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에 미친 여자와 결혼했다

다시 5) 한국인 기피증

by 정성훈


한국인은 왜 그토록 주변을 의식하는 걸까?

이에 대해 선천적인 기질부터 후천적인 환경의 영향까지 많은 복합적인 요소가 있겠지만, 여행을 다니면 다닐수록 사회가 그렇게 만들었다는 생각이 든다.


'빨리빨리'라는 한국 사회의 풍조는 편리하긴 하지만 우리의 DNA에 조바심을 새겼다. 어릴 때부터 '빨리빨리'를 종용하고 빠르지 않은 건 무능력한 걸로 치부되다 보니 조그마한 시행착오에도 손에 땀이 맺힌다. 생각해 보면 이것도 주변을 지나치게 의식한 결과이다. 조금 버벅거려도 조금 느려도 괜찮다. 아무도 안 잡아먹는다.


한국인으로서 그녀도 역시 주변을 의식한다. 아니 오히려 한국인의 절대적인 표본이자 완성형으로 볼 수 있다. 말레이시아의 숙소를 정할 때 한국인이 주로 거주하는 지역을 피하는 건 물론이고, 한국인의 리뷰나 블로그가 없는 식당이나 카페를 선호한다. 길거리를 걷다가도 동양인이 보이면 자신도 모르게 흠칫하게 되고, 식당이나 카페에서는 자연스레 목소리를 낮추거나 말을 멈추게 된다.


괜히 우리의 모습을 보고 흠잡을까 봐 신경 쓰이기도 하고, 우리가 하는 말을 들을까 봐 조심하게 된다고 한다. 나쁜 말을 한 것도 아니고 죄지은 것도 아닌데 이상하게 그렇게 된다.


10여 년 전 '비정상 회담'이라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한국에 거주하는 한국말에 능통한 세계 각국의 외국인 패널들이 출연하여 외국인의 시선으로 보는 한국에 대해 이런저런 토론을 하는 예능 프로그램이었다. 그 후로 유사한 플랫폼의 방송들이 우후죽순 생겨났고 최근에는 유튜브에서도 그런 외국인 유튜버들이 인기를 끌기도 했다.


평소 관심이 많던 주제라 눈에 보일 때마다 쉬이 넘기지 못하고 끝까지 다 보곤 했는데, 그때마다 항상 반복적으로 나오는 이야기가 바로 주변 의식에 대한 것들이었다.


한국인의 특징을 물어보는 인터뷰에서 '래시가드'라는 단어가 등장했다. 조금 과장하여 전 세계의 수영장, 해변에서 래시가드를 입고 있으면 무조건 한국인이라고 했다. 물에서 입는 옷의 한 종류로, 보통 운동할 때 찰과상이나 햇볕으로 인한 화상을 막기 위해 입는 옷이 래시가드인데 물론 한국인들 중 그런 이유로 래시가드를 입는 경우는 많지 않을 것이다.


나 또한 마찬가지인데, 한국에서는 꿈도 꿀 수 없고 동남아시아의 유명한 휴양지에서도 상의를 탈의한 채 물놀이를 즐길 용기는 없다. 이유는 당연히 내세울만한 몸매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가 머물고 있는 이곳, 말레이시아의 레지던스 수영장에서는 상의 탈의가 쉽다. 나의 몸매는 딱히 달라진 게 없지만 훌렁훌렁 잘도 벗는다. 결정적인 환경이 바뀌었기 때문인데 예상했겠지만 한국인이 없기 때문이다.


서두가 잘못되었을지도 모르겠다. 한국인은 주변을 의식한다기보다는 주변의 한국인을 의식한다.






그런데 주변을 의식하는 게 꼭 나쁜건가.

이미 너무나 잘 알려진 이야기처럼 한국만큼 절도나 점유이탈물 횡령으로부터 안전한 곳도 드물다. 식당, 카페 등에서 테이블 위에 랩탑이나 스마트폰 등을 두고 마음 편히 화장실을 다녀올 수 있는 나라가 세계에 몇이나 있겠는가.

