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기사화된 신규 공무원의 의원면직률을 보았다.(2020. 11. 4;「경향신문」). 공무원연금공단의 자료에 따르면 2019년 재직 5년 미만 공무원 퇴직자가 6664명으로 2018년(5670명), 2017년(5181명)에 비해 대폭 늘었다. 임용 후 1년 이내에 퇴직한 숫자는 1769명으로 전체의 26.5%에 달했다. 기사의 헤드라인은 "그들은 왜 '철밥통'버렸나"였다. 바로 그들, 행정현장에서 고군분투하고 있을 신입 말단 공무원의 이야기를 다시 해보려고 한다. 첫 글을 발행하고 2년만이다.
내가 발령을 받고 일주일이 지났을 때였다. 오십 중반의 아저씨가 민원창구를 방문했다. 생소한 민원서류 이름을 대며 나에게 발급을 요청했다. 며칠 동안 근무하며 발행했던 등·초본이나 인감 서류가 아니었다. 순간 당황했다. 옆자리에 앉은 사수의 도움으로 그 민원서류를 부랴부랴 출력하고 있을 때였다.
민원인은 창구 앞에 다리를 꼬고 앉아 있다가 나에게 더 가까이 다가왔다. 가벼운 웃음을 띤 채 그가 말을 건넸다. “아가씨, 처음 왔나 봐?” 아래 위로 나를 훑으며 무시하는 표정 앞에서 나는 주눅이 들어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면전에서 조롱당한 모멸감보다 미리 숙지하지 못한 나 자신에 대한 자책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민원인이 가고 난 후 나는 재빨리 업무편람을 펼쳤다. 미처 한 장을 읽기도 전에 다음 민원인이 와서 덮어야 했지만 말이다.
근무 3일 차에는 이런 일도 있었다. 그분도 오십 대쯤으로 보이는 아저씨 민원인이었다. 인감 서류를 발급하러 왔다고 했다.‘매도용’ 인감증명서로 떼어 달라고 두어 번 힘주어 말씀하셨다. 옆에서 나를 지켜보던 사수가 별다른 말을 하지 않기에 “네, 인감 발급해드릴게요.” 하고 3일 동안 내가 발급했던 일반 인감 서류를 자신 있게 출력하여 그분께 드렸다.
30분쯤 지났을까. 그 민원인이 전화를 걸어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내가 분명히 매도용이라고 몇 번을 말했어! 당신 때문에 지금 서류 미비로 법원에서 일 못 보고 돌아가게 생겼어. 당장 매도용 인감으로 다시 떼어서 법원으로 가지고 와.”라고 한참을 전화로 퍼부어 댔다.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민원인의 고함에 옆에 있던 사수는 “매도용 인감 따로 있는 거 몰라요?”라고 무정한 말을 나에게 건넸다. 내가 일반용인지 매도용인지에 따라 발급방법이 다르다는 걸 알 수 없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사람이 사수인데 말이다!
나는 점심을 포기하고 새로 뗀 매도용 인감 서류를 들고 택시를 탔다. 법원 앞에서 씩씩대며 기다리는 민원인의 모습이 보였다. 택시에서 내려 헐레벌떡 뛰어오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 짠한 마음이 들었는지 분이 한층 수그러든 어조로 그 민원인이 말씀하셨다.
“그러게 왜 실수를 했어. 같이 가서 점심 먹고 가. 내가 사줄게.”하셨다. 괜찮다고 정말 죄송하다고 말씀드린 후 다시 주민센터로 돌아왔다. 왕복 한 시간을 채우고서야 주민센터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 후로 매도용 인감에 대해서는 확실히 배웠지만 옆에 있는 사수에게도, 고성을 지른 민원인에게도 마음이 상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주민센터에서 근무하는 지방직 공무원 9급은 기본적으로 현장훈련(on the job training; OJT)을 받는다. 민원현장에 즉시 투입되어 사수와 함께 민원을 보며 실전 교육을 받는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내가 겪은 일들과 같은 사건이 신입 동기들에게도 비일비재하게 일어났다.
