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전을 찍어내기 위해서는 원판이 준비되어야 한다. 현재 전세계 통화용 주화는 거의 전부가 구리 또는 구리합금(銅合金)이고 알루미늄이 보조적으로 쓰이고 있다. 동합금은 구리(Cu)에 니켈(Ni)을 첨가한 백동(白銅; cupronickel), 아연(Zn)을 섞은 황동(黃銅; brass), 주석(Sn)이 들어간 청동(靑銅; bronze) 등으로 다양하다. 크게 봐서 그렇다는 것이고, 백동에 아연을 더 첨가하기도 하고 망간(Mn), 알루미늄, 기타 미량원소가 더 들어갈 수도 있다. 주화의 화학성분은 나라별로 액면가별로 엄밀하게 정하고 철저히 관리하지만 항상 똑같지는 않고 필요에 따라 변화를 주기도 한다. 물론 변화가 잦으면 문제가 생기므로 한번 바꾸면 장기간 유지한다.
백동으로 만들어져 nickel이라는 별칭으로 부르는 미국 5센트 주화는 구리 75%, 니켈 25%로 규정되어 있는데 2차대전 중이던 1942년부터 1945년까지 3년간 니켈이 하나도 들어가지 않았을 때가 있었다. 니켈을 군수용으로 대거 돌렸기 때문이다. 니켈이라는 금속은 철강에 첨가하면 부식에 아주 강한 합금이 된다. 대표적으로 철-니켈-크롬 합금인 스테인리스(stainless) 강이 있다. 각종 병기와 군수물자 제작에 합금용 니켈이 부족해지고 총알을 만들 구리 수요도 급증하자 미국 조폐국은 동전의 구리 함량을 줄이는 한편 니켈 대신 은(silver)을 사용하기로 결정한다. 실험 결과 대체금속으로 똑같은 크기의 동전을 만들었을 때 무게와 전기전도도가 기존 동전과 가장 유사하게 되는 조성은 구리 56%, 은 35%, 망간 9%였다. 이 시기에 만들어진 니켈 없는 nickel을 War Nickel이라 하며 당연히 모두 수집가들 수중에 있다. 현재 시세로 적게는 한개 1달러부터 100달러 넘는 것까지 거래되고 있다. 1943년에 미국 4개의 조폐공장 중 필라델피아 조폐창에서 찍은 버전은 한개에 300달러를 호가한다.
한국에서 현재 발행되는 동전의 화학성분과 중량은
500원 - Cu 75%, Ni 25%, 7.70g
100원 - Cu 75%, Ni 25%, 5.42g
50원 - Cu 70%, Zn 18%, Ni 12%, 4.16g
10원 - Cu 48%, Al 52%, 1.22g
500원짜리와 100원짜리는 조성은 같고 중량도 1.5배 차이에 불과하다. 100원짜리 생산은 손해라는 걸 알 수 있다.
도안을 찍기 전까지의 동전 소재를 소전(素錢; coin blank, 때로 planchet)이라 한다. 원판에서 소전을 따내는 작업은 이제 여러분도 알게 된 블랭킹(blanking)이다. 한번에 수백만개씩 찍어내야 하는 소전을 원판 한장씩 프레스에 올려서 따내면 답이 없고 코일(coil)로 둘둘 말려진 동 스트립(copper strip)을 릴에 걸고 풀어내며 연속으로 블랭킹하는데, 원형(圓形) 소전이라면 분당 1만개 이상 쏟아져 나온다.
릴에서 풀어낸 스트립은 평탄기(leveler)를 거쳐 프레스로 이송된다. 사진은 실제와 유사한 다른 용도 설비다.
