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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볼테가베네핏 May 10. 2024

쌍화탕 따뜻하게 드시고 푹 주무세요!

애월에서 만난 특별한 호스트

몇달만의 여행길에 다시 올랐다. 갑자기는 아니었지만 문득 떠났다는 표현이 맞을 정도로 낯설지만 생소하지 않은 그곳에서 그가 날 맞이했다. 숙소는 호텔과 리조트가 아닌 에어비앤비를 도전했다 평점 높고 숙소비가 타당한수준에서 적당히 골랐다.


체크인 시간을 얼추 맞출 수 있겠다고 생각은 했었는데 호스트로부터 문자가 왔다. 내가 인식하고 있는 에어비앤비 호스트라면 비대면 서비스가 국룰 아니었던가?


외출 중이니 도착하기 1시간 전에 꼭 문자 주세요 객실 안내 드릴게요


문자를 받았을 때는 바로 알겠다고 답장을 할 정도로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 시각 나는 한라산 정상을 찍고 하산 중이었고 몇시까진 내려갈 수 있겠네라며 감히 예상했다. 등린이의 자만심이 이런 거겠지. 그때까진 내 다리가 내 다리 같았는데 점점 내 다리가 쟤 다리인 것처럼 끌고 내려왔기 때문에 언제 가장 낮을 곳을 밟을 수 있을 것인지 전혀 가늠이 안되는 몸 상태가 되었다. 덕분에 1시간 전에 호스트에게 연락을 할 수 없던 상황이 되었고 시간이 하염없이 흘러 예상 도착 시간을 4시간이나 지연시키고 너덜너덜 해진 몸으로 숙소에 도착하였다.


평화를 선물해준 구엄리의 숙소


환한 미소로 맞이해 준 에어비앤비의 호스트는 에너지가 쌩쌩 넘쳐흘렀으며 나의 몰골과 멘탈과는 전혀 다른 생동감으로 무장한 모습이었다. 여행은 어땠는지 등반을 하고 와서 몸은 어떠한지 구경은 조금 했는지 앞으로 어떤 여행을 할 예정인지를 물었으나 하나도 시원하게 답을 못했다 예.. 예... 만 하고 예..로 끝내버린 나의 힘없는 답변 (등산을 10시간 30분간 했기 때문이라고 변명해 본다)


한라산을 정복했다

나의 맥 빠지는 대답에도 에어비앤비 호스트는 씩씩하게 환한 웃음을 보내며 이렇게 말했다


오늘은 무리하지 마시고 저 밑에 편의점 있거든요 쌍화탕 따뜻하게 드시고 푹 주무세요!


다음날 아침이 밝았고, 정확히 오전 9시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종종걸음으로 현관문을 빨리 열었다. 계단이 있는 숙소라 침실에서 기어서 내려왔지만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어제 그 호스트의 조식을 기쁘게 받아 들었다. 조식 서비스도 당연히 대면이었다. 어제 잘 주무셨냐는 반가운 서양 스타일 인사와 함께 쌍화탕 먹고 잤냐는 인사를 건네는 호스트의 기억력에 놀라며 씻지도 않고 부스스한 머리칼이 신경 쓰여 여러 번 쓸어 올리며 어제의 짧은 대답을 만회라도 하듯이 에너지를 올려서 한두 문장을 더 그에게 건네어 보았다.


어제 너무너무 푹 잘 잤어요 조금 괜찮아졌어요 감사합니다 사장님


커피외 함께 제공된 수제 김밥과 오렌지

무언가 부담감이 느껴져 나의 동행인에게 두 번째 날부터는 사장님 맞이를 부탁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대화가 부담스러웠다. 회사에 너무 찌들었던 탓일까 머릿속도 복잡하고 상대의 목소리나 얼굴표정으로 나에게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늘 가늠하는 삶을 살아내고 있을뿐더러 진심 담은 표정을 잘 마주할 수 없는 나의 일상에서는 볼 수 없는 완전한 미소와 기운 그런 것이 어색해서 받아들여질 수가 없었던 걸까?


세 번째 날은 이동 없이 집안에서 OTT 서비스와 함께 이것이 진정한 휴가임을 만끽하며 쉬었다. 우리가 집에서 나가질 않으니 청소와 수건 교체가 어려웠는지 저녁 즈음에 수건 교체건으로 연락하니 친절한 답장이 왔다.


안 그래도 연락드리려고 했어요 오늘은 안에서 쉬 쉬는 거죠? 바로 가져다 드릴게요


추측하건대 묵었던 숙소의 아주 근거리에 호스트 내외가 거주하는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손님 객실에 대해 엄청 신경 쓰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조식시간은 정확하게 오전 9시였고, 우리말고도 다른 객실이 있었던 거 같은데(독채라서 다른 객실로 손님이 오고 가는 것을 보진 못했다 주차해 둔 차를 보고 가늠할 뿐) 오차범위 5분 안으로 조식이 배달되었다 당연히 대면 서비스


조식은 매일 아침에 제공되지만 전날 저녁 11시까지 조식 희망 여부를 호스트에게 메세지를 보냈어야 했었다.며칠이 흐르고 우리의 복귀날은 비행기 시간이 매우 오전이라 조식을 놓치기엔 아까워서 조식 희망 메세지와 함께 덤덤히 여쭤보았다.


혹시 사장님 조식 시간을 30분 정도 앞당겨서 받을 수 있을까요? 비행기 시간이 오전이라서요 어려우시면 원래대로 9시에 받고 먹고 가겠습니다.


된다고 하거나 안된다고 하거나 둘 중의 한 개 답변을 기대했건만 놀라웠다


9시에 맞춰서 포장해서 가면서 드시기 좋게 드리겠습니다 어떠세요?


완벽하게 포장되어진 수제 김밥과 커피


식당도 아니고 포장이라니 에어비앤비는 아무나 호스트 하는 게 아니구나 싶었다.

이런 게 높은 평점 받은 비법인가?


직장인의 휴가는 기간이 얼마나 되었든 짧고 짧아서 최대한 열심히 쉼을 보내고 일상으로 복귀했고 여독이 풀리지 않은 나를 깨운 것은 기대하지 않았던 에어비앤비 호스트의 따뜻한 쌍화탕이었다.


그렇게 밝은 미소와 매너로 중무장한 나의 호스트는 나에게 특별한 기억을 심어주었고, 게스트를 환대했던 그 여유로움은 하루하루 내가 만나는 나의 주변인들에게도 나도 그런 건강한 에너지와 밝은 마음을 전하고 싶다는 소망이 생길정도였다. 그리고 나는 나의 하루를 기쁨과 감사로 시작해야겠다고 마음에 새겼고 테헤란로의 회색빛에 완벽하게 찌들기 전에 애월의 그 미소와 여유를 떠올리며 내 안의 평화로움이 더 짙어지도록 오랜 시간 동안 기억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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