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빛이 좋아하는 풀

정원에 첫 손님이 왔어요.

by 엘리

비가 그친 이른 아침,

정원은 아직 축축했지만, 엘리는 벌써 움직이고 있었어요.


엘리는 젖은 나뭇가지를 하나씩 모으고,

넘어진 화분을 일으켜 세우고 있었어요.

손에 흙이 잔뜩 묻은 줄도 모르고, 입술을 꽉 다문 채.


'뭔가라도 해야 해…'

그녀의 작은 손끝은 매서워 보이기까지 했어요.

가끔 흙이 튀고, 손등이 베어도

엘리는 멈추지 않았어요.


바로 그때


텁, 텁.


익숙하지만 거슬리는 소리가 들려왔어요.

엘리가 고개를 돌리자, 피코가 정원 한쪽 구석에서

마킹을 하더니 뒷발로 흙을 세차게 차고 있었어요.


그러곤 또 다른 쪽으로 가,

같은 행동을 반복했죠.


“피코… 제발…”

엘리는 작게 중얼였어요.

“내가 정리한 건데… 왜 자꾸…”


피코는 무슨 일이냐는 듯

잠깐 엘리를 쳐다보더니,

다시 자신의 방식대로 정원 이곳저곳을 돌아다녔어요.

무심한 듯, 그러나 어쩐지 절실해 보였어요.


엘리는 말없이 그 모습을 바라보다

작은 한숨을 내쉬었어요.

“피코마저… 왜 나를 힘들게 하는 걸까…”


그 순간

엉킨 덩굴 틈에서,

조용히 고개를 든 한 송이의 꽃.


살구빛과 연보라가 은은히 번진,

알스트로메리아.


엘리는 숨을 멈춘 듯

그 꽃을 가만히 바라보았어요.


“… 여기에 꽃이 피어있다면,

어딘가에… 씨앗이 있을지도 몰라.”


피코가 고개를 갸웃했어요.

“진짜 기억 안 나?”


엘리는 피코를 바라봤지만,

말없이 고개를 저었어요.


피코는 작게 한숨을 쉬었어요.

자기를 따라오라는 듯,

꼬리를 바짝 세우고 티하우스 쪽으로 빠르게 걸음을 옮겼어요.


티하우스 안쪽으로 엘리를 데려가더니,

장식장 서랍을 코로 툭 쳤어요.


오래된 나무장이었어요.

서랍문을 조심스럽게 열자,

마른 꽃잎들의 향기가 퍼져 나왔어요.

그 향은 마치 기억처럼,

희미하지만 깊은 울림으로 엘리의 몸을 감쌌어요.


엘리는 그 자리에 천천히 주저앉았어요.

눈을 감고, 깊이 들이마셨어요.


“기억이 안 나도 괜찮아.”


보랏빛 도마뱀, 요요가

다정하게 속삭였어요.


“꽃은, 기억 없이도 피거든.”


엘리는 눈을 떴지만,

요요는 이미 사라진 뒤였어요.


그때

장식장 가장 아래 서랍을 열자,

작은 유리병들과 천 주머니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어요.

각기 다른 색깔의 리본으로 묶인 주머니들.

작은 메모지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죠.


‘비 오는 날 피는 꽃’

‘달빛이 좋아하는 풀’

‘피코가 좋아하던 향기’


엘리는 조용히 웃었어요.

자신도 모르게 흘러나온 미소였어요.


바로 그때,

밖에서 들려온 피코의 목소리.


“엘리! 손! 그, 손이 움직였어!”


“손?”


“그… 네가 정원 가꿀 때 쓰던 초록 장갑 있잖아!

긴 막대기에 꽂혀 있던 그거.

그게… 분명히! 손을 쫙 펴더니,

흔들렸다고!”


엘리는 피코를 보며 웃었지만,

크게 신경 쓰진 않았어요.

“피코, 그거… 진짜로 본 거야?”


피코는 여전히 창밖을 흘끔거리며,

초록빛 장갑을 바라보고 있었어요.

그런데 이번에는 장갑이 새끼손가락을 까닥였어요.


피코는 눈을 가늘게 뜨고

작게, 억울한 듯 그르렁거리기 시작했어요.

'나 진짜 봤단 말이야.'


피코가 갑자기 고개를 들고 킁킁거리더니

“에취!” 재채기를 했어요.


엘리가 놀라 돌아보는 순간,

티하우스 창문으로

털실뭉치 같은 작은 몸이

바람을 타고 미끄러져 들어오는 게 보였어요.


살짝 망설이는 듯 공중에서 맴돌다가

엘리와 피코 앞에 사뿐히 내려앉았어요.


그 존재는 깡총깡총 뛰며 휘파람을 불었어요.

“그냥~ 지나가다 들렀을 뿐인데?”


피코가 찡그리며 말했어요.

“이상하게 생겼어… 뭐야, 넌?”


그 작은 존재가 해맑게 웃으며 대답했어요.

“난 스위피라고 해.”


피코는 투덜댔어요.

“요즘 이상한 애들이 너무 많아… 정원이 이상해진 거 아니야?”


“아니야,”

엘리는 작게 숨을 내쉬며 말했어요.

“이상해진 건… 어쩌면 우리일지도 몰라.”


그렇게,

고요하던 정원에

조금씩…

다시,

빛이 들기 시작했어요.




EP.3 정원 끝 짧은 대화


피코 : "이상해... 정원이 예전이랑 달라."

엘리 : "?"

요요 : "그럼 물어볼까?"


이상한 게... 정말 이상한 걸까?

2화 삽화.png 달빛이 좋아하는 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