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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긍정태리 Sep 19. 2020

네 동생 만나봤으면 좋겠어 (1)

있는데 없다고 할 수 없다

2004년, 그 년도까지 아직도 기억난다. 내 인생에서 예상치도 못한 일이 발생했다. 비올리스트 리처드 용재 오닐의 팬클럽 회장이 되었다. 어릴때 부끄러움이 많아 줄반장도 못해봤던 내가 팬클럽의 회장이 되고, 팬미팅을 기획하고, 자원봉사자를 모집해 배치하고, 팬미팅 사회까지 보는 놀라운 일들을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혼자서 해냈다. 그전까지 나의 일생은 공대를 나와 모니터에 코박고 프로그램 짜는 일을 한다든지, 회의에 참석해 말 못하고 쭈볏거리다 자기학대감에 지쳐 직장을 그만둔다던지, 한 스님을 찾아가 인생을 조언을 구하려다가 그 스님이 운영하는 어린이집의 사무원이 된다든지, 스님이 나보다 더한 완벽주의자라 프로그램 짜는일보다 어린이집 일이 더 어려운...원통하고 부끄럽고 체면도 안서고 열등감에 둘러쌓인 결혼도 못한 30대 노처녀의 삶이었다. 그런데, 팬미팅 대본 쓰고, 영어 버전의 멘트를 친구에게 부탁해 준비하고, 많은 사람 앞에서 사회도 보고, 그 팬미팅이 촬영되어 KBS 인간극장까지 나가는 대변혁이 발생한것이다. 참 인생은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



<내가 기획한 팬미팅이  나온 인간극장 동영상>

(오랜만에 보니 같이 팬미팅 기획 및 사회 봤던 제인, 즉석 인터뷰 통역을 맡았던 오스틴, 나를 뒤에서 격려해주시던 초록나무님 다 보고 싶다. 그리운 분들..ㅠㅠ 용재는 다시 못봐도 좋으니 이 친구들과 다시 만났으면 ㅠㅠ)



내가 팬클럽에 가입하고 한달만에 팬클럽 회장이 된건 순전히 글쓰기 실력 덕이었다.팬카페에 들어가 쓴 내 글이 히트가 되어 많은 사람들의 이목을 받게 되었다. (어떤 글이 히트가 되었는지까지 쓰려면 너무 사연이 길어진다.) 인간극장 피디님이 회장님이라고 불렀는데, 너무 호칭이 어색해서 무슨 부녀회장같다고 생각했었다. 그래도, 내 프로필에 회장이 있다고.직장 지원이력서에 전 회장으로 못쓰지만 인터뷰 보는 분이 클래식 왕팬이라면 넣고 싶은 이력이다. 하여튼, 팬미팅을 기획, 사회 본 덕에 리쳐드 용재오닐과 세종솔로이스츠 단원들을 실물로 접하고 이야기할 기회가 많아졌다.


세종솔로이스츠는 뉴욕 줄리어드 음대 강효 교수님이 만드신 현악 앙상블이다. 팀원들은 미국 유명한 음대를 나온 수재들이었다. 한국 유학생도 있었고, 외국 친구들도 있었다. 팬클럽 회장으로 얼굴이 팔리고 TV에 나온 나는 그 음악가들이 나를 알아보는 희안한 상황도 전개되었다. 때로는 공연이 끝나고, 음악가들의 뒷풀이 파티에 초대되기도 했다. 그때부터 영어를 열심히 공부했다. 대화해야할 상대가 주어지니 열심히 하게 된다. 마치 내일 기말고사를 앞둔 것처럼 말이다. (BTS의 아미도 이런 심정으로 한국어를 공부하지 않을까?) 주말마다 영어카페가서 프리토킹을 하니 제법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는 단계까지 왔다. 그 음악가들의 공통점이 있었다. 이제까지 내가 만나온 사람들과 다른 그들만의 공통점이었다.


그들은  누굴 만나도 사람을 존중한다는 것이다. 높은 학력에 콩쿨에서 여러 상을 탔던 명예까지 있던 친구가 나보고 "나 너 TV에서 봤어. 멋지더라."하고 나를 먼저 추켜세운다던지, 한국유학생 출신 음악가는 정말 공들여 나를 대접해주었다. 저녁을 사주기도 하고, 언니 하며 공손히 존댓말을 써주었다. 그리고, 한결같이 겸손하고, 소탈했다. 나중에 남을 대하는 태도를 보면 자신을 대하는 태도를 알게 된다는 글을 읽었다. 그들은 자신을 대하는 태도도 품격있고 존중을 하겠구다. 그 힘으로 저기까지 올라가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좁은 한국땅에서 비슷비슷한 사람만 만나고 살아온 나는 고정관념을 깨는 일을 많이 경험했다.


특히 용재 오닐의 말 한마디 한마디는 나를 놀라게 하는게 많았다. 지금은 정말 유명한 뮤지션이 되어 감히 만나기도 힘들게 되었다. 하지만, 그 당시에는 그는 만25살에, 소속사도 없는 가난한 뮤지션이었고, 그런 자신을 지지해준 팬미팅을 2번 기획 및 사회를 봐준 나에게 정말 고마왔나보다.


첫 팬미팅을 마치고 메일을 보냈다. 사실 내가 그에게 관심을 가지게 된건 그가 출연한 인간극장을 보고서였다. 그는 멘탈 핸디캡을 가진 어머니를 돌보고 있었다. 나랑 같은 장애가족을 돌보는 친구라니! 친근감이 확 갔다. 그 사연을 팬미팅이 끝난후 메일로 실어 보냈다. 신기한건, 용재와 내 동생 화섭씨가 동갑이라는 것이다. 그런 공통점들이 내가 팬미팅을 기획하게 만들었어. 라고.


당시 메일에 첨부했던 사진. 용재 보기 편하라고 영어 코멘트까지 달았다. 2004년 자료를 보관해준 다음메일아 고마와.


그에게서 놀라운 답장이 왔다.


"네 동생 한번 만나봤으면 좋겠어. 한국에 돌아갈 계획이 잡히면 연락할께"

( I would love to meet your family(brother).  I will contact you as soon as I have plans to return to Korea.)


난 그때까지 한국에 살면서 막내에 대해 이야기했을때 이런 반응을 보인 친구를 본적이 없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대부분 자폐장애인을 만나고 교류하는데 어려운 감정을 느낀다. 생소하고, 어떻게 친해져야 하는지 모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사실 가족인 나도 동생을 이해하는게 오랜 세월이 걸렸는데, 대중들은 어떠했으랴. 학교에서도 그 어느 누구도 자폐장애인과 잘지내고, 왜 그래야하는지 말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으니까. 그래서, 한편으로는 소외되고, 감추고, 교외 시설로 들어가 살고 있는 장애인들이 있었으니까. 거리에 자폐 장애인이 등장하면 다들 놀래거나 피하는 표정을 지어왔으니까. (영화 말아톤에 그런 장면이 나온다.) 그게 그때까지 겪어온 나의 느낌들이었다.


그런데, 용재는 달랐다. 이 메일을 받았지만, 과연 나는 화섭씨와 용재를 만나게 할 수 있을까 걱정이 되었다. 용재의 인기는 점점 올라가고 있었다. 그는 슈퍼비지한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도우미가 나타나 우리를 만나게 해주었다.


(다음주에 2편을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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