이렇게 프레스에서 블랭킹으로 따낸 소전은 테두리 가공으로 간다. 그러나 그 전에 복합 소재 문제를 짚고 넘어가자. 한국의 500원, 100원, 50원 동전은 단일 소재지만두가지 이상의 금속이 조합된 동전도 세계적으로 많이 있다. 우리 나라의 경우도 10원짜리의 구리와 알루미늄은 합금이 아니라 두 금속이 고유의 성질을 갖고 한 동전을 구성한다. 이종(異種) 합금의 복합, 예를 들어 백동+황동, 백동+순동, 순동+알루미늄 같은 조합은바이메탈(bi-metalic)과 클래딩(cladding), 두가지 방법이 있다. 다음 그림에서 직관할 수 있듯이 바이메탈은 두가지 금속이 육안으로 확연히 보이고, 클래딩은 한 금속 위에 다른 금속을 한겹 입힌 것이라안에 들어간게 어떤 재질인지 눈으로 봐서는 알 수 없다. 예를 들어 유로화 동전(€1, €2), 파운드화(£1, £2)는 황동 코어와 백동 테두리를 갖는 바이메탈 방식이고 한국의 10원짜리는 알루미늄 코어에 순동을 덧씌운 클래딩, 미국 다임(10¢), 쿼터(25¢) 등은 순동 코어 위에 백동을 입힌 clad coin이다.
바이메탈 소전은 코어와 링을 각각 블랭킹한 후 링에 코어를 조립하고 프레스로 압착하여 만든다. 바깥 소재인 링은 블랭킹과 구멍 가공(piercing)을 동시에 할 수 있는 복합 금형(combination dies)으로 한번에 찍어낸다. 안쪽 코어는 블랭킹한 뒤 링과 더 단단히 결합하도록 측면에 홈을 가공하는데, 물론 소성가공이다. 그 방법은 조금 있다 유사한 작업이 등장하므로 그 때 말하는게 좋겠다.
바이메탈 코어 소전 안쪽 소재 측면에 홈을 가공한다.
링과 코어를 조립하고 프레스로 강하게 압착하면 코어 소재의 지름은 팽창하려 하고 링 소재의 안지름은 수축하려 하여 두 소재가 단단히 결합한다. 이것만으로도 충분하지만 여기에 코어 측면 홈의 마찰력까지 더해지면 용접이나 화학 결합이 아니더라도 절대 빠지지 않는 접합이 된다. 해 보지는 않았지만 링을 단단히 받치고 코어 지름보다 작은 펀치를 오함마로 치면 링과 코어가 분리될 수도 있긴 할 것이다. 그러나 그런 수고를 들여 쓸데없는 일을 할만큼 한가한 사람은 없으리라.
클래드 소전은 원판 자체가 클래드 메탈(clad sheet metal)이다. 클래딩이란 두가지 이상의 금속 소재의 면(面)을 물리적으로 접합하는 공법을 말한다. 금속을 아무런 매개물 없이 분자 수준 결합이 일어날 정도로 강한 힘으로 압착하여 접합하는 것으로, 전기화학적 방법인 도금이나 용접에 의한 육성(肉盛; overlay)과는 구분된다. (도금도 용접 오버레이도 현장에서는 그냥 클래딩이라고 표현하는데 용어의 엄밀성을 별로 추구하지 않는 나는 상관 없다고 생각한다.) 클래딩 시트는 접합하고자 하는 판재 면을 깨끗히 세척하고 포개서 함께 압연하여 생산한다. 동전 소재 외에도 클래딩 금속은 의외로 많이 사용되는데, 가령 부식에 강하고 미관이 아름다운 재질과 제품 본연의 기능을 발휘할 재질을 클래딩하면 두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다. 열 전도성이 좋은 알루미늄 위아래로 스테인리스를 클래딩(STS-Al-STS)한 강판은 고급 주방용품 소재로 각광받고 있다. 나도 크지는 않으면서 묵직한 냄비 하나를 집어들었다가 가격에 놀라 내려놓은 경험이 있다. 동의 전도도과 스테인리스의 내부식성을 결합한 자동차 부품 및 열교환기 냉각튜브도 많이 개발되어 있고 동판의 미려한 외관과 스테인리스의 강도를 결합한 고급 건축자재 등, 클래딩 시트의 쓰임새는 날로 늘어나고 있다.
동-백동-동, 백동-동-백동, 동-알루미늄-동 같은 클래딩 시트를 블랭킹한 것이 클래드 코인의 소전이다.