현장이야말로 최고의 교실인 것은 맞다. 그러나 일반기업에서는 신입사원들의 역량이 갖추어질 때까지 짧게는 1개월에서 길게는 1년의 수습기간과 연수 프로그램 과정을 거친다. 그 후에 현장훈련을 통해 지속적인 학습을 하며 신입사원들이 조직에 적응하도록 여러 형태의 도움도 받는다.
신규로 임용된 공무원들도 원칙적으로 실무에 투입되기 전 4주 정도 공직자 연수 프로그램을 받도록 되어 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발령받은 이후 현장업무 시간을 뺄 수 있는 경우에 한해 순차적으로 교육을 받게 된다. 나도 임용된 지 반 년이 지나서야 신규공직자 연수를 받을 수 있었다. 그 곳에서 체계적인 교육을 받기 전에 고작 하루 이틀 정도 사수가 민원 보는 모습을 지켜본 후 민원업무 권한을 부여받고 실제 업무에 투입되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의지할 유일한 사람은 주민센터 안에 있는 ‘사수’뿐이다. 하지만 사수의 사정도 그다지 좋지 않다. 처리해야 할 공문은 쌓이고 민원인은 끊임없이 찾아온다. 걸려오는 전화는 왜 그리 많은지! 옆에 앉은 신규직원이 물어보는 질문에 답해줘야 하는데도 사수는 그것을 못 들은 척하거나 짜증을 내는 일이 점점 잦아진다.
옆에 앉은 신규직원의 사정은 또 어떠한가. 사수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면서도 당장 앞에 있는 민원인이 처음 접해보는 서류를 요청하면 그 앞에서 편람을 들출 수도 없는 노릇이다. 조롱과 무시를 받을 수 있다는 두려움보다도 업무 처리 속도가 느려져 민원인의 불만이 제기되기 때문이다. 하는 수 없이 옆자리 사수에게 속삭이며 질문한 다음 민원인의 요구에 빠르게 부응한다.
주민센터가 문을 닫는 시간인 저녁 6시 이후에는 민원을 보느라 미진했던 공문을 처리한다. 창구의 마감업무도 해야 한다. 해당 관할 구역의 자치단체 회의도 일주일에 두 번 이상은 있다. 회의를 겸한 저녁식사까지 함께 해야 하는 일이 잦다.
주민센터에 근무하는 직원은 주말에도 지역 축제와 체육대회 등의 행사를 지원해야 한다. 각종 행사에 주민센터 공무원들이 필요인원으로 동원된다. 선거를 2개월여 앞둔 기간에는 주말까지 새벽 출퇴근을 해야 하는 격무의 연속이다. 나 또한 신규 발령을 받고 두 달 내내 연속으로 주말출근을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행정안전부에서 제공한 ‘전국 지방자치단체별 공무원 1인당 주민수’ 자료(2018)에 따르면 전국 평균 공무원 1인당 주민수는 159명이다. 이 중 경기도는 담당 주민수가 236명으로 전국에서 가장 많다. 지방자치단체 행정기관 중에서도 직원의 수가 늘 부족한 곳은 대체로 주민센터이다. 사정이 이렇기 때문에 신규자가 들어오면 사수도 그동안 미뤄뒀던 필수교육도 받고 연수 프로그램에도 참여한다. 사수가 없는 날은 신입 공무원에게는 전쟁을 방불케 하는 날이다. 사수 없는 민원창구에서 버티는 일이 이렇게 요원할 줄 어찌 알았으랴! 다른 업무 담당 직원이 잠깐 교대를 해주어 30분 정도 점심시간만 주어져도 그저 감사해야 할 정도이다.
어떤 민원인이 언제 들이닥쳐, 다종 다양한 민원업무 중 어느 것을 요구할지 모른다. 민원인이 어떤 화풀이를 할지 모른다는 불안과 긴장감에 온 몸이 뻣뻣해진다. 아슬아슬한 외줄타기에서 떨어질지 모르는 광대처럼 간이 콩알만 해 질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심장이 쪼그라들고 명치가 죄는 기분을 매일매일 경험한다. 이런 내가 한심하고 초라하게 느껴진다. 이곳이 내 자리가 아닌가 하는 자괴감만 남는다. 사명감을 떠올리기 전에 자존감이 바닥을 친다. 주민센터 신입 말단 공무원의 그런 하루를 나는 몇 달 동안 겪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