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대의 춤

스위피가 선물을 가져왔어요.

by 엘리

피코는 여전히 창밖을 흘끔거리며,

초록색 장갑을 바라보고 있었어요.


“진짜… 움직인 것 같은데…”

피코가 킁킁거리며 혼잣말을 했어요.


엘리는 그 모습을 보며

작게 웃었어요.


“그럼 이름이라도 붙여줄까?”


피코가 고개를 갸웃했어요.


엘리는 손끝으로 창밖을 가리키며 말했어요.

“이제부터 넌… Mr. GreenHand.

정원의 첫 번째 직원이야.”


영어 억양을 흉내 내며 장난스럽게 말하자,

피코는 어이없다는 듯 짧은 숨을 내쉬었어요.

“하아—”


Mr. GreenHand는

처음부터 아무 일도 없었던 듯,

다섯 손가락을 쫙 편채

막대기 위에 가만히 있었어요.


스위피는 어느새 정원 구석에 도착해,

작은 발로 콕콕, 흙을 파기 시작했어요.


그를 따라 날아온 민들레 씨앗 친구들이

하나둘, 그 곁에 내려앉았죠.


스위피는 씨앗들에게 흙을 덮어주고

오랜 비행을 마친 친구들을 재워주었어요.


“여기가, 오늘부터 우리가 살아갈 곳이야.”


씨앗들은 조용히 몸을 말고,

잠들 준비를 했어요.


피코는 멀찍이서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미간을 찌푸렸어요.

‘진짜 여기서 살려는 건가…?’


엘리는, 정원의 분주함은 까맣게 모른 채,

티하우스 안에 앉아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었어요.


톡.


엘리는 깜짝 놀라

무릎 위를 내려다보았어요.


작고 투명한 유리병 하나가 놓여 있었어요.

"이게...뭐지?"

엘리가 조심스레 그 안을 들여다 보았어요.


그 안에는,

아주 작은 음표 하나가

무한대를 그리며 부드럽게 춤을 추고 있었어요.


그 움직임은…

끝이란 게 없는 듯,

계속해서 흐르고 또 흐르는

어떤 오래된 이야기 같았어요.


“이걸, 바람이 너한테 건네주래.”

스위피가 말했어요.


엘리는 유리병을 바라보다가,

조심스레 손에 쥐었어요.


음표가 움직일 때마다

병 안의 공기가 가늘게 떨렸고,

미세한 진동이

마음 깊숙한 곳까지 잔잔히 번져왔어요.


“지금도 노래는 흘러 나고 있어.

다만, 네가 아직 듣지 못하는 거야.”


스위피는 그렇게 속삭이곤

작은 휘파람을 불며

민들레 씨앗들 곁으로 돌아갔어요.


엘리는 유리병 속 음표를 한참 동안 바라보았어요.

작고, 투명하고, 조용했죠.


그런데 이상하게도

바라보면 바라 볼 수록

점점 그 안으로 빨려 들어가는 기분이 들었어요.


음표의 춤은

자신의 숨결과 겹쳐졌고,

그 작은 진동은

마치 자신의 심장의 떨림처럼 느껴졌어요.


그 순간,

엘리는 아찔한 감각에 휩싸였어요.


음표와 자신이 하나로 희미해지는 듯한 느낌.

알 수 없는 두려움이 스쳤어요.


‘이대로 사라져 버리는 걸까…?’


엘리는 숨을 한번 고르고,

그 감각을 꼭 쥔 채

유리병을 자신의 베개 옆에 두었어요.


놓치고 싶지 않았어요.

그런데 완전히 잠기기에는 아직 조금 무서웠어요.


꿈.


조용한 바닷가.

아무도 없는 백사장.

에메랄드빛 바다와 구름 한 점 없는 하늘.


그 위로,

하얀 천.

꽃잎.

불빛.


그리고

멀리서 누군가 부르는 듯한 울림.


이름은 들리지 않았지만,

그 부름은 이상할 만큼 익숙했어요.




EP.4 정원 끝 짧은 대화


피코 : "소리는...안 나잖아?"

엘리 : "응. 근데, 어쩐지...조용한 건 아닌 것 같아."

요요(어디선가) : "들리지 않는다고, 없다는 뜻은 아니야."

4화 연필.png 스위피의 선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