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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개월 아기 수면 교육 1일차

2022년 10월 초의 하루

육아휴직을 결심했을 때 우리 아이는 22개월이었고, 이사 온 아파트에서 쫓기듯 제주도로 수면 교육을 떠난 것은 지난 10월, 그러니까 아이가 26개월이 되었을 때였다.



육아휴직을 결심한 계기: 첫 번째 글

아이와 함께 제주도로 수면 교육을 온 일: 세 번째 글


비행기 안에서 한 시간 동안 내내 울어재낀 아이는 아이대로 지쳤고, 나는 나대로 정말 혼이 빠질 대로 빠진 채 동생의 집이 있는 남원에 도착했다. 이미 사정을 들어서 알고 있던 동생은 나에게 2층 침실을 내주었다. 2층이라고는 하지만 단층집 옥상에 침실만 덩그러니 올라간 구조여서 아이의 울음에 방해를 받을 사람이 일단 없었다. 또 소리는 우선 위로 퍼져 나가므로 1층에서 우리 부자(父子) 덕에 한 방에서 불편을 감수하게 될 동생네 네 식구에게 조금은 덜 미안해하라는 배려였을 것이다.


두 명의 사촌 누나들과 신나게 놀아재껴서 어느 정도 기분이 회복되신 우리 아드님을 모시고 잠자리에 들 시간이 다가왔다. 몇 가지 환경 정비와 나의 행동 수칙을 정리하고 복기했다.


환경 정비

시야에 방해가 되지 않으나, 완벽하게 어둡지 않기 위한 적절한 수면등

아기가 차분해질 수 있는 수면유도 음악과 스피커

아기가 울 때 입에 넣어 줄 수 있는 보리차가 담긴 빨대컵


행동 수칙

아기가 울어도 안고 일어나 달래서 재우지 않는다.

우는 것이 심해질 때는 누워서 안아주거나 앉아서 안아준다.

안아주지 않는 이유와 상황을 아이에게 설명한다.

잠들 때까지 안아주지 않고 누워서 잠들 수 있도록 유도한다.


9시 30분.

유튜브에서 11시간짜리 수면유도 음악을 재생하기 시작했다. 수면 유도 음악이 대부분 피아노 연주곡인데 가급적 높은음 연주가 없는 음악을 골랐다. 더 놀고 싶어 하는 아이에게 누나들과 이제는 그만 놀고 잠잘 시간이라는 설명을 한 뒤 손을 흔들어 안녕을 해줬다. (아이의 사촌 누나들에게 미리 부탁을 해두었다.) 잔잔한 음악이 흐르는 방에 아이는 당황한 듯했지만 이내 침대에 올랐다. 아이가 침대에 올라가자 조명을 끄고 "아들아, 오늘은 아빠가 아들이 울어도 안아주지 않을 거야. 아빠가 아들을 미워하는 것이 아니라 아들의 수면 습관을 바꾸려고 하는 거니 이해해줘."라고 말을 건넸다. 아직을 말을 하지 못하는 우리 아이지만 아빠의 말은 다 알아들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으므로.


10시 50분.

한 시간 20분이 지나서야 아이가 잠에 들었다. 한 시간 가까이 침대에서 뒹굴 거리고 나서야 긴 이동에 피곤했는지 잠들어야겠다고 스스로 결정한 것 같았다. 잠들겠다고 애쓰는 모습이 역력했다. 그렇게 하기를 30분 정도 지나자 아이가 스스륵 잠이 들었다. 아이를 등에 업지 않고 잠에 들게 한 것이 몇 개월 만인지!!


새벽 1시.

드디어 고통의 시간이 찾아왔다. 잠에서 깬 아이가 울기 시작했고 여느 때처럼 베개를 품에 안고 내게 안아달라고 걸어왔다. "아들아, 힘들지? 아빠가 안아줄게. 그리고 조금 달래 지면 바로 누워서 자자, 응?"이라고 말을 건네고 앉아서 품에 아들을 껴안아 주고 조금 달랜 후 눕혔다. 여느 때라면 자기를 안고 벌떡 일어나서 방안을 돌아다녀야 할 아빠가 앉아서 안아만 주고 도로 눕히려 하니 당황했나 보다. 아기의 울음이 더 커졌다. 그리고 마치 오뚝이처럼 바로 일어나 온몸으로 자기를 안고 돌아다닐 것을 요구했다.

"미안해 아들아. 오늘 안아주면 바로 잘 수는 있겠지만 그러면 엄마 아빠는 물론 아들도 계속 힘들 거야. 아들도 혼자서 누워서 잠들 수 있어. 해보자."


새벽 2시 15분.

울음은 그치지 않았고 울음소리는 비명이 되며 한 시간이 흘렀다. 난 아들에게 말을 건네고 안고 눕히고를 반복했다. 한 시간이 지나자 드디어 아들이 포기한 것 같았다. 아빠에게 느낀 배신감인지 스스로를 달래는 헐떡이는 숨인지 모를 호흡을 삼키며 아들이 베개를 안고 바닥에 누워서 잠을 청했다. 그리고 15분이나 지났을까. 아이가 드디어 잠에 들었고 난 울고 있었다.


새벽 4시.

아이가 10분마다 깨기 시작했다. 여느 때처럼 안아달라고 다가왔지만 이번에는 누워서 배 위에 얹어서 안아주고 다시 눕혔다. 아이에게 말을 건네는 것은 잊지 않았다. 5시가 다 되어가자 아이가 아빠에게 오지 않고 스스로 누워서 잠들었다.


아침 6시 반.

아이가 다시 깨기 시작했다. 똑같이 누워서 안아주고 달랜다음 눕혀서 재웠다. 7시경 잠이 들어서 8시 반까지 계속 잤다.


내가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아이는 아직 자고 있었다. 지난밤에 마음먹은 대로 아이를 안고 돌아다니거나 업거나 하지는 않았다. 마음먹은 대로 성공했다는 성취감은 잠시. 곧 아빠에게 아이가 배신감을 느꼈으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이 찾아왔다. 밤새 안아달라는 아이의 요구를 한 번도 들어주지 않은 아빠를 아이는 어떻게 받아들일까. 혹 아이가 정신적으로 충격을 받았으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이 나를 지배하기 시작했다. 죄책감이 나를 지배해 가슴이 답답해질 무렵 아들이 눈을 떴다.


그리고 "아뽜!"라는 외침과 함께 나를 보고 웃어 주었다. 그렇게 첫 날이 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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