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의 등에 오르다.(Dragon's back mountain)
선선했던 3월과는 다르게 4월이 되자 본격적인 홍콩의 여름 더위를 경험하게 하려는 것인지 그날은 더욱 뜨거운 햇살이 쨍하게 내리쬐는 아침이었다.
앨리 차장님과 함께 하이킹하기로 한 드래곤즈 백 마운틴으로 향하는 나의 발걸음은 신이 났고.
홍콩에서 하이킹을 좋아라 하는 이들은 한번 이상은 꼭 가 본다는 드래곤즈 백 마운틴.
등산 초보자들에게도 어렵지 않고 경치도 좋아 인기가 많은 홍콩 여행지의 필수 장소 중 하나라고 한다.
내게 있어선 그 산은 두 번째 오르는 시간이었고, 나와는 다르게 2년 넘게 홍콩에 있었던 앨리 차장님은 한 번도 오른 적이 없었던 곳이었지.
길치인 내가 과연 잘 안내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살짝 들었지만 이미 한 번 다녀온 곳이었으니 그 경험을 스스로 믿어 보기로 했다.
Shau Kei Wan 역에서 내려 홍콩의 특색이 있는 미니버스를 타고 목적지로 이동한다.
낡디 낡은 외형의 버스이지만, 무엇인가 오래된 홍콩영화처럼 홍콩스러운 분위기가 가득한 이 미니버스가
난 개인적으로 참 좋기만 하더라.
버스에 오르니 운전기사분의 취향이 한껏 묻어나는 아이템들이 버스 안에 장식품으로 달려 있는데, 그중에 한국의 전통 악기 북 열쇠고리가 보였다. 한국인이 알아볼 수 있는 아이템을 보니 처음 만난 기사님임에도
불구하고 한껏 반가워지는 마음.
내려야 할 목적지에 대해 지도를 보여 드리며 하차의 안내를 부탁드리니
웃으며 알겠다고 말씀하시는 모습이 매우 유쾌하다.
그러면서 우리의 한국어 대화를 들으시고 바로 자기 뒤에 있는 열쇠고리를 가리키며 한국에 대한 애정을 신나게 표현하신다. 한국을 좋아하는 기사님의 마음이 고맙게 느껴지는 순간이었지 싶다.
훈훈한 마음을 뒤로한 채 산을 오르기 시작한 우리.
드래곤즈백마운틴은 말 그대로 용의 등이란 산을 의미한다.
산의 모양이 용의 등과 비슷해서 지어진 이름이다.
출발 코스의 시작은 숲 속을 산책하는 기분이 들게 하는 길로 한참을 기분 좋게 걸어 나아간다.
정오가 다되는 시점에 시작된 하이킹이었고 고온의 날씨로 인해 무더운 기운이 느껴졌지만 그러함에도 수풀 향에 취해서 거니는 그 시간이 좋았다.
가끔 불어오는 바닷가의 시원한 바람이 청량음료 같은 기분을 선사했고.
그렇게 어느 정도 오르다 점점 산 위에서 저 멀리 푸른 바다가 보인다.
Dragons' back 산을 타고 내려가서 조금만 더 가면 SHEK O 해변이 위치해 있고 반대 편에는 BIG WAVE라는 해변이 있다.
BIG WAVE는 서핑을 즐기는 이들이 주로 찾는 곳이고, SHEK O는 해변에서 수영 및 여유를 즐기는 이들이 찾는 곳이다.
연결되어 있는 해안가를 산을 오르며 감상하는 시간도 하이킹의 재미 중 하나였지 싶다.
한 시간도 안 되는 거리를 기분 좋은 담소를 나누며 오르다 보니 어느덧 정상에 도착하게 되었다.
시야에 펼쳐진 아름다운 바다 색채와 하늘빛의 조화에 내 마음까지 푸름으로 가득 채워지는 것만 같았다.
잠시 멍하니 눈앞에 펼쳐진 경관에 한껏 취해 본다.
처음 하이킹을 한 앨리 차장님도 자신의 눈앞에 펼쳐진 아름다운 자연에 계속 감탄하며 행복해하고 있다.
그러한 모습을 지켜보는 나는 함께 추억을 만드는 이 시간이 더욱 소중하게 느껴짐에 그마저 고마운
시간이다.
한쪽에 제법 넓은 바위가 있어 그 위에 앉아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는 와중에 저 멀리 한 마리의 매가 보인다.
매인 지 독수리인지는 모르겠지만 바람에 자신의 몸을 맡기며 날고 있는 모습이 참으로 자유로워 보였다.
그 넓은 하늘에서 홀로 노니는 그 녀석을 보고 있노라니 바람에 자신을 그대로 내맡기는 그 자체의 가벼움이 부럽다.
인생에서도 거스르지 말고 삶의 흐름에 내맡겨 보라는 이야기들을 많이 하는데.
막상 실제로는 쉽지 않은 내맡김이다.
한국에서 처음 홍콩행을 긍정적으로 결심한 이유 중의 하나가 나 스스로에게 자유함을 느끼게 해 보자였다.
내가 지니고 있는 책임감과 삶의 무게가 다소 큰 중압감으로 느껴지고 있을 때쯤 홍콩에서 오롯이 나의 감정에 집중하고 나와 함께 하고 있는 무거운 것들에 있어선 조금은 비워내고 자유할 수 있는 가벼운 삶을 지향해 보자라는 이유였지.
때문에 홍콩에서의 경험하는 모든 순간들에 난 삶의 내맡김을 적용해 보고 있는 중이다.
여전히 힘을 빼지 못해 간간히 버거워하는 나이지만, 이전보다는 나아진 마음의 여유로움이 생겨나고 있다.
그 마음 덕분에 이렇게 용의 등을 두 번이나 오르고 있지 않았던가.
즐거운 산행을 마무리하며 하산하는 그 길.
길치인 나의 잘못된 선택으로 세 갈래 길 중 길이 아닌 낭떠러지 길로 내려오게 된 앨리 차장님과 나.
혼자라면 원래 나답다 하며 어찌어찌 내려가는 나일 텐데 초행길인 앨리 차장님을 함께 위험한 길에 놓이게 하니 미안한 마음과 어떻게 해야 할지 아무 생각도 안나는 상황이었다.
너무 심한 경사도와 길이 보이지 않는 아래를 보며, 불안함이 앞서기 시작했고 뒤에 따라오는 차장님께 다시 올라가 맞는 이정표 길로 가자고 하니, 등산을 좋아하지 않는 그녀는 오름의 힘듬이 더 싫어서인지 다시 올라가는 건 절대 안 된다고 한다.
그리하여 산은 내려가면 길이 있다고 하니 계속해서 그 위험한 길을 내려갔다. 다행히도 천신만고 끝에 우린 무사히 하산할 수 있었고.
난 그때서야 긴장된 마음이 한시름 놓일 수 있었던 상황이었지.
앨리 차장님은 하얗게 질린 나의 얼굴을 보며 자신에게는 평생 잊을 수 없는 추억의 하이킹이었다고 하시며 오히려 나를 위로한다. 덕분에 정말 평생 잊을 수 없는 추억이 된 드래곤즈 백 마운틴 하이킹!
지금은 즐겁고 행복한 시간의 추억으로 반추하는 멋진 시간이 된 것을 보면, 역시 삶의 내맡김으로 함께 하다 보면 우리의 마음이 그에 따라 달라짐을 경험하게 되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