건축 외장재로 사용되는 동-스테인리스 클래딩 시트(左)와 스테인리스-알루미늄-스테인리스 클래딩 시트로 제작한 주방용품(右)
소전의 테두리를 가공하기 전에 거쳐야 할 공정이 있다. 바로 열처리다. 이 때 하는 열처리는 영어로 어닐링(annealing), 일본어로는 한자로 소둔(燒鈍)이라 쓰고 '야끼나마시'로 읽으며 우리 말로는 '풀림'이다. 웬일인지 현장에서 풀림이란 용어를 쓰는 사람은 본 적이 없고 다들 어닐링 또는 소둔이라고 한다. 굳은 금속에 열을 가하여 풀어주는 열처리를 말하니, 우리 말 용어가 훨씬 직관적이긴 하다. 동합금 소전의 경우 750℃ 내외까지 가열하여 한시간쯤 유지하고 그대로 상온까지 서서히 냉각시키는데, 이 소둔 처리를 하면 연하고 가공하기 좋은 조직이 얻어진다.
금속에 변형을 가하면 조직이 딱딱하고 부러지기 쉽게(brittle) 변화한다. 우리는 펜치가 없을 때 철사를 손으로 끊는 방법을 알고 있다. 철사를 한 지점 집중해서 구부렸다 폈다 몇번 반복하면 톡 부러지게 된다. 이와 같은 현상이 가공 경화이며, 전편에서 설명했듯 블랭킹은 소재가 파단에 이르기까지 전단 소성변형을 일으키는 작업이므로 블랭킹한 소재의 측면은 가공경화로 인해 딱딱해져 있을 것이다. 가공 경화된 금속은 추가 가공도 어려울 뿐더러 다시 변형을 가하면 균열(crack)이 발생한다. 그래서 다음 공정에 앞서 가공으로 경화된 조직을 연화시켜 주어야 한다. 이에는 소둔 열처리가 사실상 유일한 방법이다. 앞서 바이메탈 소전의 코어는 측면에 홈을 가공한다고 했는데, 그러므로 이 경우는 코어만 소둔하고 홈을 가공하여 링과 조합 후 조합된 소전을 한번 더 소둔한다.
소둔 열처리는 밀폐된 열처리로(annealing furnace)에서 한다. 밀폐할 뿐만 아니라 진공, 질소 충진, 심지어 수소 충진 방법까지 동원하여 산소를 최대한 차단한다. 산소와 접촉하면 소전 표면이 변색되기 때문이다. 그래도 어느 정도의 변색은 피할 수 없기 때문에 소둔처리 후 황산이나 염산 용액으로 소전을 세척(pickling)하고 물로 헹군(rinsing and washing) 뒤 잘 건조시킨다.
이제 기다리던 테두리 가공으로 간다. 소전의 테두리 가공은 두가지가 있다. 첫째는 림을 성형하는 리밍(rimming)이다. 림은 동전 면 원둘레의, 동전 면보다 돌출한 모서리를 말한다. 동전을 평평한 바닥에 놓았을 때 동전 면은 림 때문에 바닥에 닿지 않는다. 그래서 동전 도안을 마모로부터 보호하고 동전의 내구성을 부여하기 위해 림을 가공하는 것이다. 리밍 공정을 업계에서는 업셋(upset)이라 하는데, 이 가공을 하는 기계가 업셋기(upset mill)이며, 아래 사진과 같이 회전하는 금형인 업셋 휠(upsetting wheel)과 슈(shoe)라고 부르는 바깥쪽 고정 다이로 구성된다. 업셋 휠과 슈 사이로 소전을 눕혀서 통과시키는 건데, 업셋 휠의 회전력으로 소전이 굴러간다. 업셋 휠과 슈 사이 간격은 소전 지름보다 점점 작아져, 180~270도의 원호인 경로를 통과하고 난 소전은 테두리가 압착되어 림이 성형된다.
소전은 회전하는 원형 업셋 휠과 고정 다이를 누워서 통과한다. 회전과 고정, 두개의 금형 사이에서 소전 림이 성형된다
업셋기를 소전이 통과하는 속도는 눈에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빠르고 업셋기 출구에서 날아가는 소전은 총알을 방불케 한다. 이 빠른 속도를 촬영할 방법은 없고, 위 사진은 미국 조폐국(United States Mint) 홈페이지에 있는 동영상 컴퓨터 그래픽의 정지화면이다.
