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보내고

모두 떠나도 별은 그자리에

by 하계의 이난나


아가야.

네가 우리 집에 온날은, 조금은 더운 봄날이었어.

작고 하얀 몸, 그보다 더 작은 얼굴에 가득 찬 눈망울을 하고

여자사람들이 너처럼 하려고 그렇게들 애쓰는구나, 싶었던

볼록한 이마를 가지고서

냐, 냐, 냐 울면서

너는 막내언니 품에 안겨 왔었지.





아가야,

네가 우리 집에 와서

그 작은 몸으로 꼬물꼬물거리며 집안 구석구석을 찾아다닐 때

그 사랑스러운 모습에 그만, 손주라도 본듯한 마음이었단다.

그러면서, 내가 내 아이들을 너를 돌보듯 할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젊은 날, 정신없이 아이 둘을 낳아 기르며 수없이 실수했던 시간을 돌이켜보기도 했고,

어쩌면 자식들이 아이를 낳으면 내가 느끼게 될법한 마음과 돌보게 될 태도를

미리 경험하는 느낌이기도 했구나.


나는 옛날사람이라,

개는 밖에서 키우고

고양이는 적당히 예뻐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서로 힘들다고 여긴 때가 있었어.


그 생각이 아주 틀린 건 아니었겠지만,

살면서 보니

옛날 사람들은... 개는 먹을 생각에,

고양이는 먹을게 아니라는 생각에

그 습성을 존중하는 척 말하지만 결국은 사람 마음대로 내린 결론이라는 걸 깨닫게 되더라.


개도, 고양이도

밖에서 살기엔 너무 힘든 세상,

사랑하면 함께 해야지, 왜 밖에 두며

정해진 명대로면 넉넉히 십오 년은 살 생명이,

말랑하고 보드라운 발바닥을 가지고서 밖에서 살다가는

겨우 삼 년을 못 버틴다는 걸 생각하면

내 집에 온 네가, 소중하고 고맙고 안쓰러운 만큼

밖에서 사는 생명에도 더 관심을 기울일 수밖에 없었어.






나무야, 아가야!

여덟해, 사람집에서 사는 삶이 어땠니?

네가 온 첫해는 너도, 우리도 모두 행복하기 그지없었던 것 같아.

겁 많고, 수줍음 많은 너도 한주, 두 주가 지나면서

가족 모두를 익히고, 곁을 내주고, 품에 안기고

잘 때도 아빠 다리를 배고 자기 시작했지.

엄마는 아이들 키울 때도 그랬듯,

어린 시절 먹거리와 운동이 평생 체력이라는 믿음으로

너와 놀아주기 위해 혼신을 다했었는데.

그 바람에 냉장고 위에서 의자로 뛰어내리고 오르기를 반복하며

신나게 뛰어놀던 네가 너무나 사랑스럽고, 또 뿌듯했단다.





하지만 이듬해, 후추가 오면서 너는 달라지기 시작했지.

시커먼 아가가 새로 한 마리 왔는데, 처음에는 작아서 봐줄만하더니

점점 자라서 네 밥그릇, 물그릇, 따로 준건 거들떠도 안 보고

네 것만 탐을 내서 버거운 후추.

그 꼴이 보기 싫어서 짱 박혀 숨는곳마다 찾아내서 그 자리를 차지하는 통에

자꾸만 너만의 안전지대를 찾아서 너는 빙빙 돌아야 했었어.

그러나 아무리 애를 써도 결국 후추는 함께 살면서 한 공간을 나눠야 한다는 걸 받아들이기까지

한동안 나무야, 많이 힘들었지.

공간은 함께 쓰는 걸 받아들였지만

미운 후추, 다리도 튼실하고 힘도 세고 덩치도 큰 후추가 놀자고 건드리면

그것만은 받아주기 싫어서 하악! 하는 걸로 미워! 난 너 용서 안 했어! 를 표현하곤 했어.





