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 한곡이 요즘 말로 '버튼'처럼 오래된 기억을 소환하는 일이 있습니다. 제게는 조용필의 [고추잠자리]와 훌리오 이글레시아스의 [Hey]가 그런 곡들입니다. 기억을 떠올리는 것으로는 부족하군요. 레드썬! 하듯이 백일몽에 빠져들기도 합니다. 옆사람이 툭툭 쳐서 현실로 돌아오지요.
김창완의 [청춘]을 들었습니다. 갑자기 목이 탁 막혔어요. 아주 오랜만에 들은 노래도 아닌데 왜 그랬는지 모르겠습니다. 김필의 드라마 삽입곡으로 들었을 때는 무심했었죠. [청춘]은 부르는지 읊는지 모를 김창완 원곡으로 들어야 합니다. 사실 그 드라마 삽입곡으로는 박보람 양이 부른 [혜화동]이 최고였습니다. 그 노래도 어느 정도 기억버튼이었구요.
[청춘] 버튼으로 불러온 기억은 연상퀴즈 하듯 또 하나의 노래를 끄집어냅니다. 백영규의 [성아의 이야기]입니다. 기억하시는 분 많을 것입니다. 트로트의 자기장을 벗어나지 못한 곡조에 가사도 통속적이기 그지없습니다.
갈색으로 물들인 높은 하늘을 가득 담고 싶다 했었지
진실만이 꺼져가는 하얀 촛불을 밝혀준다 믿고 있었지
그러다가 갑자기 클라이맥스에서 이런 가사가 나옵니다.
오 성이여, 오 계절이여
상처 없는 영혼이 어디 있으랴
가사 중 이 부분만 랭보의 시(詩) 구절이란 건 나중에 알게 됐구요, 그 때 우리는 이 가사에 완전히 사로잡혔습니다. 이해하시겠지만 십대 후반이잖아요. 그리고, 김창완의 [청춘]이 소환하고 [성아의 이야기]가 자동 연상될만한 기억, 크든 작든 상처 받은 아이들이 노래를 불렀습니다. 기합과 구타가 일상인 무척 거친 학교였고 아이들은 가난 아니면 가정문제 하나씩은 갖고 있었습니다.
완전히 다른 의미로 또 하나의 '청춘'이 떠오릅니다. 고등학교 국어책에 나온 민태원이란 분의 수필 [청춘예찬]입니다.
청춘! 이는 듣기만 하여도 가슴이 설레는 말이다. 청춘! 너의 두 손을 가슴에 대고, 물방아 같은 심장의 고동을 들어 보라. 청춘의 피는 끓는다. 끓는 피에 뛰노는 심장은 거선(巨船)의 기관(汽罐)같이 힘있다. 이것이다. 인류의 역사를 꾸며 내려온 동력은 바로 이것이다.
첫 문장이 이랬죠. 국어 선생님은 이것이 얼마나 명문장인지 침을 튀기셨지만 학생들은 어이가 없었을 것입니다. 성공한 어른들의 청춘론 중에 원조격이라 할까요?
청춘(靑春)이란 단어가 건조하게 젊음 또는 젊은 날의 어느 시기를 뜻하지는 않을 겁니다. '아름다움'의 의미가 내포되어 있어서 풋풋한 사랑도 하고 친구들과 호연지기도 기르는 젊음의 행동반경을 말하는 것이겠지요. 그래서 뽕끼 가득한 나훈아의 [청춘을 돌려다오]란 노래도 있고 중년 카페 타이틀이 '내청춘 돌리도'이기도 합니다. 젊음을 즐기지 못한 한이 맺혔다면 "돌리도~"라고 외칠 수도 있습니다. 중년 카페가 청춘을 돌려 받으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잘은 모르겠습니다만.
그렇다면 저에게 청춘이란 게 있었을까요? 생각해 보면 십대 후반에서 이십대 중반까지의 생은 대체로 아름다웠습니다. 연애는 못했지만 착한 친구들 만나 술 많이 마셨고 중간에 돈 번 시기도 있었습니다. 고졸로서 갈 수 있는 회사로는 최고의 직장이었어요.
공업고등학교를 가겠다고 했을 때 중3 담임선생님 표정과 대학 안가고 취업하겠다고 했을 때 고3 선생님 표정이 똑같았습니다. 공부를 여간 잘하지 않았거든요. 나중에, 대학 4학년 말에 내 밑으로 오라고 하신 교수님도 비슷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청춘을 의식하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닥치는 매번의 상황을 그때 그때 헤어 나가다 보니 세월이 저만치 흘러 있었습니다. 김창완의 [청춘]을 청승맞게 부를 때는 몰랐다가 나중에 더 청승맞게 부르게 되었고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는 나이 마흔이 되어서야 와닿았지요.
김창완 씨도 청춘의 한가운데서 노래를 만든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언젠가 가겠지 푸르른 내 청춘♪"이라 하면서도
차라리 보내야지 돌아 서야지
그렇게 세월은 가는거야
이것은 지나간 청춘에 대한 회한이 아닐까요?
청춘에 회한이 있는 것은 그 시기가 미숙(未熟)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미숙해서 무엇을 할지 잘 모릅니다. 미숙해서 쉽게 상처받고 혹은 부딪혀 깨집니다. 미숙해서 사랑도 떠나 보냅니다. 미숙해서 뭐든 한번만에 끝나는 게 없습니다. 그렇지만, 또한 미숙해서, 하늘이 조그만 선물을 내려 주었을 때 이것저것 재지 않고 온전히 기쁨으로 받아들이기도 합니다.
돌이켜 보면, 청춘을 돌려 받은들 상황이 같다면 똑같이 살게 될겁니다. 돌이켜 보니 그닥 힘들지도 않았고 충분히 아름답기까지 합니다. 가짜 기억일까요? 기억과 상상은 같은 메카니즘이라고 뇌과학자들은 말합니다. 개별 기억과 전체적인 기억의 색깔이 다르면 어느쪽이 가짜일지. 실은 아름다운게 아니었다면 청춘 재수를 할밖에요. 지금, 여기서. 좀 더 열심히 살면서, 좀 더 낭만을 찾아.
이 땅의 중년 청춘들에게 박수를 보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