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는데 없다고 할 수 없다
한때 책 시크릿의 끌어당김의 법칙(The law of attraction)이 유행했다. 같은 에너지를 가진 것을 끌어당기니 내가 좋은 생각을 가지고 있으면 그에 맞는 사람과 상황이 끌여당겨진다는 것이다. 그 책을 읽고, 적어도 나쁜 생각은 하지 말아야지 했었다. 나쁜 일만 없어도 평온한 인생이란 생각에서다.
그 후, 끌어당김의 법칙을 몸소 체험한 일이 있었다. 나는 평생 대한민국에서 살았다. 오픈 마인드라 사람들과 쉽게 친해지지만, 한번도 가지 못한 나라에 살고 있는 친구를 사귀게 될지 몰랐다.
때는, 촛불집회가 한창이던 어느 겨울날. 나는 뭔가 모를 통쾌함에 끌려 매주 광화문에 갔다. 평소 거친 구호나 시끄러운 소리를 좋아하지 않았다. 하지만, 당시 광화문은 예술 집회가 있어 좋은 공연을 많이 하고, 사람들과 구호를 외치면 가슴이 뻥 뚫리는것 같았다. 위기를 힘을 모아 타계해왔던 대한민국의 국민들 답게 사람들이 자원봉사로 뭔가 내어놓기도 했다. 당시 ㅍ 국회의원이 크리스마스 이브를 맞아 프리허그 행사를 했다. 나는 시간도 비고, 당일에 몸 컨디션도 좋아 두껍게 챙겨 입고 행사시간 전에 약속장소 앞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당시 페이스북 클럽에 가입했다. 광화문 집회에 나가 길을 못 찾을때 클럽에 글을 올리면 사람들이 댓글을 실시간으로 달아주었다. 나도 받은게 있으니, 프리허그 행사 현황을 클럽에 실시간으로 올리리라 마음 먹었다. 운이 좋게도 앞에서 2번째로 ㅍ 의원과 프리허그 하고, 사진 찍고, 그의 사인지도 받았다. 전국에서 많은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댓글을 달았다. 광화문에 매주 올 수 있는게 보통 특혜가 아니라는걸 그때 깨달았다. 나에게 광화문은 지하철만 타면 쉽게 오는 장소였다. 그런데, 주말에 근무를 하거나 거리가 먼 곳에 사는 사람들에겐 광화문은 꿈의 장소였다.
그 사실을 안 후, 내가 받은 ㅍ의원의 사인지를 클럽 사람에게 주기로 했다. 한장 밖에 없으니 선착순 1명이고 우편비용은 내가 부담하겠다는 조건으로 글을 올렸다. 드디어 첫 댓글이 달렸다. Jini라고 예쁜 이름에 얼굴도 예쁜 아가씨였다. 기쁜 마음에 페메를 보냈다.
"축하드립니다. 어디에 사세요?"
난 멀어봤자 제주도 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돌아오는 대답은 기상천외였다.
"캐나다 토론토요."
페이스북을 전세계 사는 사람들이 한다는것을 순간 까먹고 있었다. 두번째 댓글도 달렸는데, 평소 ㅍ의원을 사모하는 분이라며 너무 아쉽다고 하였다. 그 분은 뉴욕에 살고 계셨다. 광화문에 못오시는 분이 국외에 더 많다는것을 나는 아예 생각치도 못하고 있었다.
Jini는 먼 곳으로 보내니 우편요금은 착불로 보내면 자신이 부담하겠다고 했지만, 사인지 한장이 부치는데 큰 돈이 들지 않았다. 마침 세월호 노란리본 자원봉사도 한터라 노란리본도 동봉해서 Jini에게 보냈다. Jini는 사인지를 받으면 복사해서 2번째로 붙은 뉴요커 교포분께 보내주었다. 두 분다 엄청 기뻐했다. 아마 국내 분보다 두분에게는 곱절로 가치 있는 것이었으니, 나의 기쁨도 곱절이 되었다.
