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 때 언어에 관심이 많아 외국 교환학생들과 교류할 수 있는 동아리에 들어간 적이 있다. 그때 동아리 면접에서 이런 질문을 받았다. 왜 이 동아리에 들어왔나요. 새내기의 포부였을까, 당당하게 이렇게 말했다. “영어, 중국어, 프랑스어. 이렇게 3개 국어를 하고 싶어서요.” 대답을 들은 동아리장은 당황하며 약간의 실소를 보였다. “하나라도 잘해야 하는 거 아녜요?” 그 말을 듣는 순간 얼굴이 확 붉어지면서 급격하게 기가 죽었다. 동아리방을 나온 뒤로 그 말이 계속 머릿속에 맴돌았고 계속 생각하다 보니 화가 났다. 왜 못할 거라고 생각하는 거지. 내가 사는 동안 언젠가 3개 국어를 할 수도 있는 거 아닌가. 두고 봐라, 내가 3개 국어 해내고 만다. 이런 다짐을 했다.
수준급 실력은 아니지만 영어로 기본적인 의사소통은 할 수 있었고, 1년간의 대만 교환학생 생활 후 중국어도 기본적인 의사소통은 할 수 있는 수준이 되었다. 졸업 후 취업 준비를 하면서 외국어 공부에 완전 손을 놓았다가 회사 생활에 어느 정도 적응을 한 뒤 다시 외국어 공부를 조금씩 했다. 지속적으로 공부를 하지 않아 부끄러운 실력이지만 어쨌든 2개 국어는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수준급 외국어 실력을 갖추고 싶어 욕심 가득한 마음으로 공부를 하니 금방 흥미가 떨어졌다. 외국에 나가 살 것도 아니고 업무적으로도 꼭 필요한 것이 아닌데 그렇게까지 수준을 높일 필요가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행 가서 기본적인 의사소통은 가능한 정도니까 영어와 중국어는 이쯤 해두고 새로운 언어를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학교 때부터 배워보고 싶었던 프랑스어를 배워볼까 싶었다. 프랑스어를 배워보기 위해 방법을 알아보던 중 프랑스어가 아닌 스페인어에 관심이 가기 시작했다.
주변 지인 중 스페인어를 배우고 프랑스어를 배우니 조금 더 수월했다는 말에 솔깃하기도 했고 스페인어를 쓰는 인구가 프랑스어를 쓰는 인구보다 많기에 뭐가 되었든 사람들이 많이 쓰는 걸 하면 좋다는 생각을 하기에 스페인어를 배우기로 결정했다. 회사에서 제공해주는 학습 프로그램에 스페인어 왕초보 수업이 있어 딱 책 값만 내고 수업을 들었다. 유럽권 언어들은 성별에 따라 쓰이는 말들이 많아 조금은 어렵다는 걸 알고 시작했지만 정말 생각보다 구분해야 할 것들이 너무 많아 당황스러웠다. 그나마 발음이 어렵지 않아 재밌게 공부했다.
영어와 중국어를 공부할 때처럼 수준급 실력이 돼야 한다는 생각보다 수업 강의 교재 1권만 제대로 끝내자라는 목표를 가지고 공부를 하니 부담스럽지 않았고 새로운 언어를 알아간다는 재미를 느끼면서 공부를 할 수 있었다. 책을 덮는 순간부터 지금까지 다시 스페인어를 공부하지는 않아 이미 다 까먹어버렸다. 그래도 3개 국어를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엿본 기회였다. 외국어를 공부할 큰 동기부여가 없어 지금은 그저 외국 드라마를 보는 것만으로 부족한 실력의 끈을 잡고 있지만 언제가 다시 외국어 공부를 하고 싶을 때가 되면 스페인어 책도 다시 들춰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