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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그림빠 Jan 23. 2024

내가 엄마에게 원했던 것

정서적, 신체적 연결을 그리워하다 

엄마와의 관계를 되돌아보며, 

'어린시절 나는 엄마에게 어떤 것을 원했을까?'를 생각해봤어요.


엄마와 손을 잡고, 쇼핑을 함께 하는 것,

다정하게 무릎을 베고 누워 말을 주고 받는 일상, 

함께 안고, 기대고, 터치하는 것

영화 속에 그려진 엄마와 딸의 관계를 원했던 것 같아요.


#연결이 끊기다.

엄마와 저는 언제부터인가 "연결"이 끊긴 것 같아요.

신체적 연결 뿐아니라 정서적 연결도 끊긴 것 같아요.

지금 나는 엄마와 눈을 마주치고, 한공간에 있는 것부터가 어색하고 불편한 관계가 되었어요.

손을 잡거나, 포옹을 한다는 건 지금으로서는 많이 어렵고 어색하지요.

또한, 제 고민을 이야기 하거나, 지금 나의 상황, 나의 감정, 나의 이야기를 전하는 것 또한 어려운 일이 되었어요.

그저, '엄마는 몰라도 돼, 엄마에겐 말하지 않을꺼야'로 그 연결은 끊겨있는 것 같아요


그렇다면, 이 연결의 끊김은 언제부터였을까요?


지금의 첫째아이의 나이인 11살, 12살 즈음이 아니였을까?

어쩌면, 더 어린 나이부터 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저에겐 2살 터울씩 차이가나는 3명의 동생이 있습니다.

막내가 태어났을 때, 제가 7살이 되었지요.

집안의 장녀로 부족한 살림에도 부모님은 저에게 많은 것을 해주셨어요. 그리고 저도, 그 기대에 부응하려고 했던 것 같아요. 어린시절이 선명하게 기억되지는 않지만, 척척 잘하는 딸로 살아기기가 선택된 것 같아요.


제가 알지 못하는 순간 어쩌면 서서히 끊기지 않았을까 해요.

4남매를 키우기 위해 고분분투 했던 그 시간, 자식들 하나하나를 꼭 안아줄 여유가 없었을 테고,

그런 터치, 정서적 교감이 중요하다는 것을 엄마도 저도 모른채 살았을 것 같아요.


그렇게 서로의 역할을 위해 살다가, 육아를 통해 다시 만난 지금, 그때, 충족되지 못한 저와 엄마를 다시 만나게 된 것이죠.


엄마를 좋아하는 딸, 엄마와 여행을 다니는 딸을 보며, 그 관계가 부러웠습니다.

저런 관계, 저런 연결이 유지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생각하면서도

또, 화가나는 지점도 있었어요.


'아무리 바빠도 하루에 한번은 안아줬어야지'

'아무리 바빠도 잠은 같이 잤어야지'

어쩌면, 하루에 한번 안아주였을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그게 만족스럽지 않았었을 것 같아요.


어린시절 저도 알아차리지 못한, 그 서러움이 저도 모르게 엄마에게 수동적으로 화를 내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지금 엄마에게 미워하는 감정이 드는 만큼, 사랑받고 싶었던 마음이 컸다는 것.

나는 엄마에게 사랑을 받고 싶은 정서적 연결, 신체적 연결을 받고 싶은 딸이였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지금의 내가 잊어서는 안될 것은,

그 시절 받지 못한 그 나이의 아이만큼, 나에게 그 아이가 있다는 것.

나와 내 아이의 정서적 신체적 연결은 잘 되어 있는지 생각해봐야 할 것 같아요.


또 다시 되풀이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저도 저를 잘 돌아봐야 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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