CCTV와 같은 도시 환경의 발달로 훔쳐봤자 금방 잡힌다는 압박감도 있겠지만, 어렸을 때부터 '남의 물건을 손대는 건 나쁜 거다.' , '굳이 이런 짓까지 하면서 부끄럽게 살고 싶나?' 하는 암묵적인 사회 분위기도 큰 몫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주변 국가에 대한 한국 사람들의 인식에서도 비슷한 면을 찾아볼 수 있다. 정치적이나 역사적인 사실과 의견은 배제합니다. 한국인들은 대체로 일본인의 국민성을 높게 사고 찬양한다. 반면, 중국인의 국민성은 폄하하고 경멸하기까지 한다. 그만큼 한국인은 주변에 피해를 주는 걸 싫어하고, 그런 면을 잘 지키며 살고 있는 조용하고 깨끗한 일본인의 국민성을 높이 사고 배우려고 한다.


말레이시아에 온 지도 어느덧 3개월 차, 어린이날과 석가탄신일이 겹쳐 연휴가 생긴 덕에 우리는 태국의 꼬리뻬라는 곳으로 휴가를 떠났다. Koh Lipe. 태국어로 Koh가 섬이라는 뜻이라서 정확히는 리뻬섬인데, 푸껫이나 파타야만큼 발달된 관광지가 아니기도 하고 섬에 들어가는 절차도 만만치 않아서 한국인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섬이다.


분명 한국인이 드문 곳이라서 한국인을 피해서 이곳으로 정한 것도 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숙소를 예약할 때부터 한국인의 도움을 받았다. 한국인이 묵었던 숙소, 한국인의 리뷰가 괜찮은 숙소여야 안심이 되었다. 식당이나 카페를 알아볼 때도 마찬가지였는데, 막상 한국인이 드문 곳이라고 하니 한국인의 블로그와 리뷰가 절실했다.


섬에 입도할 때, 서양인들은 물론이고 말레이시아인과 중국인, 일본인까지 보였지만 한국인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입도 절차가 끝난 후, 여권을 돌려줄 때 한국인이 딱 한 분 계신 걸 알게 되었는데 그때부터 은근히 의식하기 시작했다. 작은 섬이다 보니 거리에서도 해변에서도 두어 번 마주쳤는데 서로가 의식한 듯 서로가 못 본 듯 그렇게 지나쳤다.


그러다 마지막 날, 해변에서 지는 해를 보며 감상에 빠져 있는데 그 한국인 분이 보였다. 갑자기 우리에게 다가와 사진을 찍어줄 수 있냐며 말을 걸어왔는데 뭔가 마음이 사르르 풀리면서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이것도 인연인데 식사나 함께 할까요.’ 하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와 내뱉을 뻔했다.


하지만 역시나 그러지 않았다. 그분은 원하지 않을 수도, 불편할 수도 있는데 괜히 폐를 끼치는 게 아닌가 하는 마음 때문이었다. 아마 요청했다면 그분은 응했을 거라고 생각하고, 반대로 그분이 우리에게 요청해 왔다면 우리도 흔쾌히 응했을 것이다.


외국인들에게 한국인의 특징을 물어보는 인터뷰를 보면 끝맺는 말은 대부분 '착하고 배려심이 있다.' , '무표정해 보이지만 말을 걸면 친절하다.'라는 것이다. 주변을 의식한다는 것은 그만큼 타인의 입장을 고려한다는 것 같다. 도움을 요청하는 타인에 대해 무시하는 한국인은 거의 없을 거라는 자부심이 있다.


한국인의 이런 소극적인 친절함이 적어도 나는 좋다. 지나치게 남을 의식하며 사는 모습이 때로는 안타깝게 보일 수 있겠지만, 적어도 나는 그런 새침데기 같은 모습이 좋다. 나 한 몸 불편할지언정 타인을 불편하게 하지 않으려는 그 답답함이 오히려 나를 안심시킨다.


나는 한국인이 좋다. 그래서 오늘도 한국인을 기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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