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묘미
여행의 묘미 중 하나는 조사와 계획이다. 가고자 하는 나라나 도시에 대해 열심히 사전조사를 한다. 큰 틀을 짠 후, 세부적인 동선을 정한다. 약간의 변수가 있더라도, 계획한 대로 여행의 일정이 맞아떨어졌을 때 만족스러운 여행이 된다.
조사의 부족으로 인해 계획에 큰 변수가 생겨 일정을 변경하거나 취소하게 되면 중요한 무언갈 빠뜨린 느낌이 들어 찝찝하기도 하고, 심지어 그 도시나 나라를 방문한 의미마저 퇴색되기도 한다. 여행이라는 게 자주 하거나 반복하기 어렵기 때문에 그 아쉬움이 더욱 커진다.
예를 들면, 나에게 에콰도르가 그렇다. 부끄럽지만 나는 갈라파고스 섬이 에콰도르 령이라는 걸 알지 못했다. 사전 조사와 준비만 충분했다면 나는 다이빙이라는 새로운 기술을 통해 나의 스펙트럼을 넓혔을 거고, 갈라파고스 섬에서 거북이, 상어와 함께 헤엄치는 평생 잊지 못할 경험을 했을 것이다.
여행의 묘미 중 하나는 즉흥이다. 조사와 계획대로 여행하다 보면 때론 일 같이 여겨진다. 일상에서 벗어난 나를 또 다른 일상에 가두는 꼴이 된다. 남들이 다녔던 장소, 남들이 먹었던 음식만 쫓아다니는 인증용 여행이 되어버릴지도 모른다. 어떻게 하든 아쉬움과 미련이 남을 것이다.
여행을 하다 보면 사전 조사에서 미처 알아내지 못한 숨은 명소나 할 것들이 많다. 그러한 정보에 이끌리기도 하고 때론 사람에게 이끌리기도 한다. 그리고 예상치 못한 곳에서 가장 값진 경험을 얻는 경우가 종종 있다. 좀 더 특별한 여행이라고 느껴진다.
예를 들면, 나는 멕시코가 그렇다. 그저 느낌에 이끌려 주변 도시를 모두 포기하고 멕시코 시티에만 일주일 이상을 머물렀다. 그 덕분에 Tolantongo라는 잊지 못할 장소에 가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아르헨티나에서는 동행에 이끌린 덕분에 살면서 가장 짜릿했던 경험인 스카이 다이빙을 할 수 있었다.
아르헨티나에서 만난 오모 씨는 즉흥적으로 남극을 다녀왔고, 멕시코에서 만난 김모 씨는 즉흥적으로 미국의 그랜드캐년을 다녀왔다. 모두 하루 만에 벌어진 일들이지만, 그들에겐 평생 간직할 추억 중 하나가 됐을 것이고, 어쩌면 계획했던 것보다 훨씬 값진 여행이 됐을 것이다.
여행의 백미는 계획과 즉흥의 조화이다. 주어진 상황 하에서 할 수 있는 조사와 계획 세우기에 최선을 다하면서 즉흥을 섞으면 된다.
계획적인 여행이든 즉흥적인 여행이든 무조건 후회는 남는다. 섞으면 뭐가 다르냐고 할 수 있겠지만, 분명 다르다. 즉흥이라는 묘약이 조사 누락이나 계획 차질에 따른 미련과 아쉬움을 치유해준다.
쉽게 말해, 합리화하기 좋다.
나는 지금 스페인 여행의 마지막 날, 마드리드에 와 있다. 친구의 휴가에 맞추어 즉흥적으로 친구를 만나 스페인 여행을 하게 되었고, 그 후 최대한 열심히 계획하여 일주일 동안 아홉 도시를 방문하는 알찬 여행을 하게 되었다.
우연이 겹쳐 마드리드에서 열리는 유럽축구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을 마드리드 현지에서 보는 행운을 얻었다. 수십 명의 리버풀 팬들 사이에서 손흥민과 토트넘을 응원하는 간 떨리는 경험을 했다.
중세 시대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스페인 남부 도시의 골목 곳곳을 눈으로 보고 발로 밟으며 담았고, 끝없이 펼쳐진 지중해를 따라 직접 운전하며 달릴 수 있었다.
무엇보다 좋았던 건, 한국에서 음식을 준비해 온 친구 덕분에 김치, 김, 미역국, 육개장까지 원 없이 먹었다. 약 100일 만에 마시는 소맥은 어서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는 이유를 일깨워주었다.
좋은 기억밖에 없는 스페인 여행이 되었다.
사실, 갑작스러운 여행으로 반드시 사전 예약해야 하는 알람브라 궁전은 입장하지 못했다. 도로체계가 익숙지 않아 불안에 떨며 운전하기도 했다. 주차 때문에도 여러번 애를 먹었다.
하지만 이 모든게 즉흥 여행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것이었고 괜찮았다. 억지가 아니라, 이렇게 저절로 합리화가 되어 좋은 기억만 남는 스페인 여행이 되었다.
내일은 모로코로 떠난다. 아메리카 대륙인 멕시코에서 유럽 대륙으로 온 지 얼마나 됐다고, 또다시 아프리카 대륙으로 이동을 한다. 대륙 간 이동은 정말 쉽지 않다. 또 얼마나 힘든 비행이 될지, 게다가 아프리카라니 벌써부터 걱정이 된다...
하지만 어느 정도 조사는 해놨으니 마음의 안정을 갖고, 즉흥을 가미하여 후회 없는 여행을 만들어 나가야겠다.
Welcome to Africa :-)
p.s - 사실,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모로코 페즈로 한 시간 반이면 갑니다 :-) 하하하하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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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