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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긍정태리 Sep 08. 2024

우리만의 속도로 다시 걷는다

서울둘레길 (상계동 철쭉동산-화랑대역)

화섭씨는 더위에 약하다. 그래서, 여름엔 둘레길을 걸을 수 없었다. 더위가 한풀 꺽이고, 절기가 백로로 바뀌자 다시 둘레길을 나섰다.


가을 햇살이 제법 따가웠다. 우리 둘다 중년이 되어 나온 배가 있다. 이것과 살려면 운동밖에 답이 없다.

당고개역에 본 불암산은 크다. 산길로 들어서 둘레길 이정표에서 스템프를 찍는다. 우당탕탕 서두르는 화섭씨. 스템프 인증서를 차분히 펴서 찍을 자리를 안내해준다. 화섭씨랑 다니면. 천천히,차분히 라는 말을 달고 산다. 지나치게 서두르다 엉뚱한데 스템프 찍기 때문이다.


 “너 직업훈련 할때도 천천히 하라는 말 듣지.”


“응, 들어.”


나도 성격이 급한 편인데, 우리 가족 공통 성격 같다. 조금 덜 급한 내가 도와줘야지.


불암산 코스는 숲이 깊어 걷기 좋다. 아스팔트보다 3-4도는 낮은듯하다. 그런데, 얼굴이 시뻘개지고 땀이 많아진 화섭씨. 한손엔 부채, 한손엔 수건을 드니 등산스틱은 한손으로 모아 쥐었다. 두손에 잡고 땅을 디디며 걷는게 스틱의 용도인데, 스틱을 한손에 모아들고만 있다. 거기다 지갑을 담은 주머니 많은 조끼는 위에 겹쳐 입었다. 당장 지갑 쓸일 없으니 조끼는 벗어 가방에 넣으라 했다. 부채도 넣으라 했는데, 놔주질 않는다. 조금이라도 땀이 흐리는걸 그냥 두지 못하고 닦아야 한다. 그 고집을 막을 수 없어 화섭씨식대로 걸으라했다.욕심이 많아 어느것도 포기 못하는 내모습 같기도 하고. 가볍게 걸어야 좋은데,욕망은 왜 이리 많은가?


이정표에서 만난 분께 말을 걸었다. 서울 둘레길 완주하셨냐고 여쭤보니 한바퀴 돌고 두번째란다. 대단하시다고 하니, 인증센터에서 보신걸 말씀해주신다. 완주를 29번 한 분도 있었다고. 한바퀴 돌때마다 뱃지를 주는게, 그게 29개라고. 성취의 도시, 꿈을 이루는 도시 서울 답게 대단한 분들이 많으시다. 그냥 우리 남매는 우리 식의 속도로 꾸준히 걸으려 한다. 서울시민의 평균이 안되면 어떤가? 인간은 각자 고유의 에너지가 있고, 그 결대로 살 뿐이다.


둘레길 막바지가 되자, 화섭씨가 자주 쉰다. 보통은 내가 늦게 걸어 화섭씨가 앞서 가는데, 이번엔 내가 앞서 걷고 화섭씨가 따라온다. 고개가 나타나자 왜 고개 있냐고 끌탕치는 화섭씨. 쉬면서 그 이야기를 반복하자, 옆에 앉으신 어르신이 산에는 원래 고개가 있어. 그러신다. 맞아, 원래 산이란게 그렇지.


인생도 산처럼 살다보면 고개가 있는데, 왜 고개가 있냐고 묻던 내가 보인다. 고개가 있으면 넘으면 되는데, 말이다. 넘고 보면 다리에 힘도 붙을텐데 말이다.

어느덧 걷다보니 마지막 문이 보인다. 땀을 많이 흘려 냉면 한그릇씩 먹었는데, 이렇게 달 수 없다. 갱년기로 입맛도 떨어졌는데, 오래 걷고 먹는 맛이 꿀맛이다. 고개가 있는 이유는 그걸 넘어야 냉면이 맛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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