앞서 바이메탈 소전의 코어 측면에 홈을 만드는 작업도금형만 달리하는 업셋기를 응용한 것이다.
전조(轉造; form rolling)라는 소성가공법을 소개하지 않으면 안된다. 전조는 글자 그대로 소재를 금형 사이로 '굴려서' 성형하는 가공법이다. 대표적으로, 시중에서 구할 수 있는 볼트의 나사를 거의 다 전조로 성형한다. 업세팅 작업이 전조이며 다음에 나올 소전의 두번째 테두리 가공, 톱니 성형역시 전조법이다.
전형적인 전조 가공. 두개의 나사형 금형 사이로 강봉을 통과시켜 나사 가공을 하고 있다.
소전 테두리에 톱니를 내는 작업을 엣징(edging)이라 한다. 본래 동전에 엣징을 하게 된 이유는 동전을 깎아내는 행위를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19세기까지도 유럽 각국 정부에서는 주화 액면가가 주화의 재료 가치와 같도록 관리했는데 그러다보니 주화, 특히 은화의 테두리에서 조금씩 소재 금속을 깎거나 갈아내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티끌모아 태산이라고 아주 조금씩 깎아내도 은화 수백개에서 나온 부스러기를 모아 녹이면 은화 한개 가치의 은이 생겨나기도 했다. 당국의 단속에도 불구하고 액면가가 금속의 가치보다 낮을 시기에는 사람들이 주화를 깎아낼 유혹을 더 많이 느꼈다. 누군가 깎아내어 모양이 변형된 주화라도 한번 더 깎았다. 동전 크기는 야금야금 줄어들지만 테두리 깎는 본인 눈에는 깎기 전이나 조금 깎아낸 뒤나 별 차이가 없는 법이다. 마치 주류 회사에서 야금야금 영점 몇도씩 소주 도수를 낮출 때마다 그런가보다 하고 서서히 도수에 적응하다가 여러 해가 지난 뒤에 문득 형편없이 낮아진 걸 새삼 깨닫는 것과 유사하다.
원래의 은화(左) 테두리를 조금씩 깎아내는 행위가 쌓이고 쌓이면 원형을 알아보기 힘든 저질 화폐가 된다.
이렇게 주화 테두리를 깎아내는 도둑질을 원천적으로 방지하기 위해 주화 테두리에 톱니 무늬를 넣는아이디어를 낸 인물은 영국의 위대한 물리학자 아이작 뉴튼(1643~1727), 만유인력의 법칙 그 뉴튼이다. 이분은 평생 독신으로 살며 물욕도 별로 없었는데 학자로서 이룰것 다 이룬 50대의 뉴튼에게 영국 정부는 조폐국 감사 자리를 제안했다. 대(大)과학자에게 바치는 일종의 예우로 연봉은 많고 할일은 없는 자리를 준 것이다. 그러나 뜻밖에 공무원이 체질에 맞았던지 뉴튼은 조폐국 업무를 진심으로 대했다. 당시 유명한 위조화폐범을 검거하여 교수대로 보내기도 하고 영국의 통화정책 전반에 대해 깊은 연구와 정책 입안도 하다가 마침내 대영제국 조폐국장으로 정식 임명되기까지 한다. 힘과 운동의 법칙을 완성한 과학자이자 수학자지만 사실 뉴튼 경의 일생을 살펴보면 과학은 여가 삼아 하신게 아닌가 하는 의심도 든다. 아주 긴 세월 성서를 연구한 신학자였고 조폐국 관리였으며 연금술에 정신이 팔렸고 말년에는 주식 투자로 전재산을 날리기도 했다.
