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는데 없다고 할 수 없다
용재는 공연 전이라 흰색 정장을 멋지게 입고 등장했다. 푹신한 소파에 내가 가운데 앉고, 용재와 화섭 씨가 마주 보고 앉았다. 당시는 더웠던 여름이었다. 인사를 하고, 소개를 하고 화섭 씨는 바로 용재에게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옛날 부터 알던 친구를 다시 만난것 같은 질문이었다.
"요즘 더운데, 용재는 어떻게 더위를 이겨내?"
나는 할 수 없이 통역을 해야만 했다. 이건 예상치도 못한 상황이었다.
"샤워를 하거나 에어컨에 가."
용재는 친절하게 대답해주었다. 아주 진중하게 화섭씨 이야기나 내 어설픈 통역을 들어주었다. 무대에서 바이올린이나 첼로 소리를 듣는 것처럼. 화섭씨는 퀴즈 문제를 내었을때, 해답이 나오면 좋아했던 표정으로, 혹은 아~ 하면서 용재의 대답을 들었다. 얼굴은 싱글벙글. 궁금증이 해소 되었거든.
"그럼, 하루에 샤워를 몇 번이나 해?"
"2-3번 하는 거 같아."
화섭씨는 "나는 더울때 5-6번은 하는것 같아." 라고 자신의 이야기도 덧붙였다.
그 후 몇 가지 더 화섭 씨가 질문을 던졌는데, 아쉽게도 지금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확실히 기억나는 건, 용재 씨는 아주 흥미로운 이야기를 듣는 양 눈을 반짝이며 화섭 씨에게 집중해주었다는 것이다. 용재를 만날 때마다 느끼는 건, 그가 주는 선물은 바로 여기 앞에 있는 사람에게 집중해준다는 것이다. 그 상대가 누구 건 오롯이 따뜻한 관심과 경청을 준다. 그건 받는 사람 입장에서 상당히 큰 대우를 받았다는 느낌을 준다. 그게 평생 다른 악기의 소리를 들어온 그의 힘일까?
어찌 되었건 분위기가 아주 자연스러웠다. 어색함은 1도 없었다.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관심을 가지고 이렇게 편하게 질문을 하는 화섭 씨를 본 적이 없었다. 내가 너무 용재 이야기를 많이 해왔나? 화섭 씨는 용재를 아주 친근하게 여겼다. 어제 본 가족 대하듯이 편하게 질문했다. 용재도 대화해보더니 화섭 씨가 아주 스마트하다고 했다.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내가 화섭 씨를 데리고 누군가를 만났을 때 느껴본 적이 없는 분위기였다.
용재는 자기 엄마 이야기도 해주었다. 자동차를 운전하려 시도하다가 어디를 박은 이야기며... 그 후는 자세히 기억이 안 난다. 분위기는 장애인 가족을 돌보는 사람들이 만났을 때 하는 흔한 이야기들이었다. 우리가 복지관에서 만났으면 했을 법한 일상과 같았다. 평소와 같이 미소를 지으며 말하는 용재. 그걸 촬영하다 옆에서 피디가 왜 내 동생을 만나기로 결심했냐고 물어봤는데, 용재의 대답을 잘 알아듣지 못했다. ( Sometimes, he is too talkative to listen! ) 지금도 리스닝이 완벽하지 않지만, ㅠㅠ 내 영어는 반푼이 영어다. 영어를 들을 때는 청각장애인의 심정이 된다. 그전에 만났을때도 용재에게 '너를 만나서 이야기하는건 영어 리스닝 시험을 보는것 같아 .'라고 푸념했는데, 수다스러운 그의 말버릇은 여전하다.
나중에 캐나다 교포이자 자폐 친구들의 음악치료사인 지니에게 들은 게 있다. 자폐인들은 아주 예민해서 상대가 자신을 어떻게 느끼는지 금방 알아챈다고 한다. 즉, 길거리에서 만났을 때 자신을 두려워하면 그걸 금방 느낀다는 것이다. 반면, 상대가 자신을 편안해하고 너그러우면 자신도 편안해진다고 한다. 즉, 용재는 엄마를 돌보면서 수많은 장애인을 만나왔을 것이다. 그렇게 쌓아왔던 편안함이 화섭 씨를 만났을 때도 자연스럽게 나왔을 것이다. 화섭 씨는 그걸 느꼈을 것이고.