그후 Jini와 페친이 되어 국회의 탄핵선거나 헌법재판소의 판결현장을 채팅을 하며 같이 봤다. 캐나다에 있어도 시간을 맞춰 채팅을 하고, 역사적인 현장의 감흥을 같이 나누었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만나는 남북 정상회담 장면도 그렇게 같이 봤다. 그렇게 우리는 친해졌다.
대한민국의 역사적 현장을 같이 나누는 시즌이 지나가니, 그 다음부터 올곧이 개인적인 일상이 궁금해졌다. Jini는 토론토에서 음악치료를 공부하고, 자폐 장애인들을 치료하고 있는 교포였다. 나는 동생이 자폐를 가지고 있다고 고백했다. 그 후, 우리의 대화는 캐나다 장애인 복지에 대한 것이었다. 결정적으로 내가 캐나다 장애인 인권 문화에 대해 조사할 일이 생겼다.
당시 영어 스피치 실력을 늘리기 위해 토스트 마스터즈 클럽에 가입해 10번의 스피치를 목표로 하고 있었다. 마지막 스피치의 주제는 관중을 감흥 시키기(Inspiring audience) 였다. 나는 막내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Jini에게 캐나다 자료를 받을 수 있어 준비도 어렵지 않을거라 자신했다. Jini는 자료를, 스피치 원고까지 수정해주었다. 스피치를 했다. 내가 속한 클럽의 멤버들이 주로 대학생들이라 그들은 마음을 열고 내 스피치를 들어주었다.
스피치 내용 중 가장 기억에 남는건 장애인을 칭하는 호칭부터 캐나다에서는 인간중심의 단어를 쓴다는 것이다. 즉, 장애인이 사람이라는 뜻을 강조하기 위해 사람 + 형용사의 형태를 쓴다는 것이다. 장애인이 비장애인과 다르고, 자기 표현도 확실하지 않다보니, 일반인들은 장애인을 사람처럼 생각하지 않을때가 종종 있다. 사람이라는걸 잊고, 말을 함부로 하거나, 예의를 차리지 않은것이 그 예다. 그런 기본 인식을 전환하고자 사람을 먼저 내세운 단어를 쓴다. 우리나라에도 각 시설에 장애인을 위한 안내문에 적어도 영어표현이라도 그런 단어를 썼으면 하는 바램이다. 우라니라식 용어 수정도 필요할테고.
그렇게 스피치를 마치고 너무 후련했다. 집에 돌아와 잠을 자려고 누웠다. 그런데, 잠이 오질 않았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이건 우연이라기에 너무나 신기한 일이었다.
어떻게 내가 한번도 캐나다에 가지도 않고, 음악치료를 공부한 교포를 알게 되었을까? 그 교포를 통해 캐나다 장애인 인권 문화를 어떻게 알게 되었을까? Jini를 통해 들은 이야기들은 아예 평등에 대한 기본 개념을 바꾼것부터 한국에서는 한번도 듣기 힘든 이야기들이 많았다. 가령, 장애인 복지법을 정할때 우리나라는 법을 정하는 공무원들이 책상에 앉아 회의를 해서 정한다. 반면, 캐나다에서는 그 법의 수혜자인 장애인들을 찾아가거나 교통비를 줘서 방문하게 해서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것부터 시작한다. 경청은 존중이다. 법률 제정 과정부터 존중의 자세가 있었다.
