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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성훈 Aug 14. 2019

여행에 미친 여자와 결혼했다

22) 여행을 마치며

 

 꽤나 많은 사람들의 평생소원인 세계여행을 나는 타의에 의해 하게 되었다. 사실 세계여행 혹은 장기여행이라는 단어가 꽤나 매력적이었기에 최종적으로 결정을 내린 건 나지만, 그러니까 가고 싶긴 하면서도 자꾸만 이것저것 재게 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뭔가를 얻어오려고 애를 썼다.


 이 여행을 통해 내가 얻을 수 있는 게 뭘까?


 하고 있던 일을 관두는 건 사람 간의 관계나 신뢰가 포함되어 있기에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내


 ‘내가 배신을 하거나 사기를 치는 것도 아닌데 뭐.’


 하며 금세 합리화를 했다. 그랬더니 이번엔 돈과 승진과 같은 외적인 욕심과 걱정들이 발목을 잡았다.

 내가 염원해 마지않던 여행이었다면 모든 기회비용들이 정당화되고 여행하는 자체만으로도 너무너무 행복했겠지만, 나는 그러지 못했다. 자꾸만 무언가를 얻으려 하고 남기려 했다.

 경험과 같은 소중하지만 단순하고도 당연한 게 아닌, 앞으로의 나의 삶 속에서 눈에 띌 수 있는 어떤 산물을 남기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떠나기 전부터 여행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들에 대해 계속해서 고민했다. 물론 떠난 후 여행지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 과정 속에서 블로그, 유튜브, 브런치 등 나의 경험과 기록을 통해 수익을 낼 수 있는 것들을 계속해서 시도했다. 브런치에서는 나름의 가능성을 봤지만, 블로그와 유튜브는 아무런 호응도 얻지 못하고 이내 포기해버렸다.

 여행의 시작부터 너무나도 이질적인 남미 대륙을 밟았고 세계 불가사의 중 하나라는 코르코바도 예수상을 보았다. 이과수 폭포 앞에서 한없이 작아지는 나를 느꼈으며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는 스카이다이빙을 했다. 파타고니아의 빙하를 직접 밟았고, 세계에서 가장 건조한 아타카마 사막에서 쏟아지는 별들과 은하수에 취하기도 했다.

 너무나도 소중하고 값진 경험들이었고, 그 이후로도 우유니 소금 사막 같은 대자연의 신비부터 마추픽추 같은 인간의 경이로움까지 한국에 있었다면 결코 보고 느끼지 못했을 많은 일들을 겪었다.

 하지만 사실 그런 놀라운 경험을 한 날은 실제로 며칠 되지 않았다. 어쩌면 한국과 다를 것 없는 감흥 없는 거리를 걷거나 장거리 이동을 하느라 버스에서 옴짝달싹 못 한 날이 훨씬 많았다. 날씨나 분위기가 싫어 숙소에서 나가지 않은 날도 더러 있었다.


 그런 모든 게 여행의 일부이고 오히려 어떤 굉장한 것들을 보는 것보다 이런 일상이 진짜 여행일 수 있지만, 난 그 순간에도 계속해서 뭔가를 얻으려 했다.

 그리고 어떤 특별한 것들을 찾아내지 못하면 이내 지루함을 느꼈고 또다시 기회비용을 따졌고 여행을 부정했다. 빨리 그 도시나 나라를 떠나고 싶어 했고, 심지어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기도 했다.

 그렇게 나의 여행은 놀라움과 지루함, 다채로움과 무미함, 유의미와 무의미의 연속이었다. 그러는 중에도 무언가를 찾고 남기려는 나의 시도는 계속되었다.


 여행을 여행 자체로 즐기지 못하는 것 같은 나를 원망하기도 했다. 그녀에겐 어느 때보다도 소중하고 꿈같은 시간과 순간들인데, 그것들을 폄하한다며 원망을 듣기도 했다. 그럴 의도는 없었지만.

