면 충분했다. 겨울엔 재료를 달리해서 깻잎 대신 시금치를 넣었다. 갓 지은 밥에 감자를 으깨 국물과 비비고, 달게 익은 시금치를 올려먹으면 얼마나 맛있던지.


그래서 여기에 무얼 말하고 싶었냐 하면, 채소가 고기보다 낫다거나 고기 없이 먹어보자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다. 그저 내가 사랑한 채소들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그 무궁무진한 맛들을 나누고 싶었다. 계절마다 달라지는 묘한 맛, 요리법에 따라 달라지는 다양한 식감, 듣지도 보지도 못한 중구난방 레시피 등 채소를 요리하며 느끼는 모든 것들을 나눠보려 한다. 잠재적 먹보들이여 이제 채소와 사랑에 빠질 준비를 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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