다양한 동전의 엣지(edge)
한국의 동전 50원짜리 옆면에는 빙 둘러 109개의 톱니가 있다. 100원짜리는 110개, 500원 동전은 톱니가 120개다. 한국 동전의 엣징 가공은 쉬운 편에 속한다. 세계 각국 동전을 보면 톱니가 테두리 일부에만 일정 간격을 두고 나 있는 동전도 있고 유로 20센트 동전처럼 연속된 톱니가 아닌 몇개의 홈이 파여 있기도 하다. 2유로 동전은 톱니와 함께 문자가 각인되어 있다. 톱니 대신 돌기(dots)로 장식된 동전도 있다. 뭐니뭐니 해도 가장 새기기 힘든 건 측면에 깊은 홈을 파고 홈 안쪽에 문양을 넣는 시큐리티 엣지(security edge)다. 홈 내부가 홈의 입구보다 더 넓어서 도대체 금형이 어떻게 들어갔다 빠졌는지 이해가 안되는 동전도 본 적 있다. 이 모든 측면 가공을 업셋기와 원리가 비슷한 엣징기(edging machine)로 고속 가공한다.
Edging machine
여기까지의 공정이 소전공장의 작업범위고, 소전 앞뒷면에 도안을 압인(striking)하는 핵심공정은 조폐청 조폐공장의 일이다. 일반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 하나는 한국이 전세계 동전의 소전 50~60%를 생산한다는 것이다. 소전 생산이 힘든 저개발국은 물론이고 유로화 동전 소전도 유로존 각 조폐국에 납품하고 있다. 소재인 동합금판이 세계 최고 품질인데다 오랜 세월 소전을 찍어내며 쌓은 생산 노하우가 높은 생산성과 낮은 불량률을 가능하게 한다. 사실을 말하자면 그곳은 내가 직장생활 초년병 시절에 다닌 기업이기도 하다. 나는 인가된 직원이 아니어서 소전 쪽은 먼 발치에서 보고 토막난 토픽이나 들었을 뿐이지만 당시에도 세계 소전 시장점유율 1위라는 이야기나 시큐리티 엣지 금형을 어렵게 개발한 스토리를 들으며 지냈다. 지금도 그런지 모르겠지만 소전 표면 결함 검사가 육안 전수검사였는데, 고무 벨트 컨베이어 위에 한겹으로 펼쳐져 이송되는 소전을 삼파장 램프 불빛 아래에서 여공들이 눈으로 보고 불량을 골라냈다. 컨베이어 벨트가 S자로 꺾이면서 소전이 한번 뒤집어져 반대면도 검사하게 되는데, 그 컨베이어 빠르기가 장난이 아니었다. 저것을 어떻게 본단 말인가 입이 딱 벌어질 정도의 속도였고 불량 골라내는 손 빠르기도 대단했다. 그 때의 기억이 이 글을 쓰게 한 것 같다.
조폐공장의 동전 압인 공정은 어느 나라 조폐창이나 알아도 그만인 내용 이상의자료는 구할 수 없다. 앞뒷면 금형 사이에 소전을 놓고 프레스로 앞뒤 동시에 찍어내는 건 분명한데,프레스의 제원이나 상세 압인법은 그림자에 싸여 있다. 화폐 보안이 그만큼 철저하다. 화폐 위조에 모든 나라가 알레르기에 가까운 반응을 보이는 건 신뢰에 기반한 국가경제의 근간이 흔들리기 때문이다. 동전은 위조도 어렵고 위조 비용에 비해 얻을 이익도 크지 않아 개인이나 범죄조직이 위조할 염려는 거의 없지만 국가안보로 개념을 확장하면 얘기가 달라진다. 위조화폐는 적국을 공략할 무기가 되는 것이고 동전이라고 신경 안쓸 수 없다. 야비하다고 말할 수도 있지만 전쟁은 본래 야비하다.2차 세계대전 때도 양측은 상대 국가에 가짜돈을 살포했다.
19세기 미국의 코인 압인기
동전은 소재 압연으로 시작하여 프레스로 하는 블랭킹 펀칭, 냉간단조, 엠보싱과 전조 가공법이 망라된 정밀 소성가공으로 제조된다. 동전 이야기를 시작할 때 이것이 소성가공의 진수(眞髓)라고 했는데, 각각의 공정마다 해당 공정의 현존 최고 기술이 집약된 결과가 당신 주머니에 짤랑거리는 동전인 것이다.
작은 동전으로 소성가공을 했으니 이번에는 중량물을 다루는 단조(forging)으로 넘어간다. 대장장이가 내리치는 망치를 기계로 대신한 단조 프레스를 먼저 살펴보도록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