 여행의 막바지로 향해가면서 문득 궁금해졌다. 과연 나는 무엇을 얻었을까. 어떤 걸 느꼈고 어떨 때 내 눈이 반짝거렸을까.

 나의 여행을 천천히 돌아보았다.


 여행자라는 것을 알아보고 먼저 도움이 필요하냐고 물어오던 아주머니가 떠올랐다.
 횡단보도에 서 있으면 당연한 듯 차를 멈추고 먼저 건너라던 분들이 떠올랐다.
 버스를 타는 데 애를 먹고 있으니 친절히 알려주며 버스비까지 내주던 아주머니가 떠올랐다.
 어깨너머로 한국말을 배운 듯한 한 어린 상인이 ‘안녕하세요’와 함께 ‘빨리 빨리’라고 외치던 것이 떠올랐다. 나에겐 꽤나 낯 뜨겁게 들렸다.
 평일 저녁 8시면 문을 닫고, 주말엔 영업을 하지 않는 수많은 가게들이 떠올랐다.
 마지막으로, 화룡점정이었던 스페인의 ‘시에스타(낮잠시간)’가 떠올랐다.
 

 위에 나열한 대부분의 일들은 우리나라보다 GDP가 낮은, 속된 말로 못 사는 나라에서 겪은 일들이며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마도 나보다 가진 것이 없는(물질적으로) 사람들일 것이다.


 그들보다 부유한 나라에 살며 돈이 더 많은 나는 과연 그들보다 질 높은 삶을 살고 있을까. 내 삶이 더 나은 삶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나는 지금 그들보다 더 행복할까. 그리고 지금보다 더 많은 돈을 벌면 더욱더 행복해질까.


 흔히 많은 돈을 벌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그 이유를 물으면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함이라고 답한다.

 나도 마찬가지다.

 시간을 쪼개 쓰기 위해 잠을 줄이고 과속을 한다. 남들을 혹은 남들보다 기다려야 하는 상황을 초조해하고 분노한다. 일처리가 늦거나 서툰 사람을 보면 답답해진다.


 다시 한번, 나의 삶의 질은 좋은 걸까. 돈만 잘 벌면 다 괜찮은 걸까.


 돈은 밥과 같은 게 아닐까. 살기 위해 꼭 먹어야 하지만, 스트레스를 받으면서까지 밥을 먹는 게 과연 정상일까.


 돈을 벌지 않겠다는 것도 아니고 많은 돈을 벌기 싫다는 것도 아니다. 물론 사회적으로 성공을 거두고 싶지 않은 것도 아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반드시 스트레스를 겪어야 한다면, 심지어 불행하거나 타인에게 피해를 주기까지 한다면 반드시 그럴 필요가 있을까.


 끈질기게 무언가를 찾고 얻으려고 한 여행이었다. 모든 순간에 의미를 부여하려 했고 필요성이라는 프레임을 씌우려 했다.

 그 결과, 나는 오히려 비우고 버려야 할 필요성을 느끼게 된 것 같다. 정말 중요한 게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할 수 있는 여유를 가지게 된 것 같다.


 혈안이 되어 채움을 좇던 나는 비움을 얻었다.


 한국으로 돌아가면 예전부터 해 왔던 일을 하고, 예전부터 알던 사람들을 만나며 예전과 같은 시간을 보내게 될 것이다.

 하지만 나의 내면과 태도는 예전과 같지 않을 것이며, 서서히 겉으로 드러나게 될 것이다.


 괜찮은 방향으로 내 삶이 나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자, 이내 가벼운 긴장과 기분 좋은 떨림이 느껴진다. 바라고 기대했던 것과는 다르지만, 어쩌면 나는 누구보다 중요하고 명확한 걸 얻은 게 아닐까.
 

 얼른 한국으로 돌아가서 새로운 나의 삶을 실컷 맞이하고 싶다.






*세계여행 사진들은 여기​에서 확인하실 수 있어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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