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진 손의 정원

Mr.GreenHand를 만났어요.

by 엘리

문 너머로 나오니 호텔의 복도였어요.

붉은 카펫, 빛바랜 의자,

은은하게 퍼지는 조명,

그리고 세제냄새와 꽃향기.


피코는 코끝을 씰룩이며 속삭였어요.

“…익숙한 냄새야.”


엘리는 말없이 걸었어요.

무언가에 이끌리듯.


그리고 복도 끝에서,

한 여인의 뒷모습을 보았어요.

흰 머리 수건, 긴 앞치마, 그리고 초록색 장갑.


그녀는 테이블보를 단정하게 하고,

직원에게 조용히 미소 지으며

계단을 닦고, 화단을 정리했어요.

움직임 하나하나에

습관처럼 배인 정성이 느껴졌죠.


그 순간, 엘리는 문득

정원 구석의 Mr. GreenHand를 떠올렸어요.

막대기 위에 꽂혀 있던 초록 장갑.

피코가 “움직였어”라던 그 장갑.

손바닥이 닳아 반질반질해진,

그 감촉의 의미를 그제야 알아챘어요.


그 손은 ,

지금 눈앞에서 단 한순간도 쉬지 않고

호텔의 화단을 돌보고 있는

바로, 그 여자의 손이었어요.


그리고 엘리는 느꼈죠,

그 손이, 어디에 있든

늘 ‘정원’을 가꾸고 있었다는 것을.

엘리는 한 발, 또 한 발 다가갔어요.


그녀는 부드럽지만 단단한 목소리로 지시했어요.

“조금만 더 신경 써줘요. 저녁 손님 오시니까.”


로비보이들은 서로 눈을 마주친 뒤

피식 웃으며 지나쳤어요.

그녀는 모른 체했지만

그 웃음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고 있었어요.


엘리는 가슴 한쪽이

쿵, 내려앉는 걸 느꼈어요.


그때

엘리의 유리병 속 음표가

떨리기 시작했어요.


진동.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번진 파장이

공간 전체를 울리기 시작했어요.


엘리는 조용히 작은 방으로 들어갔어요.

화려한 호텔과는 어울리지 않는,

작고 소박한 방.


서랍 깊숙한 곳에서

낡은 액자 하나를 꺼내어

유리를 살며시 문지르며

속삭였어요.


“참… 오래됐네요.”


사진 속, 정장을 입은 남자와

하얀 드레스를 입은 젊은 그녀.

작은 글씨로 쓰여 있었어요.

‘Geranium & Henri, 첫눈 오는 날’


엘리는 미세하게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어요.

“당신이 날 거두어 주지 않았다면…

나는 지금 어디에 있었을까요.”


“은혜를… 꼭 갚고 싶었어요.”


그녀는 마른 입술로 혼잣말을 하다가

웃는 건지, 울음을 참는 건지 모를

모호한 표정을 이내 지었어요.


“부인~ 손님이 찾으십니다.”

로비보이의 목소리에

그녀는 황급히 나갔고,


책상 위엔 한 권의 수첩이 펼쳐져 있었어요.

흐릿하게 바랜 글씨들.


‘아무리 정성껏 돌봐도… 난 여전히 잡초처럼 느껴져.’

‘나를 왜 다들 싫어할까?’

‘오늘은 객실이 꽉 찼어. 그래도… 다행이다.’


엘리는 조심스레 페이지를 넘겼고,

글자 하나하나가

가슴을 찌르는 것만 같았어요.


유리병 속 음표는 점점 더 크게 울리고 있었죠.

피코는 재빨리 그녀의 무릎 위로 올라와

입술에 뽀뽀를 퍼부었어요.


엘리는 피코의 이마에 얼굴을 묻으며

작게 속삭였어요.


“저 여자가… 나야.”


엘리의 눈가에서 눈물이 차올랐어요.


그때, 어디선가

노래인 거 같지만 노래는 아니고

주문인 거 같지만 주문도 아닌,

신비한 소리가 온 방안을 감쌌어요.

요요였어요.


음표도

요요의 노래에 취해 춤을 추고

온 세상이 나른해져 그 소리를 들었어요.


<그 손으로 너는

늘 남을 돌봤지.


채워주고,

나눠주고,

그러다 너는

너를 잊었지.


풍요 속에서

가난했고,


웃음들 속에서

외로웠단다.


괜찮아.


넌,

용기 있는 아이니까.>


엘리가 두 손으로 얼굴로 감싸 쥐더니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어요.


"맞아.

난... 사실

버림받을까 봐 너무 무서웠어.

너무 오래

혼자 방 안에서 울고만 있었어."


정원의 하늘이 요동쳤어요.

거센 바람.

흙먼지.

솟아오르는 민들레 씨앗들.


피코가 엘리 앞을 막아섰고,

쉬쉬는 다시 구릿빛으로 빛나며

팔찌로 돌아왔어요.


정원의 공기는 흔들리고 있었어요.

무너지는 게 아니라,

깨어나고 있었어요.


“흔들리는 건 괜찮아.

이건 무너지는 게 아니라, 드러나는 거야.”


요요의 목소리가

바람 속에서 스치듯 흘러나왔어요.


엘리는 눈을 감고,

한 번 깊게 숨을 들이쉬었어요.


정원의 공기가 뿌옇게 흐려졌고,

민들레 씨앗들이 중심을 잃고 흩날렸어요.

Mr. GreenHand도 거센 바람에 휘청였어요.


바람은 잦아들 기미가 없었고,

정원의 공기는 여전히 탁하고 어지러웠어요.


피코는 여전히 그녀 곁에 붙어 있었고,

엘리는 가만히,

흔들리는 정원을 바라보았어요.




EP.6 정원 끝 짧은 대화


피코 : "그러니까... 또 혼자였다는 거야?"

엘리 : “응. 늘... 혼자였지.”

요요 : “사람들 틈에 있었지만... 정작 너는, 너랑 가장 멀리 있었지.”


피코 :“... 그럼 나는 뭐야. 공기야?”

6화 삽화.png 잊혀진 손의 정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