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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ppy Judy Mar 16. 2022

홍콩의 향기

자유로운 나이 듦

홍콩에 와서 생활하다 새롭게 발견하게 된 것 중 하나는 생각보다 노인의 인구수가 꽤 많다는 것이었다.

세계적으로 고령화가 점점 늘어가고 있는 추세인 상황임에도 유독 홍콩의 어르신들이 더 눈에 많이 띄게 된 건 아마도 그분들은 젊은이들 못지않게 자유로운 사회활동을 꾸준히 하고 계시기 때문이기도 한 듯하다.


홍콩에서는 특히 맥도널드나 세븐 일레븐 편의점 또는 택시 기사 분들 중에 지긋하게 나이 드신 어르신들을 종종 마주할 수 있다. 나이에 국한되지 않고 자신들의 일에 열정을 갖고 행복한 미소를 머금으며 일을 하시는 모습에 별거 아닌 것 같음에도 마주할 때면 마음에 훈훈함이 가득 담기게 된다.

서툰 것 같으면서도 자신감이 넘치는 영어로 대화하시며 웃음을 건네주실 때 그분들의 긍정 에너지를 가득 경험함은 덤으로 얻는 서비스다. 자족하는 모습 속에 각자의 매력이 배어 있는 여유로움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패션은 또 어떠한가.

길거리를 지나갈 때마다 종종 자유로운 패션을 추구하는 어르신들을 마주할 때마다 탄성이 절로 나온다.

영국 문화의 영향을 오랜 기간 받았어서인지 청바지를 입은 분들이 꽤 많으시다.

한국의 경우 어르신들은 청바지보다는 편한 다른 옷을 추구하는 것과 대비 이분들의 청바지 패션은

내게는 참으로 신선하게 다가왔다.

뒷모습만으로도 단짝 친구임이 보여지는 할머니들(왼), 에코백과 청바지, 그리고 운동화로 자유로운 패션을 선 보인 할아버지(오)


개성 있는 자신들의 패션을 에지 있게 표현하시며 노년의 삶을 영위해 가시는 것 같아 이런 분들을 뵐 때마다 나는 더욱 기분이 좋아지게 된다.

어느 날은 백발의 할머니 두 분이 단짝임이 확연하게 보이는 비슷한 패션을 하고 걸어가시는 모습을 보았다.

그 모습이 어찌나 아름답던지 뒷모습을 몰래 사진에 담았더랬지.

백발의 머리도, 같은 방향의 크로스 백도, 청바지와 운동화가 한껏 어우러진 그분들의 수수하지만 멋있는 패션에 정말 한동안 그 뒷모습을 계속 쳐다보고만 있었다.

나도 나중에 나이가 들면 나만의 색채가 가득한 패션을 자유롭게 추구하리라 다짐하며 말이다. :)

또 다른 날에는 지하철역을 가는데 귀여운 에코백을 메고 가시는 할아버지를 보게 되었다.

역시나 포인트는 귀여운 에코백에 청바지와 운동화의 어울림. 여느 젊은이 못지않은 근사한 패션이었다.

이분들의 멋스러운 아우라는 비단 패션 때문만은 아니리라.

그 누구보다 자신들을 사랑하고 무엇을 좋아하고 어울리는지를 잘 알고 계신 분들이라 생각한다.


올 1월 초에 친구와 함께 홍콩 아일랜드에 있는 빅토리아 피크로 하이킹을 갔던 적이 있었다.

그날은 비가 내렸다가 멈춘 시간이라 산 위에는 안개가 자욱했었다.

그런데 저 앞쪽에서 단소 연주 소리가 들리는 것이었다.  길을 따라 앞으로 걸어가면 갈수록 그 소리는 더욱 선명해졌고 그 연주 소리의 주인공과 마주하게 되었다.

연세가 지긋하신 할아버지께서 운치 있는 모습으로 그 안개 낀 숲 속에서 버스킹 연주를 하고 계신 것이다.

빅토리아 피크 위에서 단소 연주를 하고 계신 할아버지

안개가 자욱한 숲 속에서 비 향기를 머금고 있는 수풀들의 향기와 어우러진 할아버지의 음악은 정말 최고의 연주였지 싶다. 할아버지의 순수한 영혼의 울림이 느껴진다고나 할까.


빅토리아 피크에서 홍콩대학교로 내려오는 길,  교환 연구원으로 근무하고 있는 친구 덕에 홍콩 대학교를 함께 둘러볼 시간도 갖게 되었다.  

코로나 및 방학 때문에 학생들도 없는 고요한 대학교의 정경에 흠뻑 빠져 있을 때쯤 어디선가 아쟁 연주 소리가 들려온다. 신기해서 연주 소리가 나는 쪽으로 가보니 할아버지 한 분이 아쟁을 고고하게 연주하고 계신 것이었다. 난 늘 홍콩을 로맨틱 도시라고 말하는데 이 날은 할아버지들의 악기 연주에 로맨틱 홍콩의 매력에 더욱 심취하게 된 것 같아 감동이 가득했다.

홍콩 대학교 안에서 아름다운 아쟁 연주를 하고 계신 할아버지

마지막으로 우연하게 만난 멋진 프로 사진작가 사이먼 할아버지를 소개하고자 한다.

West Kowloon Art Park에 있는 크리스마스 빅 트리를 보러 갔었을 때 내 앞에서 사진 촬영을 준비 중인 사이먼과의 대화 시간은 내 인생에 있어서 매우 소중한 시간이었다.

자신의 일을 사랑하는 사이먼 할아버지

원래는 사진을 좋아했지만 젊은 시절에는 생계를 위해서 다른 일을 했어야만 했고 은퇴 직전에 자신이 진정으로 좋아하는 사진을 찍고 싶어서 준비했고 결국 이렇게 프로 사진작가가 되었다고 하신다.

지금은 학생들을 가르치고 계시고 있고, 작년 2021년 10월에는 자신의 작품들로 사진 전시회도 열었다고 하시며 휴대폰에 저장되어 있는 자신들의 작품을 보여 주시며 설명해 주신다.

그의 모든 사진들은 절제미가 있음과 동시에 그의 열정이 가득 담겨 있었다.

내게 사진을 보여 주시면서 하는 감동적인 말씀

"Always simple is the best!"

사이먼은 자신에게 많은 이들이 돈을 주겠으니 사진을 찍어 달라고 해도 응하지 않는다 하셨다.

그저 자신이 찍고 싶은 인물이나 피사체가 있을 때 그때 찍고 그 사진을 그들에게 무료로 전해 주시는 자신만의 기쁨이 있다고 한다.


그와 대화하면서 나는 그에게 제일 소중한 사진이 어떤 사진인지 물었더니 그가 웃으면서 답한다.

"많은 사람들이 너처럼 같은 질문을 내게 하더구나. 그러면 난 늘 대답한단다. 아직 그 순간은 내게 오지 않았다고."

대답하는 그의 입가에는 설렘과 기대에 찬 미소가 가득하다.


내가 느낀 홍콩의 어르신들은 자신들이 꿈꾸며 그려가는 모습으로 그렇게 아름다운 나이 듦을 경험하고 있는 듯했다.

나이 듦에 있어서 당당한 모습이랄까.

나 또한 이들처럼 낭만의 모습으로 나 자신을 사랑하며 그렇게 담담하게 나이 들어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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