그 후, 나는 한국에도 자폐장애인을 낯설어하지 않고 편안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으면 어떨까를 상상하게 되었다. 그러면, 화섭 씨도 어딜 가도 편안하게 대화하고 친구도 만들 수 있을 텐데. 물론, 많은 분들이 화섭 씨에게 친절하지만, 때로는 화섭 씨는 자신에게 조금이라도 스트레스를 주는 말을 하면 민감하게 힘들어한다. 자신을 비난하는 사람을 젤 싫어한다고 한겨레 21 인터뷰에서도 이야기했다. 하지만, 우리는 알게 모르게 비난이나 비판의 언어를 많이 쓴다. 그게 언어습관으로 굳어지면, 소통의 방법은 그게 최선인 줄 착각한다. 나도 비판의 언어습관을 가지고 있어, 비폭력대화를 배웠다. 비폭력대화에서는 언어 뒤에 숨은 감정과 욕구를 찾아내어 내 감정과 욕구를 표현하는 방식을 권한다. 그럼 남을 다치게 하는 말을 덜 할 수 있다.
화섭 씨는 나에게 순화된 언어를 쓰도록 하고 있다. 과거에는 환경이 거칠어서 사람들의 말도 거칠었다. 자폐장애인들과 어울리고 싶은 분들은 자연스레 부드러운 말과 인내심을 갖춰야 할 것이다. 즉, 본인의 인격수양에도 도움이 된다.
팬클럽에서 용재를 관찰하며 알게 된 그의 성공 비결은 예절 바르고, 낙천적이며, 부드럽고, 좋은 단어를 쓰는 것이다. 다른 세종 솔로이스츠 멤버들도 공통적으로 그러했다. 최근까지 근황을 아는 세종 멤버가 있는데, 그녀의 언어도 존중과 소탈함이 있다. 예술가들이 어떻게 긍정적으로 사회에 공헌할지 고민하는 그녀의 포스팅을 보면 존경스럽다. 실제 한국에서 자폐장애인을 위한 오케스트라에 기여하는 뮤지션들도 있다. 진정한 성공이란 그런 나눔과 기여 아닐까? 나눔으로써 우리의 인생은 풍요로워지고, 그들의 재능이 선하게 쓰이는 것은 기쁨일 것이다.
용재와 화섭 씨와의 만남은 나의 화섭 씨에 대한 태도에 많은 변화를 주었다. 왠지 의기소침했던 태도가 바뀌었다. 선진국에선 이렇게 존재만으로 존중받는다는 걸, 화섭 씨 말에 귀 기울여주고 성의껏 대답해줬던 용재의 태도로 배웠기 때문이다. 물론 그 나라 모든 사람들이 다 이렇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그 나라에서 성공한 사람들의 태도를 배울 수 있었다. 난 평생 한국에서만 살았다. 그런데, 세계적으로 활동하는 사람들과의 만남만으로 그들의 관대함과 여유와 존중을 배울 수 있었다. 그래서,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우리의 인생이 큰 영향을 받는 것 같다.
세종솔로이스츠 자체가 다양한 국적과 배경을 가진 사람들의 모임이었다. 그래서, 나와 다른 존재에 마음을 여는 것이 그들은 자연스러웠다. 만약, 당신이 당신과 다른 존재에 대해 마음을 여는 것을 두려워한다면, 당신은 외계인을 만났을 때도 두려울 것이다. 어쩌면 장애인들에게 마음을 열고 같은 점을 찾으려는 노력은 아마도 우주여행 시대에 지구인의 큰 장점이 될 것이다. 그걸 모른다면, 당신이 알고 있는 세계가 확장되는 기회를 놓칠지도 모른다. 좁게는 글로벌화되어 다양한 외국인을 접하고 연대하는 요즘 환경에서 다양성을 수용하는 훈련이 될 수도 있다. 난 확신한다. 당신이 장애인과 친구 되는 건 당신의 유연성을 키우고, 너른 세계를 보는데 유용하다고.
결국 2020년 현재, 이제는 이 말은 용재 아닌 다른 친구에게 듣고 싶은 말이다.
근데, 듣고 싶은 말을 쓰는데 왜 눈물이 날까?
비버 - 비올라 독주를 위한 파사칼리아 by Richard Yongjae O'Neill (비올라로 말하는 독백같은 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