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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외 탕에 앉아 음미한 어린 시절의 추억

by 바보

나는 공중목욕탕의 한쪽에 마련된 야외 탕을 무척 좋아한다. 날씨가 쌀쌀해지면 더 자주 찾게 되는데, 온도차로 인해 수면에서 피어오르는 김의 양이 늘어나 이리저리 소용돌이치며 자아내는 신비로운 분위기가 좋고, 가슴 위는 차갑고 아래는 뜨끈한 느낌도 좋다. 몸이 달아오를 때까지 탕에 앉아있으면 혈액순환이 잘 되어서 묵은 피로가 쏴-악 풀리고 혈색도 한결 좋아진다. 그리고 무엇보다 실내탕에서는 더위 게이지가 금방 차올라 오래 앉아 있는 게 곤혹인데 반해 야외탕에서는 마냥 앉아 있을 수 있어서 좋다. 더워지면 다리만 담그고 다시 추워지면 목까지 담그는 야외탕 마니아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기본기만 익히면 30분 정도는 우습다.


새벽에 일어나 개장시간에 맞춰가면 넓은 목욕탕을 나 홀로 즐길 수 있어서 더욱 좋다. 그래서 출근 전에 들르는 경우도 많다. 북적이는 목욕탕의 분위기는 어릴 적 명절 아침에 아빠와 서로의 때밀이 메이트가 되어주던 그리운 그 시절을 떠올리게 해서 나름의 매력이 있지만, 굳이 엄마가 좋은지 아빠가 좋은지를 따져야 한다면 엄마가 더 좋듯이(아버지 죄송합니다..) 나는 새벽 목욕탕을 조금 더 좋아한다.


사실 어려서는 목욕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았다. 아빠의 손에 이끌려 목욕탕에 자주 갔는데, 때를 불려야 잘 벗겨진다며 뜨거운 탕 속에 들어가서 10분을 버티는 것이 아빠가 강조한 과제였다.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순간까지 이를 악물고 버티다가 10분이 다 된 것 같아 아빠에게 가서 검사를 받으면 한 번에 통과된 적이 거의 없었다. 두 번째 과제는 아버지의 넓은 등의 때를 미는 것이었다. 조그마한 내 등을 밀어주시는 대가로 5배는 넓은 아빠의 등을 밀어드려야 하는 게 왠지 손해 보는 느낌이 들었다. 면적으로 따지자면 아빠는 내 온몸의 때를 밀어줘야 공평하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굳이 요구하지는 않았다. 효자여서가 아니라 아빠가 때를 밀어주면 피부가 벌게지도록 밀어서 따끔따끔하기 때문이었다.


물론 곤혹스러운 과제만 있는 것은 아니다. 나름의 작은 유흥도 있었는데 냉탕에서 소심하게 수영하는 것과 냉탕과 온탕을 반복하며 피부의 감각이 사라지는 체험을 하는 재미가 과제의 압박을 어느 정도 상쇄했기에 군소리하지 않고 목욕탕에 따라다녔다. 반면 친구들과 같이 목욕을 가는 것은 소심하게 수영해야 한다는 불문율을 잊게 되어서 세신사 아저씨에게 혼나기 일쑤고, 무서운 전기뱀장어 탕에도 들어가야 해서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전기뱀장어 탕은 탕 안의 벽에서 찌릿찌릿 저주파가 나오는 탕인데 우리끼리 붙인 이름일 뿐이고 정식 명칭이 뭔지는 모르지만, 심장마비로 단명하게 될 것이 두려워 아빠랑 가면 근처에도 가지 않았다. 그런데 친구와 가면 약한 모습을 보일 수 없기에 죽음의 위험을 감수해야만 했다.(실제로 죽는 사람은 없다..)


