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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HYE Sep 27. 2020

마음과 함께 살아가는 법

과장님, 시간 좀 있어요?


나른해지는 가을 오후 5시. 같은 팀이었던 차장님에게서 연락이 왔다. 개인적인 일로 물어볼 것이 있다고 10분 정도 시간을 내달라는 부탁이었다. 워낙 사적인 이야기를 나누지 않던 터라 어떤 종류의 ‘개인적인 일’인지 전혀 가늠이 가지 않았다. 마침 커피 한 잔이 당기던 터였다. 얼음만 남은 텀블러를 들고 사무실 옆 미팅룸으로 향했다. 사내 카페에서 커피 한 잔을 타고 미팅룸으로 들어가기 전 슬쩍 그의 모습을 보니 시선은 핸드폰을 향한 채 어깨가 축 늘어져있었다. 키가 180cm가 넘는 그가 그렇게 작아 보인 적은 처음이었달까. 인기척을 내며 그의 앞에 앉아 시답잖은 농담을 던졌다. ‘뭐예요~ 이렇게 둘이 미팅하는 건 처음이네?’ 허허- 공허한 웃음이 돌아왔다. 짧은 웃음을 짓던 그는 잠시 머물던 적막을 깨는 질문을 던졌다.


혹시, 명상도 해요?

요가하면서요? 네 하죠. 수련 시작 전에 명상해요 우린.

명상을 좀 하면… 숙면에도 도움이 될까?

왜요, 요새 잠을 잘 못 주무세요?


잠을 편히 못 잔지는 꽤 됐다고 했다. 누우면 기본 2시간은 이런 생각, 저런 생각을 하면서 뒤척이는데, 어느 순간 또 깨면 새벽 4시란다. 그렇게 잠을 못 자고 거실을 서성이다 출근 준비를 하고 회사를 일찍 나와버린다고. 최근 불면증이 심해져 의도치 않게 회사를 일찍 출근한 지가 1주일이 넘었다고 했다. 잠을 못 자니 이상하게 식욕만 심해져 점심을 과하게 먹고 야식까지 먹으니 살이 10kg이 두 달 사이에 훅- 불어버렸다면서 살이 꽤 붙은 자신의 볼따귀를 척척 때렸다. 잠을 잘 오게 하는 영양제도 챙겨 먹어보고 술도 왕창 마시고 자보고 해도 잠시뿐. 생각이라는 게 도통 멈추지 않아 괴롭다고 했다. 그러던 와중, 가끔 요가매트를 들고 출근하는 내가 생각났다면서 요가나 명상이 이 생각의 ‘멈춤’을 가져올 수 있냐고 물었다.


그가 나에게서 얻고자 했던 것은, 그의 불면증을 끝내줄 수 있는 희망이 조금이라도 담긴 대답과 결론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난 원했던 답을 주지 못했다. 다만, 얇게나마 평온해진 그의 얼굴을 보니 내가 건네려던 위로는 전해진 것 같았다. 자주 보던 장난 가득한 미소와 함께 우리는 각자의 자리로 돌아갔다.


그의 질문에 대한 나의 대답은 ‘멈출 수 없다’였다. 그리고 명상 중 우리의 마음이 한없이 불안하고 괴로워지는 이유에 대해 나눈 이야기를 그에게 전했다. 사람은 하루에 17,000개가 넘는 생각을 한다고 한다. 마음에서 일렁이는 이 수많은 생각들은 부정적인 것일수록 퍼지기 쉬우며 끝이 없는 불안을 만든다. 그 망상들 속 우리는 생각의 더미에 쌓여 정작 내가 지금 어떤 마음인지 스스로를 돌이켜보지 못한 채 계속해서 더미 위에 생각을 배출하기 바쁘다. 부정하고 무시해버리기에는 이미 커져버린 마음 속 생각의 더미. ‘왜’ 내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 그 더미를 하나씩 들춰보는 연습이 필요하다. 그렇게 들여다보면 ‘지금’이라는 시간을 우리 스스로에게 가져다줄 수 있다고.



마음은 과거를 후회하고 미래를 걱정하기에 바쁘다. 내가 보고 싶은 나의 모습을 정의하고 그 모습이 아닌 나를 직면했을 때의 불안은 마음을 잠식한다. 억측과 추측이 난무하는 이 마음속의 혼란을 하나씩 풀어내다 보면 만날 수 있는 ‘나’는 모습을 쉬이 드러내지 않는다. 그렇기에 ‘지금’이라는 찰나에 내 마음이 자주 존재해야 하고 라면처럼 꼬여버린 이 마음의 실타래를 엉키기 전에 자주 풀어줘야 한다. 그렇게 나를 자주 마주하며 이 마음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더 지혜롭게 터득해가고 싶다. 빼곡해진 마음에 내가 머물 자리를 내어줄 수 있는 여유도 언젠간 아주 자연스럽게 생길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며.


개인적인 이야기를 회사 사람인 나에게 털어놓는 그의 마음은 얼마나 절박했을까 싶다. 주말 내내 뜨는 가을 해가 따사로웠고 지는 해가 하늘을 붉게 물들여 아름다웠는데. 그는 이번 주말에 열일한 하늘을 보며 가족과 함께 행복하게 보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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