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는데 없다고 할 수 없다.
그렇게 2004년, 동생을 만나고 싶다는 용재의 편지를 받고 난 후 팬클럽에 여러 가지 일이 있었다. 2005년 1집을 내러 용재가 한국에 오게 되었고, 2번째 팬미팅을 기획, 공동사회를 볼 기회가 오게 되었다. 2번째 팬미팅은 인간극장팀 촬영 없이 팬클럽 내에서 캠코더로 자체적으로 촬영하였다. 장소는 예술의 전당 앞 한 카페를 기획사에서 빌려줬다. 2005년 5월 1일, 용재는 참 생기 있었고, 5월 만물의 기운처럼 매력을 뿜 뿜 뿜어내었다. 뉴욕 멋쟁이 옷집에서 산듯한 매끄러운 갈색 실크 셔츠와 청바지를 입고 나타났다. 순박한 미소로 미스티며 바흐를 흔퀘히 팬들 앞에서 연주해주었다.
그날 팬들과의 대화 후 내가 사회를 본 이벤트가 있었다. 바로 섬집아기라는 한국 동요를 용재에게 소개해준 것. 한국어를 잘 배우길 바라는 마음에서 준비했다. 이 동요에 나오는 단어들을 퀴즈 문제 내듯이 보여주고, 용재가 읽을 줄 알고, 뜻도 아는지 테스트해봤다. '노래' 같은 단어는 금방 읽고, 뜻도 아는데 대부분은 읽을 줄은 아나 뜻은 모르는 것이 많았다. '엄마'라는 단어를 읽을 때는 [엄] 사운드가 발음하기 힘들다는 고충도 털어놨다. 명문 줄리어드 음대 출신답게 발음 질문까지 하는데, 내가 영어실력이 짧아 제대로 설명을 못해 이 당시 영상을 보면 얼굴이 후끈거린다. 지금 생각해보면 영어도 완벽하지 않으면서 사회를 보겠다고 덤빈 내가 참 무모해 보인다. 나한테 맞춰준 팬들과 용재의 배려심 덕이었던 것 같다.
퀴즈 풀이 후, 팬 모두가 섬집아기 동요를 불러줬다. 단어를 배운 후, 노래를 들으니 더 좋다는 학구열 높은 용재. 그때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즉석으로 이 곡을 연주해보길 청했다. 기획 당시에는 이 부분은 생각하지도 않고 있었는데, 자연스럽게 요청이 나왔다. 마침 섬집아기의 악보를 준비해 용재에게 건네준 상태였다. 용재는 나보고 악보를 들고 보면대 역할해달라 부탁하더니, 아까 팬들이 부를 때 배경음악으로 나온 섬집아기 기타 연주 버전을 틀어달라고 한다. 즉석으로 기타 소리를 듣고 그에 맞춰 비올라를 연주하겠다고 한다. 평소 바이올린과 첼로 소리를 듣고 연주해온 그라서 가능했던 것 같다. 그리고, 나오는 그의 연주란!
댓글에 제가 이야기한 부분 좌표 달아놨습니다. 전체 영상은 좀 길어요.^^
모두 너무 감동에 차서 말을 잇지 못했고, 용재는 어쩐 일인지 손가락으로 자기 눈가를 가져다 댔다. 그 후 시간이 지나 2006년 가을, 용재는 2집에 섬집아기를 싣고, 그 앨범이 더블 플래티넘 상을 받을 정도로 히트가 되었다. 돌아보면 미숙한 나였는데, 여러 팬들의 도움으로 섬집아기를 용재에게 소개할 수 있어 감사했다. 그 후, 섬집아기는 용재의 시그니쳐 연주곡이 되었다.
<여러 방송에서 섬집아기를 연주한 용재. 해녀 어머니를 감동시키는 장면이 멋지다.>
그리고, 2006년이 되었다. 매년 여름 강원도 용평리조트에서 열렸던 대관령 음악축제는 당시 세종솔로이스츠와 리처드 용재 오닐의 팬이라면 필수로 참석하는 코스였다. 여름에 에어컨 없이 시원한 강원도에서 좋은 클래식 공연을 보고, 좋아하는 뮤지션을 보는 기회를 팬이라면 누가 놓치겠는가?
그해에도 대관령 음악축제의 티켓 오픈을 기다리고 있었다. 난 당시에도 팬클럽 회장이었다. 그런데, 예상치도 못한 일이 벌어졌다. 폭우로 공연장이었던 용평리조트가 물에 잠겨버렸다. 매년 쓰던 장소를 못 쓰게 된 것이다.
팬클럽 회장으로서 향후 일정이 궁금했기에 축제 주관 재단인 강원도 문화 재단에 전화를 걸었다. 내 신분을 밝히고, 폭우로 재정 손실은 나지 않았는지와 공연들이 어찌 될지 물으니 담당이라는 분이 정중히 말씀해 주셨다.
“공연은 보험 가입되어 있어 재정 손실은 막을 수 있습니다. 걱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공연 장소는 지금 물색 중이니 결정되는 대로 알려드리겠습니다. 알려드릴 연락처 좀 주시겠습니까?”
내 이메일 주소를 알려 드렸고, 전화를 받은 분은 운영부장님이셨다. 그 후 운영부장님과 메일 교환이 시작되었다. 공연은 강원도내 여러 공연장을 순회하며 수재민 위로 연주회 형식으로 바뀌었다는 메일이 왔다. 메일을 주고받다가 용재 씨에게 내 동생을 만나고 싶다는 메일을 받은걸 털어놓았다. 운영부장님은 일정을 수소문해 강릉 공연 전 용재와 나와 화섭 씨가 만날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해주셨다. 두근! 실제로 만나게 되다니. 지금 생각해도 운영부장님의 배려로 인생의 터닝포인트라고 할 수 있는 경험을 할 수 있었다. 감사하다.
하지만, 문제는 화섭 씨였다. 낯선 사람을 만나기 두려워하는 화섭 씨를 설득하는 일이었다. 평소 누나가 용재 영상을 많이 본터라 화섭 씨는 용재가 누구인지 알고 있었다. 경품 응모로 화섭 씨가 뮤지컬 관람권이 당첨되어, 내가 같이 동행했다. 그걸 같이 보고, 여러모로 화섭 씨를 설득했다. 용재가 너랑 동갑인데, 너를 만나고 싶어 해. 누나랑 강릉에 가서 하룻밤 자고 그 친구를 만나고 올 거야. 예상치 못한 일정을 싫어하는 자폐를 가진 화섭 씨라 최대한 예측 가능하게, 안심시키는 정보를 많이 줘야 한다. 결국, 화섭 씨는 내 설득에 넘어갔다.
우리는 여름휴가를 가는 발랄한 티셔츠를 사 입고 강릉으로 향했다. 공연 시작하기 전, 아주 이른 시간에 도착해서 용재가 오길 기다렸다. 로비 한편에 마련된 소파가 만남의 장소였다. 당시 KBS 피디 한분이 우리의 만남을 찍겠다고 기다리고 있었다. 이 장면은 방송에 나오진 않았지만, 어쨌든 그 피디님은 찍어갔다. 화섭 씨에게도 미리 이야기했다. 카메라가 와서 우리가 이야기하는 걸 찍을 거야. 걱정할 건 없어. 나는 용재를 만나서 무슨 이야기를 할지 아무 준비도 안 했다. 화섭이랑 사전에 이야기해본 적 없다. 그런데, 정말 예상치도 못하게 화섭 씨는 매끄럽고 친근하게 용재랑 대화를 했다.
(3편은 다음 주에 이어집니다.)