그걸 깨달으니 갑자기 잠이 오지 않았다. 이 지구상에 그렇게 근사한 문화를 가진 나라가 있단 말이야. 장애인의 가족으로 살면서 왠지 민폐를 끼치는것 같아 눈치봤던 세월도 생각났다. 장애인의 가족이라는것을 친한 친구에게 말하지 못한 경험도 생각났다. 막내의 직장에서 월급이 밀릴때면 그 직장에 찾아가 사정한 이야기며, 동생이매일 하는 일이 줄어들어 상동행동이 심해졌을때, 회사직원에게 받았던 항의 전화에 양해를 구했던 일도 생각났다. 그런 문화의 저변에는 장애인에 대한 몰이해와 무관심과 비존중이 있었다. 그런데, 그 기본인식을 존중의 문화로 만든 나라가 있고, 그걸 아는 교포 친구를 알게 되다니! 나는 그 문화가 너무 부럽고, 우리나라에 들여오고 싶었다. 이런 친구를 끌어당긴건 그런 일을 하라는 신호 아닐까? 그때 처음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쉽게 친구되는 연결의 메신저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Jini를 만나지 못했다면, 스피치를 안했다면, 생각나지 않았을것이다.
이건 끌어당김의 법칙이다. 화섭씨와 세상사람들이 즐겁게 연결되어 살게 하고픈 내 마음에 맞는 친구를 우주가 연결해준 것이다. Jini는 캐나다 공부를 마치고 한국에 다시 돌아와 이런 캐나다 인권 문화를 소개하는 일을 같이 하자고 제안했다. 나의 생각이 자신의 생각과 비슷하다며, 한국에 살고 있는데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는지 신기하다고 했다. 나도 Jini의 말이 다 신기했다.
어느날 지니님 페북에 올라온 다음 사진은 평등에 대한 개념을 잡는데 큰 도움을 주었다.
"이 사진이 보여주는 의도는 한눈으로 보아도 알 수 있어요. 사람들이 외치는 공평(Equality ; 모두 같은 출발 선상에 놓여져야 한다는 발상)이 얼마나 공평하지 않은지. 약자들을 배려하지 않는 우리 사회는 공평(Equality)적 사회, 우리가 지향해야 할 사회는 평등(Equity) 사회, 그리고... 참혹한 현실(reality). 우리 개개인들의 생각과 행동을 반성하고 평등(Equity)의 사회가 되도록 노력해야 할겁니다. 그리고 할 수 있습니다.
장애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과 장애를 갖지 않은 사람들을 같은 출발점에 서서 똑같은 경쟁을 하게 하는것은 폭력입니다. 휠체어를 타고 있는 사람에게 똑같이 계단을 이용하라는격입니다. 불공평하다고 이야기 하면, '나도 너도 똑같은 조건, 출발 선상에서 서는것이 평등이야' 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계단을 이용할 수 없는 약자들을 계단에 세워 놓고 밀어버리는 행위를 하고 있는격이란 이야기 입니다.
장애나 장애인들을 비하하는 언어는 폭력입니다. 내가 누리는 권리를 사회적 약자들은 누릴수 없다고 생각하는 위험한 사고는 혐오에서 비롯된 차별이고 폭력입니다. 물론 그런 상황에서도 경쟁에서 이겨버리는 장애를 가진 분들도 계십니다. ” – 지니님 페북에서
이 설명을 듣고 공평과 평등을 착각해왔다는걸 알았다. 이렇게 평등의 기본개념을 아니 국가에 장애인의 평등권을 주장하는데 당당함을 느낄 수 있었다. 내가 어릴때부터 느껴왔던 민폐끼친다는 개념은 공평해야한다는 강박에서 나왔음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얼마나 많은 장애인을 돌보는 가족들이 이 공평함을 지키려다 속앓이를 하고, 과도한 책임감을 지고 살고 있는지도. 평등한 사회를 만든다는건 한편으로는 성숙하고 약자가 살기좋아 일반인들이 봐도 안전한 사회를 만든다는것과 동일한 개념이라는 것도.
그렇게 나의 끌어당김의 법칙은 내 인생의 새로운 전환점을 가져다 주었다. 간절히 원하고 찾아라. 우주가 당신이 원하는 것을 가져다 줄것이다. 그리고, 그 끌어당김이 브런치 글을 쓰게 했고, 이 브런치 글들이 새로운 사람들을 끌어당길거라 믿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