ㄱ은 손가락을 물어뜯는 여자이다. 주의하시라. 손톱이 아니고 손가락이다. 손가락 중에서도 손톱 아래, 손톱과 살이 만나는 반달 모양의 부분. 너무 많이 물어뜯어 피가 날 때도 있었지만, 별로 아프지는 않았다. 기분이 나쁘거나 초초할 때는 특별히 손톱깍기로 손에 배긴 굳은 살을 뭉텅 잘라내서, 우물우물 아껴서 씹어먹곤 했다.
손에 붙어 있을 때는 분명히 촉촉했던 살이 떨어져 나오면 금방 마르는 것이 신기했다. 대개는 바싹 마르기 전에 씹었으나, 어쩔 땐 일부로 딱딱하게 될 때까지 내버려두어 조금 더 오래 씹을 때도 있었다. 오징어나 쥐포를 씹어먹는 것도 그다지 나쁘지는 않다. 그러나 인간의 살-자신의 살-을 조금씩 물어뜯어, 잘근잘근 씹는 게 그녀에게는 가장 좋았다. 어떤 동물의 살보다도, ㄱ은 자신의 살이 제일 좋았다. 물론 다른 인간의 살을 먹어본 적은 없다.
어느날 ㄱ은 자신처럼, 살을 말린 건포처럼 씹어먹는 취미가 있는 사람이 또 있을지 궁금해졌다. 마치 외롭고 고립된 흡혈귀가 이 정상적인 세계에서 그들처럼 피를 몰래 맛보며 살아가는 존재가 또 있는지 궁금해하는 것처럼. 그래서 그녀는 사람들의 손가락을 자세히 관찰하면서 다니기로 했다. 그러다 아예 손가락을 볼 수 있는 곳에 취직했다. 사람이 아주 많이 오고, 손가락을 볼 수 있는 곳. ㄱ은 대형마트의 계산원으로 취직했다. 돈 계산 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노력해서 조금씩 익숙해졌다.
그녀는 하루에 몇 십명 씩이나 되는 사람들의 물건값을 받았다. 그리고 유심히 돈을 내는 손을 관찰했다. 그러다보니 의외로 여러가지 일을 알 수 있었다. 실제로 손가락이 예쁜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네일 케어를 한 아가씨의 손은 아름다울 때도 있었지만 ㄱ이 보기엔 자연스러운 맛이 떨어졌다. 오통통한 어린이의 손이 제일 이뻤다. 손톱을 물어뜯은 손도 있었다.
하지만 그녀처럼 손가락를 많이 물어뜯어 굳은 살이 배기거나, 피딱지가 있는 사람을 찾기는 어려웠다. 그녀는 포기하지 않고 계속 사람들의 손을 관찰했다. 그리고 드디어 그를 만났다. 그는 혼자 사는 남자인 듯 라면 세트와 햇반과 김치를 샀다.
“125**원입니다.”
남자는 아무말 없이 지갑에서 돈을 꺼내서 ㄱ에게 주었다. ㄱ은 남자의 손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아, 놀랍게도 남자의 손가락에는 모두 상처 자국이 있었다. 피가 살짝 배여나온 곳도 있었고, 손톱 밑은 어찌나 많이 물어뜯었던지 빨간 속살이 나와 있었다. 마침내 만난 것이다. 그녀는 남자가 봉지에 라면을 넣고 출구 쪽으로 가는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러다 계산대를 뛰어넘어 그에게 달려갔다. 남자는 이미 문을 나서, 밖으로 나간 뒤였다.
“저기요, 잠깐만요!”
간신히 그를 따라잡은 ㄱ이 숨을 몰아쉬며 남자를 불렀다. 그는 놀란 듯 뒤를 돌아보았다.
“손가락... 손가락을 물어 뜯으시죠?”
ㄱ의 물음에 남자는 반사적으로 손을 뒤로 숨겼다. 하지만 이미 늦은 일이었다. ㄱ은 남자의 눈앞에 열 손가락을 활짝 펼쳐 보이며 말했다.
“사실은 저도 그렇거든요.”
남자의 이름은 1이였다. ㄱ은 그대로 1의 원룸까지 무작정 따라갔다.
“사실 나는 발가락도 물어 뜯어요.”
그는 함께 있을 때 유난히 발까지 정성스레 샤워를 하더니 말했다. 과연 열 발가락에는 잘디잔 상처들이 많이 있었다. 그 발가락들을 쓰다듬다가 그녀는 처음으로 다른 사람의 살을 맛보았다. 그의 깨끗하게 씻겨진 엄지 발가락 밑에서 잘라낸 굳은 살. 그 두툼한 굳은 살을 입에 넣고 씹자, 왠지 여태까지 중에서 가장 큰 충족감이 밀려 들었다.
여전히 그와 그녀는 손가락과 때론 발가락까지 물어뜯는다. 가끔 서로의 살 맛을 보기도 한다. 그러다 남자는 여자의, 여자는 남자의 손가락을 보고 새삼스레 느낀다. 저렇게 상처 많은 손가락이라니... 그럴 때면 서로의 손가락을 핥아주면서 “이제 그만 물어뜯을까?” 라고 말한다. 그 말은 쉽게 지켜지지 않지만, 물어뜯긴 손가락은 무척 아파 보인다는 걸, 서로의 손가락을 통해 비로서 느끼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