쉿, 문이 열렸어요.
꿈.
하얀 천이 허공을 흐르듯 지나갔고,
그 아래로 투명한 꽃잎들이 천천히 내려앉았어요.
빛은 출렁였고,
멀리서 부르는 듯한 울림이
엘리의 가슴 깊은 곳을 두드렸어요.
“엘리”
아주 가까운 곳에서,
누군가 부드럽게 속삭였어요.
엘리는 천천히 눈을 떴어요.
빛은 아른아른 번지고 있었고,
현실인지 꿈인지 분간할 수 없었어요.
엘리는 숨을 가다듬고
몸을 일으켜 주변을 둘러보았어요.
손목에 있던 팔찌에서
은은한 빛이 새어 나오는 걸 보았어요.
그리고
차르륵.
팔찌가 천천히 느슨해지더니
그 안에서 빛이 실처럼 풀려나왔어요.
가늘고 부드러운 빛줄기가
공기 속을 천천히 떠돌다가
어느새 하나의 형상을 이루고 있었어요.
엘리는 믿기지 않는 듯
눈을 크게 뜨고 바라보았어요.
구릿빛 뱀. 쉬쉬.
피코는 놀란 눈으로 엘리를 바라보다가,
살짝 몸을 틀어 길을 내주었어요.
엘리는 조심스럽게 쉬쉬에게 다가갔어요.
쉬쉬는 아주 짧은 눈빛을 건넨 뒤,
긴 의자를 지나 창문을 넘어
정원 바닥을 스르륵 미끄러지듯
정원의 끝으로 향했어요.
담쟁이덩굴로 뒤덮인 돌담이 모습을 드러냈어요.
쉬쉬는 그 앞에서
몸을 곧게 세우고
느리고, 깊게 숨을 들이켰어요.
쾅.
고요했던 정원이
마치 막이 찢어지듯 아래위로, 좌우로
심하게 흔들렸어요.
쉬쉬는 마지막 힘을 모은 듯
고개를 높이 들고,
입을 크게 벌렸어요.
파사삭—
바람이 뒤집히며
공간이 갈라졌고,
그 안에서 새로운 통로가 나타났어요.
순식간에 바람결이 바뀌더니,
민들레 씨앗 하나가
그 틈 안으로 휩쓸려 들어갔어요.
엘리는 그 광경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몸을 파르르 떨고 있는 피코를 발견했어요.
“… 우리… 어디로 가는 거야?”
피코는 말없이 몸을 붙였고,
엘리는 눈을 한번 지그시 감았다가 떴어요.
그리고는 피코와 함께,
문 너머의 세계로 발을 디뎠어요.
EP.5 정원 끝 짧은 대화
피코 : "그러니까... 그 팔찌가, 뱀이었다고?"
엘리 : "응..."
피코 : "휴. 내 목줄도 언젠간 말을 하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