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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성훈 Oct 23. 2019

여행에 미친 여자와 결혼했다

23) 그리고 다시 한국


 어느덧, 한국으로 돌아온 지 한 달 하고도 절반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걱정으로 품고 있던 많은 불안한 것들이 다행히도 그럭저럭 해결되었다.


 바로 회사에 복직을 했고, 돈에 조금 쪼들리긴 하지만 집도 여차저차 재계약을 했다. 여행 중 다짐했던 스페인어 공부는 역시나 마음속의 짐으로 남아있다. 잉여 시간이 남아돌지만 공부라고 생각하니 손이 잘 안 간다.

 괜찮다. 놀고먹는 게 지치는 순간이 오면 자연스레 책상에 앉을 것이다. 늘 그랬던 것처럼.


 마음속의 가장 큰 짐은 사실 지금 쓰고 있는 글들, 그러니까 브런치에 있는 나의 글들이다. 쓰는 게 귀찮거나 힘들어서는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여행의 마지막이 나의 글의 마지막이 되는 걸까 봐 선뜻 글을 쓸 수가 없었다. 계속해서 글을 쓰고 싶은데 이제 그럴 수 없을까 봐 지레 겁이 났다.

 

 애꿎은 브런치 아이콘만 만지작거렸다. 여행 이야기인데 여행이 끝이 나 버렸다.








 내 글의 주인공인 그녀는 여전히 대단하다고 느낄 만큼의 삶을 살아나가고 있다. 그녀는 회사에 복직하지 않았다. 대신 여행 블로그를 쓰고 사진을 보정하며 몇몇 여행 공모전에도 출품을 준비하고 있다.


 스스로 시장을 개척해 여행을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강연을 하기도 한다. 기회가 잘 닿은 건지 오는 겨울에는 기업체와 계약을 통한 강의를 한다고 한다.

 아직은 한시적일지라도.


 요즘 시대를 선구하는 크리에이터가 바로 내 옆에 있다. 아직 인플루언서라고 부르진 말라고 한다.

 되어가는 중일 뿐 부족한 게 많다고.


 다만 아쉬운 게 있다면 광주, 전라권은 이런 류의 시장이 아직 활성화되지 않아 기회가 너무 적다고 한다. 그래도 할 수 있는 것들을 하며 경력란을 채워 나가고 있다.


 기회는 준비된 자에게 오는 법이기에.








 고맙게도 몇몇 분들이 나의 글에 대해 물어왔다. 지금까지 써 온 그 글들은 어떻게 되는 건지, 이대로 끝내는 건지, 출판 시도는 해본 것인지 등등 말이다.


 쑥스러웠다. 솔직히 책으로 낼 정도의 재미와 퀄리티는 아닌 것 같다며 내 생각을 있는 그대로 전했다.

 하지만 솔직히 조금 아쉽긴 하다.

 아니, 많이 아쉽다.


 내가 써온 글들을 처음부터 읽었다. 은근히 많은 분량이 되었다. 어떤 편은 내가 생각해도 괜찮은 솜씨인 것 같았고, 어떤 편은 굳이 필요하지 않은 내용인 것 같았다.

 비교적 어둡고 우울한 글들이 잘 쓴 것 같았고 공감되었다. 그냥 내 성향이 그런 건가?


 어떻게든 끝맺음은 하고 싶었다. 후회와 미련이 남지 않게 시도라도 해 봐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녀도 아쉽고 아깝다며 뭐라도 해보기를 종용했다. 그놈의 우유부단으로 또다시 차일피일 미뤄가며 좀먹는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그때였다.


 ‘브런치북’에 대한 공지가 팝업창에 떴다. 내가 써왔던 글들을 책으로 출판해 주겠다는 것이었다.


 맥박이 빨라졌다. 마지막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글들을 읽고 또 읽었다. 말하자면 탈고의 과정을 거쳤다. 마치 작가가 된 것 같았다.


 조금 부자연스러운 부분만 고쳤고, 내용엔 거의 손을 대지 않았다. 날 것 그대로의 뭔가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글에는 정답이 없다. 독자에도 제한이 없다. 독자에 따라 심지어 독자의 컨디션에 따라 같은 글도 다르게 읽힐 수 있다. 그래서 그냥 두었다.


 그리고 지금 이렇게 마지막 글을 쓰고 있다. 새로운 시작에 대한 희망이 생기니 마지막 글을 쓸 용기가 생겼다.








 돌이켜보니 참 행복했던 6개월의 시간이었다. 굳이 무언갈 얻어오려고 애쓸 필요 없는 나날들이었다. 여행을 준비하는 여러 친구들에게, 혹은 호기심 가득한 아이들에게 나의 여행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는 것만으로도 즐거운 요즘이다.


 사소한 다름으로 다투기도 하지만, 함께 장을 보고 요리를 하고 청소하며 보내는 일상이 좋다. 사람들과 어울리며 술잔을 기울이고 목청 높이는 일상이 좋다. 편하게 누워 마음껏 밀린 드라마를 보며 울고 웃는 일상이 좋다. 세계 어느 곳 못지 않게 청명한 한국의 가을 하늘을 보고 있는 일상이 좋다.


 비록 지금은 한국에 있지만, 나의 행복했던 그 시간과 그 장소들을 돌이켜 볼 수 있음이 좋다. 비록 나의 여행이 그립지만, 언제라도 다시 그 곳을 향해 떠날 수 있음이 좋다.


 아직 젊기에, 나에겐 충분한 시간과 기회가 있고 또한 있을 것임에 감사하며 이만 이 글을 마치려고 한다.






 p.s - 이름도 얼굴도 모르지만, 저의 글을 읽어주고 관심 가져준 여러분들 덕에 진심으로 가슴 뛰고 행복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덕분에 저의 여행이 더욱 의미 있고 값질 수 있었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아니 기회를 만들어 다시 글을 쓰는 저를 저 스스로도 염원하고 있습니다. 다음에 다시 인사드릴 수 있는 그 날을 기약하며 이만 줄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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