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긍정태리 Oct 28. 2020

케네디가의 잊혀진 여동생

있는데 없다고 할 수 없다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친구들은 전 세계에 걸쳐 있다. 이 친구들의 복지가 발달된 선진국들을 보면, 복지 전에 뼈아픈 역사도 있었다.


(기사) 발달장애, 연 6500만 원까지 지원하는 미국 주


이 기사 첫머리에 나오는 인물은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한 살아래 여동생 로즈메리 케네디 (1918-2005)이다. 지적장애를 가지고 태어났지만, 운동을 즐길 정도로 일상생활이 가능했다 한다. 하지만, 명문가인 케네디 집안에선 딸의 장애를 숨기고 싶어 했다. 장애를 가진 딸을 있는 그대로 인정할 수 없었던 것이다. 여러 교육기관에 보내 교육을 시켰지만, 다른 형제자매처럼 우수하지 않고 때로는 자기 맘대로 안되면 화를 내기도 하고, (그건 나도 가끔 그런데..) 모르는 남자와 관계를 맺는 등 문제행동을 했다. 결국 당시 검증되지도 않았던 뇌 전두엽 제거 수술을 받고, 수술은 실패했고, 로즈메리의 상태는 더 악화되어 평생 병원에 갇혀 살았다 했다.



로즈메리 케네디에 대한 피플지 기사(로즈메리 사진 첨부)


로즈마리 케네지 (출저 : 피플지 기사 위 링크)


그 후, 부모님은 딸이 있는 병원을 평생 찾지 않았다. 그 사실에 마음 아팠던 세 살 아래 여동생 유니스 케네디 슈라이버는 발달장애인 문제에 관심을 가졌다. 발달장애인 올림픽인 "스페셜 올림픽"을 만들고, 발달장애인을 위한 사회변화를 호소했다. 케네디 대통령도 정신지체특별위원회를 설치하고 발달장애인 실체 조사와 프로그램 개발을 주문했다.


그런 역사 덕분일까? 현재 미국, 독일, 일본 등은 일찍부터 장애를 개인적인 손상이나 불행이 아닌 사회가 떠안고 함께 풀어야 할 문제로 바라보고, 법과 제도를 만들어왔다. 한국은 이제야 장애인들의 탈시설을 모색하고 있다.(출저: 한겨레21 기사)




왜 로즈메리 케네디 같은 비극이 발생했을까? 이런 일은 장애인에만 해당된다고 보지 않는다. 나는 여러 에니어그램 상담 케이스를 통해, 간혹 자녀를 자신의 꿈의 대리인으로 보거나 자기식의 인생을 강요하는 부모님을 만날 때가 있었다. 내가 호랑이이니 자녀도 호랑이인 줄 착각한다. 하지만, 이런 집안에 호랑이가 아닌 강아지, 혹은 장애가 있는 고양이가 태어나기도 한다. 절대 호랑이처럼 클 수 없지만, 각 성격의 장점을 개발하면 그 자녀만의 장점이 활짝 필 수 있다. 하지만, 부모는 호랑이 식의 인생밖에 모른다. 호랑이 식의 인생만 강요하다, 어느 순간 자녀들은 병이 든다. 학교를 안 나가거나, 집에만 틀여 박혀 있거나, 부모를 증오한다던가의 문제가 생긴다. 그제야 부모 스스로 문제가 있었다는 걸 깨닫는다.


케네디가의 아버지는 "자녀는 엘리트여야 한다."라는 강박이 강했을 것 같다. 이런 원칙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로즈메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려워서 무리한 수술까지 강행한 것 같다. 비단, 이것은 부모 자녀 사이의 관계에서만 나타나지 않는다.


있는 그대로 사랑하게 되면 내 인생은 로맨스가 된다.


우리는 자라면서 나 자신에게 바라는 자아상이 생긴다. 외부 환경이나 부모님의 영향 등에 의해 무의식적으로 생기는 자아상에 현재의 내가 맞지 않으면 때로는 자기 증오에 시달린다. 요즘 일부 젊은이들 고민이 "왜 나는 스티브 잡스처럼 천재가 아니지?" "왜 나는 아무개처럼 예쁘지 않지?"라고 하니 그 자아상이 얼마나 높은지 짐작이 된다.


나도 내 자아상이 무진장 높아, 사는 내내 수치스러웠던 시간들이 있었다. 그걸 치유하기 위해 수십 년이 걸렸다. 있는 그대로 나를 받아들이고, 내 강점에 집중하는 훈련이 시간이 많이 걸렸다. 있는 그대로 존중받지 않았던 기억들이나, 내 환상으로 본 자아상 등 문제의 원인은 지금 봐선 복잡하지만, 단순하게 생각하면 너무 나 자신에게 욕심이 많았던 것이다.


동생 화섭 씨를 보며 누나인 나는 배운다. 소탈하게, 오늘의 연금복권 구입에 두근거려하고, 당첨 안되어도 복권 샀다는 것에 만족해하는 동생을 보고, 난 단순해지지 않은 나 자신이 보였다.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사람은 바라는 게 없는 사람이라 했다. 바라는 게 많고, 지킬게 많을 때 열등감도 느끼고, 세상이 두려워지는 거다. 내 마음을 비우면, 가볍게 필요한 것만 바라며 살 수 있는 것을.


어느 집안이든 있는 그대로 존중받지 못하는 자녀들이 있을 수 있다. 그게 장애가 있어서 혹은, 다른 형제자매에 비해 모자라 서든, 어떤 잣대로 사람을 판단해서 그렇다. 인간이 어떠해야 하는 건 없다. 그 기준은 다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것이다. 만물은 변하고, 변화 앞에서 기준은 무색해지기도 한다. 언제까지 기준을 들이댈 것인가? 이 말은 욕심이 날 때마다 나 자신에게도 하는 말이다.


"언제까지 그렇게 욕심을 낼 거니? "

"그 기준 어디에서 왔니? "

"이제 내려놓고 편하게 살아. "

"있는 그대로 너는 괜찮아."


이 세상의 수많은 로즈마리들이 있는 그대로 자신을 사랑하고, 사랑받길 바란다.

이전 18화 끌어당김의 법칙 경험기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