아이들의 성장 속도는 제각각인데 나는 정말 천천히 자라는 편이었다. 그 시절 목욕탕에 자주 같이 가던 친구는 우리 반 거인이었는데 단지 키만 큰 게 아니었다. 기분이 안 좋았다. 그 시절에는 모르는 사람에게도 종종 말을 걸었던 것 같다. 친구와 함께 목욕탕에 가면 형이랑 같이 왔냐고 묻는(어쩌면 놀리는) 아저씨들이 꼭 있었다. 또 한 번 기분이 상한다.

[여담으로 그 거인 친구를 어른이 돼서 만난 적이 있는데, 그 친구의 성장은 6학년 때 멈춘 듯했다. 하지만 기억 속 거인의 모습은 그대로여서 마치 거인에게 도라에몽의 '작아져라 총'을 쏴서 미니어처로 만들어 놓은 듯한 기묘한 느낌을 받았다.]


엄마는 목욕탕 탈의실에 딸려있는 이발소에서 이발도 하고 오라고 했는데 다른 동네 이발관보다 고작 500원 저렴하기 때문이었다. 물론 엄마는 그게 아니라 그 이발소 아저씨가 삐죽삐죽 튀어나온데 없이 깔끔하게 잘 자르기 때문이라 했지만, 실은 이발기로 무자비하게 밀어버려서 멋과 스타일을 남기지 않고 날려버리는 것이었다. 아저씨는 목욕탕을 찾은 온갖 손님들과 끊임없이 이야기를 나누며 일을 하셨다. 말 상대가 없으면 티브이 볼륨을 높였는데, 거울을 통해 힐끔 보면 아저씨의 눈은 티브이에 고정된 채 이발기를 쥔 손만 이리저리 연신 움직이고 계셨다. 언젠가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가위로 잘라달라고 요구한 적이 있다. 아저씨는 단호하게 거부하셨다. 이유는 내 머리숱이 다른 사람의 두배는 많고 두껍기까지 해서 가위로는 답이 없다는 요지였다. 일이 없어 쉬고 계시던 세신사 아저씨까지 합세해서 숱이 두배면 돈도 두배로 내야 하는 게 아니겠냐며 그냥 이발기로 자르라고 했다. 2:1, 그것도 어른대 아이의 설전이라면 그 끝은 분명했다. 게다가 숱이 두배면 돈도 두배라는 설득력이 충분한 주장까지 더해지니 전의를 상실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이발기로 자르더라도 구레나룻만은 남겨달라고 꼬리를 내렸지만, 패자에게 자비란 없었다. 그날도 멋과 스타일은 남김없이 날아갔다.


이러니 어렸을 때는 목욕탕 가는 것을 도무지 좋아할 수 없었다. 그런데 나이가 들어갈수록 목욕탕이 점점 좋아진다. 나이가 들면 패스트푸드보다 건강식을 찾게 되고, 어려서는 아침에 눈뜨는 게 그렇게 힘들다가 나이가 들며 더 자고 싶어도 새벽같이 눈이 떠지는 등 중년의 공통적인 변화를 겪게 되는데 목욕탕을 좋아하게 되는 것도 그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목욕탕 문 앞에서 남탕과 여탕으로 헤어지던 노부부가 "3시간 뒤에 이 앞에서 봅시다."라는 충격적인 말을 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그 말을 들었던 때가 20분이면 목욕을 끝내던 시절이었기에 도대체 뭘 하기에 3시간이 걸린다는 건지 경악스러웠었다. 그런데 20분이면 충분하던 목욕시간이 이미 1시간 30분까지 늘어났으니 언젠가는 "3시간 뒤에 이 앞에서 봅시다."라는 경악스러운 말이 나의 말이 될지도 모르겠다.


한 줄 요약

1. 어려서 큰 키 자랑 말자. 지금 좀 잘 나간다고 거들먹거리지 말자. 내일도 잘 나갈 거라 장담할 수 없다.

2. 오늘 싫어하는 것을 내일은 좋아하게 되기도 한다. 영원한 건 없다. 취향조차 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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