하얀 털에 이마에 V자가 그려진 모습은

코리안 숏헤어에, 터키쉬 앙고라와 페르시아 무슨 종이 섞인 것이라는데

너의 조상은 본래 신장이 약하다며.... 그 탓에

여덟 살 되던 올해 초부터 너는 갑자기 밥을 안 먹고, 살이 빠지기 시작했지.

의사는 검사해 보더니 신장이 거의 형체가 없다면서,

이렇게는 한 달도 못 버틸 거라 했지만

집에 와서 너는 다시 밥도, 물도 잘 먹고

올봄은 아픈 아이 같지 않게 잘 지냈어.

그래서 우리는, 기적을 믿고 싶었어.


무엇이든, 구조가 문제가 아니라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는가가 중요한 법.

너도, 엄마도

암이 폐에 앉아있던, 신장의 모양이 망가졌던

밥 잘 먹고, 물 잘 마시고, 잘 놀고 지내면 된 거지.


놀랍게도, 그렇게 너는 다섯 달을 더 살았구나.

그러나 날이 갈수록 점점 더 밥도, 물도 받아들이지 못하는 너를 보며

우리는 안쓰럽고, 안타까운 마음과 동시에

너의 본능에 따른 거부를 어떻게 해야 좋을지 혼란스러웠어.

물 한 모금 안 삼키고 구석에 숨어, 나를 건드리지 마, 하는듯한 너를

그냥 두기에는 굶어 죽든, 말라죽든 내버려 두는 게 될까 봐 두려웠고

그런 너를 안고 나와 수액을 맞히고 물과 밥을 주사기로 넣을 때

괴로워하며 달아나려고 하는 너를 붙드는 게 잘하는 짓인지, 가슴 아팠어.





나무야!

너는 스스로 떠날 시간을 알고 있었니?

아무래도 그랬던 듯, 숨 거두기 하루 전부터

그토록 껌딱지던 큰언니지만, 자꾸 잡아서 건드리는 게 버거워서

한동안 얼씬도 하지 않던 큰언니방에

너는 휘청이는 발걸음으로, 돌아가곤 했어.

장롱 앞 한구석, 네가 자주 누워있곤 했던 그 자리에 돌아가 누운 건

오늘 새벽,

숨을 거두기에 거기가 가장 익숙하고, 안전한 자리여서였겠지?


간밤, 아무래도 하수상해서

따로 사는 막내언니를 부르고

다른 가족이 잠들어도 너를 지켜보느라 잠들지 못한 큰언니 앞에서

너는 마지막으로, 냐, 하고 언니를 부르듯 말을 걸고는

잠시 경기를 보이고 숨을 몰아쉬고,

놀란 언니가 온 가족을 불러 모으자 이윽고 우리 앞에서 몇 번의 힘겨운 호흡을 마지막으로

고요히 눈을 감았지.





나무야, 사랑하는 아가야!

아무 죄도 없고, 순전한 너,

그저 순수한 본능으로 여덟 해를 살다가

너를 사랑하고 너를 보내기 가슴 아파서 우는 가족들 앞에서 떠난 너에게

엄마는 그저 아가야, 사랑한다, 고맙다,

이제 아프지 않아서 정말 다행이야... 잘 가 아가야.

하고 고운 털을 자꾸만 자꾸만 쓰다듬을 수밖에 없었어.


나무야, 잘 가.

우리 가족에게 와줘서 정말 고마웠어.

네가 있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자주자주 기쁘고 행복했어.

너무나 귀엽고, 예쁘고, 사랑스러운 너

네덕에 나는 손주를 얻지 않고도 아주 작은 존재를 사랑하는 법을 다시 배웠다.

이제 막 도착했을 그 세상은

자유롭게, 신나게 뛰어노는 네 세상이길,

더 안전하고, 사랑으로 가득 찬 곳이길 엄마가 기도해.

아가야,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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