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긍정태리 Jun 29. 2024

오(午) 월의 성지순례

노고산성지-왜고개성지 (맹렬히 미련 없이 불태우리라)

오월 : 6.5,6일(망종) - 7월 7,8일(소서)

시간 : 11:30-13:30


오(午)화는 한나절 오, 밝을 오에서 따왔다. 해가 중천에 뜬 한낮이고, 절기로는 하지다.


들판에 질주하는 말처럼 오화는 활동적이고 역동적이다. 그래서, 역마살이 아닌데도 오화를 가지면 활동적이다. 폭넓은 대인관계와 낯선 곳도 두려워하지 않아 여행, 유학, 이사를 서슴없이 한다.


사화에 비해 파괴력 있는 불이다. 전후사정 보지 않고 앞을 향해 달린다. 24 절기 중 한여름의 태양인 망종과 하지가 오화다. 막강한 열기로 성과를 내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초라하다. 주변 상황에 따라 극단적인 성과를 가져와 오화를 다스릴 힘이 필요하다.


오화는 작은 유혹에도 옆길로 새는 경향이 있으며 음적인 부드러움과 유연함에 매혹된다.


오화는 야생마라 좁은 공간을 못 견디며, 독립적이고 자유로운 활동을 꿈꾼다. 도화의 매력도 있지만, 비판, 반대, 혁명의 불씨이기도 하다.


자오묘유 도화 중 가장 인기 받기 좋아하며, 시선을 모으는 힘이다. 감수성이 풍부하고 미적 감각이 훌륭하다.


오화는 정화의 특성을 공유해 따뜻함으로 희생하는 교육계나 언론일에 어울린다.


* 오화의 키워드 : #강한 활동성, #폭넓은대인관계 #모험적 #파괴력있는불 #음적인부드러움에매혹됨 #감수성 #미적감각 #시선모으는인기 #정화처럼희생


<안녕사주명리> 블로그 중 오화에서





보통 우리는 쉬운 길로 가려 해요. 하지만, 우리가 행복할 때는 약간 어려운 일을 할 때거든요. 핸드폰이 생기면서 사람들은 늘 중요한 것보다 쉬운 것을 제안하는 물건을 언제나 주머니에 넣고 다니게 된거에요. <도둑맞은 집중력> 중에서


쉬운 날들이 계속 됐다. 때로는 불행했고 불안했다. 도시는 편안함으로 사람을 길들여 편안함에 중독되어 땅을 밟고 땀 흘린 후 성취를 잊게 만든다. 그래서, 오늘도 작열하는 태양아래 땀 흘리는 기쁨을 맛보고자 성지순례를 나섰다.


그냥 편하게 서울순례길의 한 코스를 택했다. 서강대에 있는 노고산 성지부터 마포를 거쳐 용산성심학교를 지나 용산에 있는 왜고개까지. 도보로 약 2시간의 거리다. 쉬지 않고 걸었다면 더 빨리 가겠으나 구경하는걸 좋아하는 나로선 쉬엄거리며 갔다.



젊은이의 거리 신촌의 서강대는 종강을 맞이해 한산했다. 여유 있게 노고단 성지를 둘러봤다. 마포길을 걷는데 외국인 관광객들의 성지 연트럴파크가 눈에 들어왔다. 서울 북쪽에 사는 나는 서울 서쪽인 이 동네가 생경하다. 벤치에 앉아 있는 외국인 관광객들을 보며 이국적인 매력을 느끼며 걸었다.

마포의 고개를 넘어가니 용산성당이 보였다. 김수환 추기경님이 쓰신 현판인지 단정한 현판이 보였다. 이 동네 또한 처음이다. 저 멀리 한강이 보이는 뷰다.

걷다 보니 오화의 태양을 받아 땀이 흘렀다. 용산성심학교는 방학 때만 성지를 개방한다는 현판이 보였다. 서울순례길 앱으로 위치인증만 찍고 걷는다.

거칠 것 없는 오월이다. 걷다 보니 영화 매드맥스의 여전사가 생각났다. 약한 여성이기 때문에 가부장적인 남성들의 사회에서 노예처럼 살다 혁명을 일으키는 여전사가 된다는 이야기. 여기 조력자로 나오는 할머니 여전사가 오화 같다. 설령 늙어도 그 불꽃과 열정을 잃지 않는 것. 연료가 언젠가 바닥나 그 불꽃이 사그라질 것을 알기에 그 혁명에는 불안과 고독도 같이 잇따른다. 두려움에도 외로움에도 불구하고 모두 불사르리라 하는 혁명의 오화다.


정오는 오화의 시간이다. 태양은 롤러코스터의 맨 위처럼 정중앙에 떠 있다. 맨 위에 뜬 태양은 매혹적이다. 만물을 빠짐없이 비추며, 온갖 식물들이 우거지게 에너지를 준다. 하지만, 올라가면 내려와야 하는 게 우주의 원리다. 마치 인간은 누구나 죽음이 기다리고 있다는 걸 알고 사는 것처럼, 오화는 내려가야 함을 알고 있어 특유의 낙천성 뒤에 불안도 있다.

이런 상념에 걷다 보니 어느덧 왜고개성지다. 천주교를 받아들이는 건 당시 조선시대엔 죽음이 보이는 혁명이었다. 하지만, 성인들은 하찮게 잔잔히 사느니, 맹렬하게 크게 불태우는 오화의 길을 택했다. 오화의 혁명이 있어 역사는 진보해 왔고, 만물은 여한 없이 각자를 드러낸다.

오화의 연료를 가졌다면 누구의 눈치도 보지 말고 맹렬히 완전 연소하길. 마치 우주의 빅뱅처럼. 하나도 여한이나 후회 없이 살길. 그 후엔 오시의 달콤한 낮잠이 기다릴지도 모른다.


매거진의 이전글 사(巳)월의 성지순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